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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권 Mar 14. 2024

타인의 말로 인해 나의 가치가 떨어질 때

명예와 체면은 허상이다




    현대의 사람들은 옛날과는 다른 의미로 과하게 이어져있다. 휴대전화의 채팅 한 번으로 해외에 있는 사람에게도 연락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타인의 생각에 나를 맞추려는 까닭은 이 과도한 연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괴상한 연결이 사람을 소심하게 만든다. 타인을 너무 신경 쓰게 되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생각을 더욱 중요시하게 된다. 스스로의 상태가 괜찮은지보다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 그들이 나를 흉보지 않을지를 먼저 걱정하게 되는 것이다.


    과하게 말해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게 1순위가 될 필요는 없다. 각기 다른 개체인 인간이 남들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성인군자로서 칭찬받아 마땅하나, 그것을 모든 인간이 해낼 필요는 없다. 당연히 남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은 좋다. 내 기분에 따라 모든 사람을 망치고 다니는 것은 옳지 않으니까. 그러나 그것이 과도해지면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는 것을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착해 보일 이유도 없고, 그들을 무조건 도와야 할 의무도 없다. 배려는 내 마음의 곳간이 여유 있을 때 해도 늦지 않다. 당장 스스로가 너무 힘든데, 남을 먼저 생각할 필요는 없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나를 맞출 수는 없다. 우리나라만 해도 오천만 명의 국민이 있고, 그들은 서로 의견이 다르다. 지역 간의 갈등도 심하고, 더 작은 회사 내에서 파벌이 생기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들 모두가 악인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사람은 필연적으로 사랑을 받고 미움을 받는다. 누군가에게는 둘도 없이 편안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는 한 번이라도 마주치고 싶지 않은 불편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정치질이 난무하는 단체에서는 내가 하지 않은 일도 눈만 깜빡이면 이행한 것으로 소문난다. 점차 퍼져나간 그 소문은 결국 기정사실이 된다. 해명을 해도 믿을 사람은 평생을 굳게 믿는다. 해명을 하지 않아도 믿지 않을 사람은 믿지 않는다. 어떤 한 사람의 망상 때문에 다른 사람이 크게 다치는 것을 여러 번 목격했다. 그들은 다수의 주장이 옳다는 민주주의를 표방한 전체주의적 사고를 바탕으로 타자의 권리를 무참하게 짓밟았다. 그들에게 맞춰줄 인내의 한도는 끝이 없다.


    쓸데 없는 것에 관심두지 않는 사람도 소수 존재한다. 심리적, 신체적 긴장도를 낮추고 싶다면 그들처럼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을 곁에 두고, 스스로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남들이 만들어낸 명예라는 허영과 체면이라는 허상을 쫓는 것은 스스로를 좀먹는다. 그것은 모두 실리가 없는 환상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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