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세와 허영을 멀리하는 삶
서평가 박진권 제호 화폐 저자 다자이 오사무 외 2인 출판 메이플라워북스
다자이 오사무의 화폐는 인간의 가치와 존엄을 말한다. 이 단편은 돈의 시각으로 내용이 이어진다. 처음에는 빳빳하고 가치가 높았던 100엔짜리 화폐가, 이 사람 저 사람 손을 타고 점점 더러워지고 추레해진다. 자신이 원하는 곳에 오래 머물 수 없고, 의지와 다르게 이리저리 휘둘리는 게 인간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화폐는 결국 자신이 있고 싶은 곳에 안착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또한 얼마나 유지될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현재에 충분히 만족한다. 인간도 적절한 행복에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니이미 난키치의 언덕의 동상은 어리석음과 망각이다. 마을에 역병이 돌아 주민들이 하나둘 죽어가고 있을 때 나타난 약초꾼이 사람들을 살린다. 마을 사람들은 그 약초꾼이 선인이라며 동상을 세워 오랫동안 기리기로 다짐한다. 이후 전란의 시대 마을에서 차출당한 젊은 장수가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죽음을 맞이한다. 마을 사람들을 전에 있던 동상을 변형해 젊은 장수의 동상을 세운다. 이후에도 몇 번 동상의 이름은 바뀌었고 모습도 변했다. 그리고 선인들의 이름은 지워졌다. 물론 그들의 이름은 약초의 명칭이 되거나 용맹함을 뜻하는 단어가 되기도 했지만, 그뿐이다. 결국 그 명칭이 이름인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이처럼 인간은 기억해야 할 것을 잊고, 잊을 것을 트집 잡는다. 그것이 망각의 축복인지 무지의 소산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야시 후미코의 철 늦은 국화는 시간의 흐름과 망상이다. 늙은 여인이 과거의 영광에 빠져 과거의 남자들을 회상한다. 과거에 요염했던 자신을 놓지 못한다. 그 과신은 현재의 쓸쓸함을 나타낸다. 주변에 자신을 위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을 만나고 있는 중에도 화장을 고치고 허벅지에 호르몬 주사를 놓는다. 50의 나이에도 30대 중반처럼 보이는 그녀의 속사정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보드카 한 잔을 마시고 눈을 촉촉하게 만든다. 반짝이는 안광을 위해서다. 피부의 탱탱함은 화장과 호르몬 주사로 위장한다. 그렇게 속마음도 숨긴 채 빛을 잃은 남자들을 전전한다. 미모는 한순간이고 그 능력은 오래가지 않는다. 분명 예쁘고 잘생긴 것은 엄청난 무기가 될 수는 있으나, 그것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노력하지 않는다면 50대의 늙은 여인처럼 쓸쓸하게 죽게 될 것이다.
내 삶의 목표는 간단하다. 절대로 범죄를 저지르지 않겠다는 신념과, 평생 글을 쓰며 살아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지 않고, 똑같이 사랑으로 보답하겠다는 다짐이다. 그렇게 나는 덤덤하게, 떳떳하게 살아간다.
화폐: 다자이 오사무
의인화된 돈에, 사람의 관점을 완전히 배제했다. 감정을 느끼는 돈의 일대기를 그린다.
언덕의 동상: 니이미 난키치
인간의 어리석음과 망각을 내포하고 있다. 그럼에도 훌륭한 인간은 무언가를 남긴다.
철 늦은 국화: 하야시 후미코
순리를 거스르는 50대의 여인. 늙고 싶지 않고, 아직 늙지 않았음을 남자와의 관계에서 정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