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곳
모든 상황을 걱정하고, 타인의 말 하나하나에 의미 부여할 필요는 없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들은 타인의 시선과 말에 과도하게 신경 쓴다. 그리고 넘겨 집는다. 그렇게 불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나는 20대 중반부터 30대 초반까지 대략 8년 정도 다양한 독서 모임을 접했다. 비교적 지적인 사람들이 모이는 곳인데도, 일반적인 사회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로 오해하고, 음해했다. 한 사람의 말만 듣고 상대를 악으로 치부하기도 했다. 더욱이 ‘사실’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었다. 토의와 안부라는 명목하에 뒷담화를 자행하는 상황도 적지 않았다.
글 박진권
내가 독서 모임에 빠진 이유는 여러 가지다. 지적인 사람들에게 지적 자극을 받기 위해서도 있고, 뜻깊은 인연을 만들고 싶다는 목적도 있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을 만났고, 시절 인연도 만들었다. 나에게 시절 인연은 한때 친했으나, 더 이상 만나지 않고, 연락도 하지 않지만, 미운 감정이 없는 관계를 뜻한다. 소중하지만, 없어져도 딱히 아쉽진 않다. 그들을 붙잡아 두는 것이 내 인생의 목표는 아니기 때문이다. 독서 모임에는 좋은 사람들이 훨씬 많은 게 사실이다. 내가 아래 나열할 이상한 사람들은 극히 일부다.
이상한 사람
그는 굉장히 외향적이었다. 모임의 이성에게 개인적인 연락을 쉽게 했다. 애인도 있었던 사람이, 같이 공부하자는 취지로 이성에게 추파를 던졌다. 심지어 그는 독서 모임의 원년 구성원이자 운영진이었다. 결국 문제가 생겼고, 그의 추파를 견디지 못한 모임원 몇몇이 탈퇴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결국 그는 애인도 떠나가고 신뢰도 잃었다. 이후 물어보지도 않은 일을 해명하고 다녔다. 타인들이 쑥덕이는 상황을 불안하게 바라보았고, 모임에 나오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어느새 과하게 신경질적으로 변했고, 어쩐지 사람이 달라 보였다. 외향적인 성격은 온데간데없고, 내향적이고 불안한 사람만 남아있었다.
특이한 사람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자기의 진심을 숨겼고, 어쩐지 영혼 없는 말을 내뱉었다. 그게 예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의 얼굴에서는 왠지 모를 어색함과 균열이 보였다. 유난히 검은 눈동자에서는 어떤 사람의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밝게 웃어도 어쩐지 공허함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사람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기도 했다. 본인에게 호의적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분류하는 듯했다. 조금 안 좋은 소리를 하거나, 관심이 없어 보이면 나쁜 사람으로 간주했다. 그 또한 독서 모임의 운영진이었다.
불안한 사람
모든 사람이 자기에게 관심 있다고 착각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큰 관심이 없다.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없는 사람이 된다. 아무리 친했어도, 1년 이상 만나지 않으면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망각으로 인해 어떤 연민도, 미움도 옅어지는 게 인간이다. 그러나 그는 달랐다. 모든 걸 생각했고, 떠올렸다. 그리고 불안해했다. 저 사람이 자기를 좋아한다고 넘겨 집고, 싫어한다고 착각했다. 그와 독서 모임에서 만나면 무조건 긍정적인 말을 해야만 했다. 조금이라도 반하는 이야기를 하면 금세 시무룩해졌다. 그러면 그날의 모임 분위기는 한겨울의 녹은 눈처럼 꽁꽁 얼어붙었다.
그 밖에도 자기의 생각만 말하는 사람, 뒷담화가 한국 문화의 일부라고 말했던 초등학교 선생님, 자기의 정치색을 아이들에게 표출해도 된다고 말한 초등학교 선생님, 온갖 이성에게 추파를 보내지만, 타인의 행동에는 엄격한 사람, 거짓말을 일삼는 사람, 이중인격자, 문란한 사람, Chat GPT보다 똑똑하다고 말하는 사람, 책은 뒷전이고 이성이 목적인 사람 등 하나하나 자세한 사항과 함께 나열하자면 끝도 없다.
독서 모임에는 온갖 사람이 모여든다. 절망 편이기 때문에 안 좋은 부분만 나열했지만, 긍정적인 모습이 훨씬 많다. 독서 모임에서는 전문가들을 많이 만날 수 있고, 내가 가고자 하는 이상향에 미리 닿아있는 분들도 많다. 독서 모임을 추천하냐고 묻는다면 무조건 나가라고 할 것이다. 그저 과몰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모든 모임에서 운영진을 하고, 현재 모임장으로 한 모임을 운영하고 있지만, 모임은 모임일 뿐이다. 여기에 과몰입하는 순간 위에 나열한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 또한 이성 문제로 이상한 풍문이 있었지만, 개인이 당당하면 그만이다. 8년 동안 여러 독서 모임을 운영하며 이성에게 먼저 연락하거나, 추파를 던진 적이 없다. 여성 모임원과 단둘이 만난 적도 없다. 당당하지 않을 이유가 없기에 해명도 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독서 모임은 말 그대로 모임일 뿐이다. 과몰입할 이유가 없다. 그곳에서 만난 인연은 소중하지만,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감정적으로 동요할 필요가 없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오면 될 일이고, 정이 가지 않으면 주지 않으면 그만이다. 독서 모임은 책을 읽으러 가는 곳이고, 책을 바탕으로 인간을 만나러 가는 장소다. 그 이상도 이하도 될 수 없다.
누구든 자기 자신을 위해 자신이 지닌 최선을 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최선의 모습이 다른 사람의 두뇌에 어떻게 비칠지,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할지는 부수적인 일이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관심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따라서 명성을 얻지는 못했으나 명성을 얻을 만한 자는 훨씬 중요한 것을 가진 셈이다. 비록 명성을 얻지 못하더라도 그는 중요한 것을 지니고 있으니, 그것으로 스스로 위로하면 된다. -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