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곳
독서 모임은 최소한의 사회성을 유지하게 도와주는 곳이다. 무분별한 술자리와, 의미 없는 만남보다 훨씬 이롭다. 부동산 전문가임에도 드러내며 허세 부리지 않는 분, 철학 학사 이후 컴공 석사를 취득 후 개발자로 누구나 알고 있는 은행에 취업한 분, 마찬가지로 개발자로 누구나 알고 있는 카드사에 취업한 분, 한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자기의 꿈을 이루러 붓을 잡은 분, 훌륭한 전업 투자자, 작가, 기자, 약사 등 현생을 착실히 살아가는 분들이 있는 곳. 이러한 현인들과 격의 없이 대화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독서 모임이다.
글 박진권
독서 모임에서는 온갖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대부분 긍정적인 힘을 전달해 주는 분들이 나타난다. 부동산에 문외한 나에게 최소한의 지식을 알려주신 분도 있다. 편협한 생각으로 타인의 의견을 배려하지 못했던 시기, 독서 모임은 나에게 한 줄기의 빛이 되었다.
나의 첫 독서 모임은 단편 ‘고전’을 읽는 곳이었다. A4 용지로 적으면 1쪽 많으면 2장 분량이었기 때문에, 읽고 모이는 것도 문제가 없었다. 고전 특성은 해석의 여지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같은 글을 읽었음에도 서로 견해가 다른 점이 좋았다. 신선한 해석 덕분에 막혀있던 심상이 몇 번이고 뚫렸다. 그곳에서 작가가 된 분과 기자를 만나 새로운 꿈을 꾸게 되었다. 인생의 전환점 중 하나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두 번째는 인원이 다섯 명 정도인 작은 모임이었다. 여의도에서 주말 아침 9시마다 개최했다. 이곳의 모임장과 초기 운영진들은 열정이 대단했다. 밤늦게 막차가 끊길 때까지 야외에서 회의도 했다. 그렇게 1년 만에 모임원은 200명 이상 늘어났다. 나는 이곳에서 한 달 동안 평일 포함 10번 정도의 모임을 개최했다. 그만큼 모임 자체가 재밌었다. 퇴근 후 평일 독서 모임에 나오는 훌륭한 분들과의 만남은 항상 긍정적이었다. 하나, 지각이나 모임 개최 횟수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 운영진과 모임원의 연애 금지라는 조항 때문에 운영진을 내려놓았다. 정이 예전만 못하기도 해서 현재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이 모임에 정이 남은 이유는 하나다. 평생의 반려를 만났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직접 운영 중인 독서 모임이다. 아직은 작지만, 바로 전 모임과 비슷하게 열정 가득한 소수의 사람 덕분에 더디지만,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 그들과 함께 또 하나의 모임을 꾸려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나만의 모임을 만들었다는 자부심도 생겼다.
어쩐지 전 모임에서는 진보적인 성향인 사람들이 모임 운영에 대해서는 대단히 보수적인 관점으로 접근하는 듯했다. 지각생과 당일 취소자의 강력한 제재 및 운영진 없이 모임을 개최하는 것이 아주 쉽게 부결되었다. 이렇듯 모임의 발전에 필요한 장치들이 계속해서 부결되다 보니 모임에 대한 애정이 식었다. 물론 지금은 훌륭한 운영진들 덕분에 많은 것들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자유로운 분위기의 모임을 선호한다. 매주 20명 이상 모일 수 있는 모임을 만들고 싶다. 참여하고 싶은 인원이 언제든 참여할 수 있는 모임을 말이다.
인위적으로 사람을 만나는 모임 중 독서 모임이 가장 건전하다. 의외로 독서인들은 열정적이다. 타인에게 발전에 관련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원래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들도 많지만, 어쨌든 읽으려는 사람과 책의 필요성을 느낀 분들이 나타난다. 내가 보고 느낀 것을 타인에게 설명할 때 한 단계 높은 이해가 가능하다. 그들이 모이고 모여, 개인의 상승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최소한의 사회성을 유지하고자 만든 모임 덕분에 발전의 기회까지 얻는 것이다. 모임만 바뀌었을 뿐 나는 여전히 책을 읽으러 독서 모임에 참여한다.
생각한 것보다 본 것을 타인에게 전달하기가 훨씬 쉽고, 또한 이해시키기도 훨씬 수월하다. 따라서 생각한 것보다 본 것에 관해 쓴 글에 독자가 훨씬 많을 것이다. -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