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뜨기 전에 글을 씁니다

일찍 일어나는 새

by 박진권

해뜨기 전에

글을 씁니다


새벽은 하루 중 가장 이성적일 수 있는 시간이자 가장 조용한 시기다. 층간소음의 방해도 없고, 술에 취한 사람의 고성방가도 없다. 자동차도, 고양이도 아직 잠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시간에 나는 서재로 향한다. 쓸 글이 없어도, 어쩐지 오늘은 쓰고 싶지 않아도 일단은 책상 앞에 앉는다. 그렇게 있으면 머리를 싸매지 않아도 결국 글은 써진다. 완성도가 낮은 글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박진권




일찍 일어나는 새

가장 맑은 상태의 머리에 잡생각이 들어올 공간은 없다. 하루 동안 온갖 잡생각이 물밀듯 들어오는 나로선 이 시간을 충분히 활용해야만 한다. 글은커녕 파편적인 생각의 정리도 쉽지 않기에 새벽의 적막 속에서 글을 충분하게 쓰려고 노력한다. 어쩌면 강박일 수도 있다. 이 시간에 대략 8할 정도의 글을 완성하지 못하면, 초조해지기 때문이다. 나머지 글은 오후에 틈틈이 쓸 수는 있지만, 만족스럽지는 않다. 새벽에 시작한 글은, 새벽에 끝마치고 싶은 욕심이다. 물론, 퇴고는 별개의 일이다. 매일매일 1,000자 이상의 글을 쓰자고 마음먹은 후부터 퇴고는 잘하지 않게 됐다. 분명 투고 전에는 수많은 퇴고가 이루어지겠지만, 매일은 쉽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새벽마다, 1,000자가 넘는 글을 쓰며 여러 번의 퇴고까지 겹치면 두 마리의 토끼 모두를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새벽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내음을 머금고 있다. 서재의 창문을 활짝 열면 기분 좋은 새벽 내음이 밀려 들어온다. 겨울에는 그 향기가 더욱 증폭되어, 마치 각성제처럼 아직 잠이 덜 깬 뇌에 신선한 충격을 준다. 글을 거의 다 썼을 때쯤, 고요한 새벽이 물러가고 새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먹색에 가까웠던 바깥이 어느새 파란색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키보드에서 잠시 손을 떼고 창밖을 내다본다. 새벽 글 쓰기 덕분에 매일 일출을 보는 것이다. 창문을 활짝 열어도 건물들이 즐비해 있지만, 좁은 틈으로라도 하늘을 볼 수 있다. 그렇게 시작과 동시에 하루가 만족스러워지는 성급한 행복이 찾아온다. ‘오늘은 이 정도로 충분해’라는 게으른 기쁨을 맛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이른 시간에 잠에 들어야 한다. 일찍 일어나는 새는 아침이 아니라, 전날 밤이 만든다. 술 모임을 미루고, 하소연이 찾아오는 만남을 줄이는 것이 좋다. 의미 있는 일대일은 나쁘지 않을 수 있지만, 어떤 의미가 있다고 해도 다대일은 무조건 소모적이다. 그렇게 소모된 체력을 밤에라도 채워야 하지만, 일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사교 모임은 언제나 시간을 빠르게 달아나게 하는 마법을 부리기 때문이다. 시계를 확인했을 땐 이미 늦었을 것이고, 늦은 김에 ‘오늘 하루만’이라는 악마가 찾아온다. 인간은 그 악마를 뿌리칠 재간이 없다. 유일한 방법은 그 악마가 찾아 올 빌미를 주지 않는 것이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새 나라의 새 어른만이 새벽의 찬란함을 마주할 수 있다.


세상에는 좋지 않은 것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나쁜 것이 사교다. 그래서 사교적인 프랑스인인 볼테르조차 “이 지상에는 같이 대화를 나눌 가치가 없는 사람들로 득실거린다”(「드 베르니스 추기경에게 보내는 편지」 1762년 6월 21일)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줄기차게 고독을 너무나 사랑했던 온유한 성격의 페트라르카 역시 이러한 경향에 같은 근거를 제시했다. 난 언제나 고독한 삶을 추구해 왔다. (시냇물과 들판과 숲이 그걸 말해 줄 수 있다) 머리가 둔한 사람을 피해 그들을 지나 광명의 오솔길로 접어들 수 없으니까. (『소네트』 221) -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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