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평일 점심 식당에는 사람들이 모여있다. 적게는 단둘이, 많게는 네 명 이상이 한 테이블에 모여서 식사한다. 그런데, 무엇을 먹을지는 누가 결정할까. 보통 ‘싫다’라는 말할 줄 아는 사람이 선택한다. 배려하는 사람은 항상 후 순위다. 먹기 싫은 것을 억지로 먹는 게 아니라, 겨우 점심에 힘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다. 사람이 늘어날수록 의견도 많아진다. 이견 조율은 항상 시간이 소모된다. 하루 중 가장 쓸데없는 것에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다. 점심에는 먹고 싶은 밥을 먹고, 최대한 깊게 쉬는 게 좋다. 그래야 점심 이후에도 효율 높은 업무를 이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 박진권
여럿이 먹으면 더 맛있는 것과 단 하루도 혼자서 먹지 못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이것도 할 수 있지만, 다른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능력이다. 그러나 하나만 할 수 있는 것에 적절한 이유를 붙이는 것은, 비겁한 합리화일 뿐이다. 식사 자리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가정에서도 사회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자기주장이 약한 사람일수록 밥 먹을 때라도 본인이 먹고 싶은 것을 먹어야 한다. 평생 남의 생각에 이끌려 다닐 순 없지 않은가. 밥 먹는 것조차 혼자 선택하지 못하고, 홀로 해내지 못하는 사람은 평생 누군가의 그늘에 억눌려 살 가능성이 높다.
업무의 연장이 되는 대화를 하지 않고, 누군가를 욕하는 말을 하지 않으며 오롯이 휴게로서 점심시간을 활용해야 한다. 회사는 회사일뿐이고, 회사 밖을 벗어난 동료는 철저하게 남이다. 퇴사 후 평생 만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일 뿐이다. 갑자기 반목하라는 게 아니다. 5일 중 단 하루라도, 완전한 휴식을 즐겨보라는 권유다. 겨우 밥 먹는 것 하나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아닌 혼자 밥 먹는 것도 못 하는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사람은 혼자 있을 때도 안정적이어야, 타인과 함께할 수 있다. 혼자 밥 먹을 줄 아는 사람이 여럿이 먹을 때도 안정적이다. 밥뿐만이 아니라, 일도, 관계도 개인의 역량이 높아야 협력할 때도 상승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것은 나도 알고, 남도 알고, 당신도 아는 사실이다. 그 사실을 현실로 만들어 보는 게 어떨까.
특히 비교적 젊은 시절에 사람들이 당연히 마음에 들지 않아 걸핏하면 고독의 세계로 움츠러들곤 했지만, 고독의 적막함을 장기적으로 견딜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런 사람에게 고독의 일부를 사회로 가지고 가는 버릇을 들이라고, 사회에 나가서도 어느 정도 혼자 있는 법을 익히라고 권하고 싶다. 따라서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즉각 남에게 전달하지 말라고 충고하겠다. -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