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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책감 없는 살인, 사이버 판사들

무분별한 철퇴

by 박진권

죄책감 없는 살인,

사이버 판사들


사람은 각자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다. 이 가면은 굉장히 가변적이라 때와 장소에 따라 자주 바꿔 쓸 수 있다. 물론, 그 사람의 결까지 바꾸기는 상당히 어렵다. 여러 개의 가면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결국 비슷한 색상과 디자인에서 머무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실에서의 가면은 누군가 벗겨낼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개인은 그 가면을 유지보수해야 하고, 한 공간에서 가면을 교체할 수도 없다. 하지만 인터넷은 다르다. 결이 완전히 다른 가면을 착용할 수도 있고, 한가지 가면을 유지할 필요도 없다. 그곳에서 가면이 훼손됐을 땐, 그저 ID를 바꾸고 다른 가면을 착용하면 그만이다.


박진권




무분별한 철퇴

인터넷 판사들의 정보력은 대단히 제한적이다. 언론이 공개하는 만큼 또는 자기가 보고 싶은 만큼만 알기 때문이다. 언론도 어느 쪽 언론을 보느냐에 따라서 그 정보가 완전히 달라진다. 같은 내용을 보고도 다르게 해석하는 게 사람인데, 언론사마다 그 기조가 명확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대서특필해야 할 사건을 알게 모르게 은폐하기도 한다. 이번 직장 내 괴롭힘으로 자살한 오요안나씨의 사건을 일절 다루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한 언론에서는 윤석열을 아직도 ‘대통령’이라고 지칭하고, 반대에서는 ‘내란수괴’라고 명명한다. 개인이 성향에 따라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심지어 정보의 혼란성도 한몫한다. 어쩐지 맞춤법도 이상하고, 띄어쓰기도 과하게 틀리는 댓글이 많이 달리는 주제가 있다. 한국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어순과 단어 사용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반대되는 의견이 실시간으로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면 조작 의심이 확신으로 바뀐다. 이런 상황에서 기사만 보고, 유튜브만 보고 개인의 사유도 없이 그저 익명성이라는 가면을 착용한 사이버 판사들만큼 멍청한 존재는 없다. 각자 판사 봉을 들고 설치며 누군가의 목숨을 저울질할 뿐이다.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정의의 철퇴 뒷면에는 무고한 인간의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다. 그들은 지금도 ‘나락’으로 떨어질 누군가를 찾기 위해 혈안 되어 있다.


명백히 저지른 실수에 대해, 흔히 그러듯이 우리 자신을 변명하고 미화하거나 축소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러기보다는 잘못을 깨끗이 인정하고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질렀는지 확실히 따져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는 것이 좋다. 물론 그럴 경우 자기 자신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커다란 고통을 가하는 셈이 되겠지만, “징계를 받지 않고는 배움을 얻을 수 없다.” [메난더(Menander 기원전 342~292), 『단행시』 422행]. -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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