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일, 120개의 글
2025년 4월 27일, 언제든 글을 쓸 수 있었다. 원래 하던 것처럼 철학 에세이를 작성해도 좋았고, 시를 써도 그만이었다. 투자하는 시간은 길어야 2시간이고, 보통은 1시간이면 해결된다. 그럼에도 왠지 모르게 쓰기 싫었다. 그렇게 쓰지 말자고 마음먹고, 그것에 대한 당위성을 찾았다. 회사도 주말엔 쉬는데, 글쓰기도 좀 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골수를 타고 흘러들어왔다. 마비된 사고는 어느새 그것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글 박진권
나는 오늘 최소 12만 자의 글을 포기하려고 했다. 한 해의 토요일과 일요일 그리고 여타 법정공휴일을 계산하면 평균 120일의 휴일이 나온다. 만약 글쓰기도 휴일마다 쉰다면, 대략 120번의 작문을 포기하는 것이 된다. 브런치에 게시하는 글은 대체로 일천 자에서 이천 자사이다. 그러니까 겨우 귀찮음, 하나로 최소 12~24만 자 사이의 글을 포기하려고 한 것이다. 얼마나 대책 없고, 한심한 일인가.
하루쯤 쉬어도 된다는 안일한 생각이, -12만 자가 된다. 무려 책 한 권 분량의 활자다. 한 해에 책 두 권 분량의 글쓰기를 연습한 사람과 세 권 분량의 글쓰기를 연습한 사람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물론, 개인의 재능과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야겠지만, 스스로는 확연하게 다를 것이다. 10년으로 계산하면 최소 10~20권 분량의 활자를 내다 버린 게 된다. 운동은 하루쯤 쉴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도, 몇 달 쉬어도 좋다. 운동, 그림, 사진, 휴식, 회사까지 모두 다 하루쯤 쉰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그러나 글은 절대로 안 된다. 하루가 이틀이 되고, 주말이 평일이 된다. 평생 붙잡을 수 있는 건 성실함과 작문 하나뿐인데, 이것마저 놓아버리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
어쩌면 이 부분이 강박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강박이라고 하기에 내게 죄책감은 티끌과 같다. 사실, 하루쯤 쓰지 않고 결국 실패했다고 해도,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다시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게 뻔하다. 여태껏 내가 이루고자 한 모든 일을 그런 식으로 방관했다. 강박증이 심한 사람은 놓아줄 필요성이 있지만, 방관의 극에 달한 사람은 조금쯤 강박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세상 모든 것을 쉽게 그리고 자유롭게 살아가면서 글 하나 쓰는 것까지 되는대로 하려고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누구보다 빠르게 등단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백전백패하는 인간도 있는데, 그게 바로 나다. 다행인 것은 진다고 해도 고꾸라지지 않는 근성이 있다는 것. 나는 글 쓰는 것에 큰 재능이 없기에 방법은 하나뿐이다. 쓰고, 또 쓰고, 계속 쓰는 것이다. 원초적이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모든 것을 다 잘하고 싶다는 욕망은 버린 지 오래다. 그러나 작문, 쓰는 것은 꼭 잘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이 정도의 강박을 필수 불가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