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

박진권

by 박진권



[10살]

어릴 적 갑자기 침대 밑에 작고 투명한 상자가 나타났다. 말 그대로 뜬금없이 생성된 것이다. 그것은 내 작은 손에 딱 알맞은 크기였고, 속이 훤히 보일 정도의 투명한 직사각형 상자였다. 곧장 상자를 들고 부모님께 말씀드리며 보여봤지만 장난치지 말라는 훈계만 얻어냈을 뿐 다른 반응은 없었다. 부모님은 농담이라는 것을 할 줄 아는 부류의 인간들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 상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장난을 칠리가 없었다. 그러자 마음속에서 어떤 것이 일렁이는 게 느껴졌다. 물 먹은 스펀지처럼 부풀어 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나만 볼 수 있는 작은 상자의 존재는 그 무엇보다 특별했다. 한 번은 아버지가 아끼는 기름 라이터를 상자에 넣고, 누구나 볼 수 있는 장소인 식탁 위에 떡하니 놔둔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나를 의심하며 뺨을 갈기곤 내 방을 난장을 만들었지만, 당연하게도 라이터는 없었다. 투명한 상자 안에 든 라이터는 밥을 먹을 때마다 항상 그 자리 그대로 식탁 위에 위치해 있었지만 아버지는 라이터를 영영 찾지 못했다.


이튿날 나는 상자를 들고 집을 나섰다. 가장 먼저 간 곳은 동네에서 제일 큰 문방구였다. 평소에 가지고 싶었던 것은 아니지만, 연필과 지우개 그리고 수첩 등을 상자 안에 몰래 넣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족할 만큼 욱여넣은 후 문방구를 나서자 주인아저씨가 나를 불러 세웠다.


"친구야, 너 아무것도 안 사가니?"


"네, 필요한 게 없어서요..."


뱀 눈으로 나를 째려보던 주인아저씨는 우물쭈물 자신 없게 대답하는 나를 보고는 확신에 찬 움직임으로 내 앞에 다가섰다. 삐쩍 말라 볼이 깊게 파인 아저씨는 눈을 가늘게 뜨고 독사가 속삭이듯 나지막하게 말했다.


"지금이라도 용서를 구하면 부모님께는 말씀드리지 않으마."


"네? 저는 아저씨가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 건지 모르겠어요..."


"하... 네가 훔친 그 물건들, 다시 돌려주면 아무런 죄도 묻지 않겠다는 소리야. 다시 한번 말 하마. 용서를 구하고, 돌려주렴."


"하지만... 저는 아무것도 훔치지 않았어요..."


이내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아저씨는 내 손목을 거칠게 잡아끌고는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는 주머니를 다 수색한 후에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자 당황한 아저씨는 내 바지를 벗겨 팬티 안 까지 확인했다. 팬티 안에는 작고 소중한 물건이 있긴 했지만, 아저씨가 원하는 물건은 아니었다. 내가 수치심에 울음을 터트리자 지나가던 한 아주머니가 아저씨를 가볍게 나무랐다. 그러자 아저씨는 사색이 되어 나를 달래기 시작했다.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내뱉으며 사탕과 소정의 장난감을 손에 쥐어주었다. 물론,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않겠다는 조건이 붙어있었다. 나는 진정한 후 아저씨에게 알겠다고 대답을 한 뒤 집으로 돌아와 곧장 어머니에게 말씀드렸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아버지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문방구로 향했다. 그날 저녁 우리는 고급 육고기를 배가 터지도록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15살]

몇 년 동안 훔친 물건을 상자에 넣으며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상자가 성장한다는 것이다. 실험을 위해 며칠 동안 내 물건을 여러 번 넣어봤지만, 어떤 변화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내 것이 아닌 모든 것에는 다르게 반응했다. 친구의 휴대전화, 게임기, 돈, 학용품 등등 내 것이 아니기만 하면 됐다. 그렇게 몇 년 간 꾸준히 상자를 키워나갔다. 어릴 적 내 손정도의 크기였던 직사각형의 상자는 어느새 내 키만큼 자라 있었다. 이토록 커진 상자를 보고 있자니 문득 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살아있는 것도 넣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위험한 생각은 상상으로만 그치지 않았고, 이내 행동으로 옮겨졌다. 곧이어 상자 속에 각종 곤충과 비둘기 그리고 고양이와 개를 잡아다 넣었다. 그 생명이었던 것들은 상자에 귀속됨과 동시에 작동을 멈췄다. 놀란 동공은 채 감기지 않았고, 경직된 몸통들은 살아있던 거라고 하기엔 너무도 인위적이었다. 나는 상자 바로 앞에 얼굴을 대고 그것들과 눈을 마주쳤다.






[17살]

방 문 뒤에 숨어 그녀를 기다렸다. 그녀는 늘 그랬던 것처럼 문을 박차고 들어와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내게 울분을 토해내며 들고 있던 나무 몽둥이를 침대 머리맡으로 던졌다. 푹 꺼지는 이불로 인해 내가 없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어리둥절한 채 넋을 놓고 있었고, 나는 천천히 문을 닫았다. 그리고 재빠르게 그녀의 입을 막고 허리를 낚아채 상자 안으로 구겨 넣기 시작했다. 그녀는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억 하는 소리와 함께 안간힘을 쓰며 발버둥 쳤지만 허사였다. 상자로 빨려 들어가듯 밀어 넣어진 그녀는 더 이상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없게 되었다.






[19살]

그는 그녀가 자신을 버리고 갔다며 매일같이 술독에 빠져 지냈다. 그는 인사 불성이 되어 매일같이 내 뺨을 갈기기 일쑤였고, 다 처먹은 술병은 항상 벽에다 던져 깨트렸다. 덕분에 나는 집안에서도 신발을 벗을 수가 없었다. 이제는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커질 만큼 커진 상자는 그를 넣고도 충분히 공간이 남을 듯 보였다. 그는 언제나와 같이 술을 처먹고 거실 바닥에 대자로 뻗은 채 잠이 들어 있었다. 나는 그의 바로 앞에 상자를 두었고, 곧이어 재빠르게 그를 들어 올려 상자 안으로 던져 넣었다. 그는 짧은 탄식과 함께 눈을 반쯤 뜬 상태로,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그녀의 곁에 무사히 안착했다.






[21살]

언젠가부터 상자는 굳이 들고 다니지 않아도 내 주변을 맴돌았다. 처음에는 시체들을 달고 다니는 게 탐탁지 않았지만, 어떤 사건을 겪고는 오히려 좋다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그 사건의 내용은 이러했다. 결론만 말하자면 사귀던 여자가 다른 남자와 몸을 섞었다. 그것도 내 집에서 말이다. 보통은 차분하게 상자에 넣을 계획을 세웠겠지만, 내 앞에서 뒤엉킨 그들의 엉덩이를 보고는 눈이 돌아갔다. 나는 남자에게 달려들었고, 일방적인 물리력을 행사했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피를 보고야 말았다. 그놈 때문에 투명하고 깨끗했던 상자에 지독하고 새빨간 얼룩이 생겼다. 내 여자였던 사람은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사람이 맞아 죽는 것을 보았고, 그 맞아 죽은 사람과 피가 낭자한 이불이 허공에서 사라진 것을 목격했으니까.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귀에 속삭였다.


"너도 이제 내 것이 아니네."






[25살]

상자는 더 이상 성장하지 않았다. 상자 안으로 빨려 들어간 사람들은 부패하지 않았고, 덕분에 상자 안은 사람으로 가득 차 쓸모가 없어졌다. 더 이상 물건을 훔칠 수도, 사람을 더 넣을 수도 없으니 처치 곤란이었다. 상자 안의 지저분한 것들을 지우기 위해 기름을 넣고 불을 붙여봤으나 허사였다. 상자 안으로 들어갔을 때 제 기능을 못하는 것은 비단 생명만이 아니었다. 무결점이었던 내 인생에 최초로 결점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상자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다. 상자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면, 나 또한 쓸모가 없다는 뜻이다.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 나는 결국 상자를 열었다. 그리고 사람 하나를 꺼내 공간을 만들었다.






[뉴스]

분류 - 사건*사고

<가정집 집단 자살 사건 '충격'>

조사 결과, 실종자도 다수 발견.


2022년 8월 27일 다수의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28일 경찰의 보고에 따르면 실종 접수된 사람들이 여섯 명이나 발견되었고, 심지어 실종신고를 했던 당사자와 대상자인 부모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현장에서는 어떤 약물도 발견되지 않았으나 경찰은 집단 자살로 사건을 마무리할 것으로 예견되며, 과한 추측은 삼갈 것을 권고했습니다.






[반복]

"안녕하세요 ~ 형님들, 온 세상의 흉가를 탐험한다! 여러분들의 귀흉둥이 흉탐입니다! 오늘 제가 탐험할 흉가는요, 바로 얼마 전 집단 자살 사건이 발생했던 빌라인데요. 같은 단지에서 살았던 주민들의 진술로는 밤마다 어떤 남자의 절규 소리가 들린다고 합니다. 때문에 다른 주민들은 모두 이사를 간 상태입니다. 자, 보세요! 다른 너튜버들은 진짜 사람이 죽어나간 곳이라며 촬영을 포기했잖아요. 그런데 제가 누굽니까? 그런 거에 겁먹지 않아요 ~ 지금 바로 입장해 보겠습니다!"


"자... 그냥 일반 빌라와 똑같은 형태예요.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아서 그런지 조금 냉랭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는데요. 쌀쌀해진 날씨 탓이겠죠? 자... 이제 401호 앞에 도착했습니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아서 전등을 켜야겠네요 ~ 음... 저긴가? 아, 아마도 저 큰 방이 사람들이 무더기로 죽은 장소인 것 같아요. 와... 확실히 느낌부터가 달라요, 형님들. 어, 진짜! 진짜 여기가 훨씬 추워요. 와, 저 원래 이런 말 잘 안 하잖아요. 진짜 무슨 사이비 같고 그래서 이런 말 잘 안 하는데, 이거 진짜 아니, 여기가 정말로 더 춥다니까요?"


"음... 방을 다 둘러봤는데요. 뭐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뭐 별거 없네요.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어? 저게 뭐지... 아니 아니 진짜 장난이 아니라요. 저기 뭐 투명색 상자가 하나 있는데요?"






소설가 박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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