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박진권

by 박진권



[1]

유난히 화창한 아침, 그녀를 떠내 보냈다. 기쁨에 겨운 나는 신음했다. 희열 때문일까, 손의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호흡도 너무 거칠었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흔들의자에 앉았다. 삐거덕 거리며 흔들리는 의자에 몸을 맡겼다. 그러자 웃음이 나왔다. 이윽고 폭소를 터뜨렸다. 이 모든 행태가 다 깨진 전신 거울에 비치고 있었다. 그때 거울 속 내가 입을 열었다.


"다 네가 자초한 일이야."


흔들리는 의자를 멈춰 세웠다. 그리고 천천히 일어났다. 땀 때문에 축 처진 머리카락이 눈을 찔렀다. 한 손으로 머리칼을 쓸어 넘겼지만, 고정이 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싸구려 잡화점에서 판매하는 관절 인형처럼 부자연스럽게 엎어져 있었다.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녀의 머리에선 아직도 따뜻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내 쭈그려 앉아 그녀의 피를 손바닥에 발랐다. 이후 양손으로 다시금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그렇게 몇 번 더 쓸어 넘기자 피가 굳으며 머리칼도 고정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에 내 얼굴을 맞대며 말했다.


"아플 거예요. 좀 참아요."


한 팔로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 올렸다. 다른 한 손은 바지 뒷주머니를 뒤적여 담배를 꺼냈다. 손목 스냅으로 담뱃갑을 툭 추켜올리자 담배 한 개비가 위로 솟아올랐다. 담배를 입에 물고 다시금 뒷주머니에 넣었다. 이번에는 앞주머니에 있는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리고 그녀를 질질 끌며 방을 빠져나왔다. 우리 집은 특이하게도 방에서 나오면 복도가 나타났다. 복도를 따라 걸어가면 오른쪽으로 꺾어지는 곳에 난간이 나타나는데, 그 난간은 1층이 훤히 보이는 구조였다. 난간을 따라 죽 걷다 보면 1층으로 향하는 나선형 계단이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그녀와 함께 계단을 내려갔다. 한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괘념치 않았다. 혹여 그녀가 아플까 걱정이 되긴 했지만 이내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실소를 머금고 다시금 걸어 내려갔다.


계단을 다 내려오면 정면에 아주 큰 통창이 하나 보이는데, 지금은 커튼으로 가려져 있다. 집안의 모든 창은 죄다 커튼이나 블라인드로 가려져있었다. 덕분에 대낮임에도 내부는 칠흑같이 어두웠다. 나는 그 속으로 과감하게 들어갔다. 1층에는 가구랄 것이 딱히 없었고, 정 중앙에 식탁 하나만 위치해 있었다. 내부 사정을 뻔히 아는 나로선 굳이 불을 켤 이유가 없었다. 나는 그녀와 함께 휑한 거실을 지나쳤다. 거실을 지나면 지하실로 향하는 문이 하나 나타난다. 굳게 닫혀있는 문의 도어록을 자연스럽게 들어 올렸다. 곧이어 번호를 입력하니 띠로링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지하실이 개방됨과 동시에 뿜어져 나오는 냄새에 코를 막았다. 내려가야 하지만, 이제는 모든 게 다 귀찮아졌다. 결국 그녀를 계단 밑으로 내던졌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잘 안착한 그녀의 몸은 더욱 기괴하게 꺾여 있었다. 살짝 튀어나온 그녀의 왼쪽 눈이 나를 응시했다. 생기가 다 한 그녀의 눈은 아직도 아름다웠다.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문을 천천히 닫았다. 띠로링 소리와 함께 완전히 닫힌 문을 양손으로 집었다. 어쩐 일인지 눈에서 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아니지, 네가 만든 일이지."


그리고 전화를 걸었다.


"개인 사정으로 오늘부터, 출근이 힘들 것 같습니다."






[2]

그녀를 생각했다. 그녀에 대한 생각은 사소하지만 중요했다. 쓸모없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필요했다. 나는 하루의 대부분을 침대에 누워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 그녀가 보고 싶었다. 정확히는 그녀의 눈이 보고 싶었다. 그 눈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나는 아린 가슴을 부여잡고 다시 눈을 감았다. 잠시 후 잠이 밀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건데."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알겠어, 알겠다고. 이번에는 너에게 양보할게. 이러지 말고 우리 어디라도 떠나자. 이 집안의 냄새를 봐. 여기 계속 있다간 모든 게 끝난다고."


나는 그대로 대꾸하지 않으며 눈만 번쩍 떴다.


"통영으로 가자. 잡혀도 거기서 끝내."






[3]

기차역에서 나와 뜨거운 햇볕을 마주하니 여행을 온 게 실감이 났다. 나는 바다를 향해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을 어떻게 장식할지 고민했다. 또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유추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니 온 몸이 땀으로 흥건해졌다. 그렇게 순식간에 밀고 들어온 허기에 나는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다. 생각해보니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마침 근처에 국밥집이 하나 있었고,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서 오세요 ~ 혼자? 이쪽으로 앉아요."


"네."


"혼자 왔나 봐, 대학생?"


"예? 아, 예."


"뭐 줄까요?"


"아... 돼지 국밥 주세요."


"예 ~ 돼지 하나요~!"


여주인은 시시콜콜한 질문을 끝으로 주문을 받고는 사라졌다. 이내 다른 종업원이 밑반찬을 날랐다. 김치와 무생채 그리고 콩나물무침과 소금 후추가 놓였다. 마지막으로 물과 컵 그리고 수저를 놓고 종업원은 말없이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젓가락으로 콩나물무침을 한 움큼 집어 들고는 입에다 넣었다. 곧이어 아드득 뽀드득하는 식감을 느끼며 주변을 둘러보니, 아까 사라졌던 종업원이 고개를 숙인 채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 작은 체구에 긴 머리, 다소 생기는 없지만 순수함을 머금은 눈. 그녀의 눈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때 시선을 느낀 그녀가 눈을 치켜세웠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황급히 눈을 돌려 다른 테이블을 응시했다. 때마침 여주인이 국밥을 들고 나타났다.


"학생, 조심해요~ 뜨거워~"


펄펄 끓는 국에 숟가락을 넣어 휘휘 저었다. 곧이어 공깃밥을 손에 들고 위아래로 세차게 흔들고는 뚜껑을 열었다. 둥그렇게 잘 뭉쳐진 밥을 뚝배기에 투하시켰다. 드디어 진정한 국밥이 완성된 것이다. 나는 허기를 참지 못하고 김치를 올려 한 입 크게 떠 넣었다. 두 어번 씹었을까 너무 뜨거워서 물을 마실 수밖에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한 숟갈 크게 뜨고는 후후 불며 천천히 입으로 가져다 넣었다. 그렇게 허겁지겁 절반쯤 먹어갈 때쯤 나는 주인을 한 번 더 불렀다.


"사장님, 이거, 아니 돼지국밥 하나 더 주세요."


사장은 놀란 눈을 했지만, 이내 알겠다는 수신을 보내고 다시금 '돼지 하나요'를 외쳤다. 한 그릇을 다 비워냈을 때쯤 다음 국밥이 준비되었다. 똑같이 숟가락을 넣어 휘휘 젓고 있는데, 어디선가 불쾌한 음성이 들렸다. 미친듯한 허기가 달래 지자, 서서히 주변이 보였다. 가게 안엔 대낮부터 소주를 세 병이나 깐 일용직 노동자 둘이 있었다. 그들은 다 먹은 국밥을 뒤적이며 한 여자를 희롱하고 있었다.


"야 ~ 언제 맛 보여줄 거야 ~?"


"아, 맛이나 좀 보자!"


나는 아직 펄펄 끓는 국밥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내 고개를 흔들며 컵에 물을 따랐다. 그리고 그들의 다리 쪽으로 컵을 엎질렀다. 그들은 욕설과 함께 큰 소리르 내며 일어섰고, 나는 굉장히 놀란 표정을 지으며 사과했다. 부랑자 둘은 계속해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계산대로 향했다. 나는 피식 웃으며 국밥을 입으로 떠 넣었다. 잘 익은 김치를 한 조각 입에 넣으며 정면을 바라보니 그녀가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또다시 재빠르게 시선을 거두고 계속해서 국밥을 입에 쑤셔 넣었다. 두 그릇을 다 비워갈 때쯤에도 그녀의 시선이 느껴졌고, 내 심장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계산을 마치고 가게를 나올 때 흘끔 쳐다본 그녀는 아직도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4]

옷을 벗고 모텔 침대에 누워 그녀를 떠올렸다. 생김새가 확연하게 다른 그녀들은 어째선지 눈이 닮아 있었다. 그 깊고, 무엇인가를 꿰뚫어 보는 듯한 눈. 나는 그녀들을 생각하며 습관적으로 담배를 찾았다. 그러나 담배는 주머니에도, 가방에도 없었다. 아무래도 아까 걷는 도중에 떨어트린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다시금 옷을 주워 입고 밖으로 나갔다. 해안가를 따라 한참을 걷다 보니 수퍼마켓이라고 쓰여있는 가게가 나타났다. 가게에 들어가 국산 담배를 아무거나 집은 후 슈퍼 앞 탁상에 앉았다. 이내 담배를 태우며 그녀를 떠올렸다. 어쩐지 연기 속에서 그녀의 눈이 또렷이 보이는 듯했다. 누구의 눈인지를 가늠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인기척이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니 가게에서 막 나온듯한 그녀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깊고 멍한 눈빛으로.


그녀와 나는 나란히 서서 해안가를 걸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그저 앞으로 한 발, 또 한 발을 내딛을 뿐이었다. 이내 도착한 모텔 앞에서 나는 우두커니 멈춰 섰다. 그러자 그녀가 내 손을 잡았고, 나를 안으로 인도했다.


방으로 들어온 우리는 침대에 나란히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대화도, 어떤 격정적인 행동도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어색함 때문에 미칠 것 같은 나는 결국 일어났다. 수건을 한 장 챙겨서 욕실로 들어갔다. 싸구려 비누로 온 몸을 닦았다. 그리고 싸구려 수건으로 몸에 묻은 물기를 대충 훔치며, 거울을 바라봤다. 거울 속 나는 웃고 있었다. 나는 인상을 팍 쓰고는 물기가 덜 닦인 채 욕실 문을 열고 나와 그녀 앞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조금도 놀라지 않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옷을 벗었다. 우리는 마치 오래된 연인 사이처럼 아주 긴 전희를 가졌다. 이내 그녀의 수락이 떨어지자 나는 한 마리의 맹수로 돌변했다. 짐승처럼 그녀를 범했다. 수명이 다 한 침대의 스프링은 삐걱대며 아우성을 쳤다. 절정에 다다를 때쯤 나의 의식은 점점 멀어져 갔다. 의식을 잃지 않기 위해, 그녀를 잃지 않기 위해 이를 꽉 물었다. 그녀의 양팔을 들어 올려 꽉 잡았고, 모터가 달린 듯한 허리는 멈추지 않았다. 아무런 동요 없던 그녀의 동공은 강하게 흔들리다 못해 퍼져 있었다. 그녀의 표정을 보자 압도적인 만족감이 밀려 들어왔다. 결국 나의 의식은 점차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의 비열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5]

의식은 돌아왔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눈도 떠지지 않았다. 심지어 역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때문에 속까지 메스꺼웠다. 겨우 눈을 뜨고선 천천히 팔을 움직여봤다. 곧이어 허리, 골반, 하체 순으로 천천히 움직임을 찾아 나갔다. 그렇게 한참을 버둥거리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온몸이 매우 축축했다. 사방이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옆을 더듬거렸다. 그때 그녀의 등이 만져졌는데, 똑같이 흠뻑 젖어있었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나는 그녀의 머릿 쪽으로 손을 옮겼다. 그러자 머리카락이 만져져야 할 부위에서 어떤 말랑한 것이 손에 잡혔다. 나는 손을 거두고 벌떡 일어나 방 안의 불을 켰다. 그녀는 옆으로 돌아누운 상태였고, 머리는 반쯤 으깨져 있었다.


"아아악!"


나는 괴성을 지르고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를 정자세로 돌려 눕히고 감겨 있는 한쪽 눈꺼풀을 왼손으로 벌렸다. 생기가 완전히 사라진 그녀의 눈알이 보였다. 그리고 외쳤다.


"이게 아니야!"


나는 그녀의 눈을 응시하며 오른손으로 그녀의 눈알을 파냈다. 그리고 눈알을 쥔 채 욕실로 향했다. 욕실 문을 연 직후 거울을 향해 눈알을 던졌다. 거울엔 눈알의 파편들이 낭자했다. 나는 한껏 인상을 쓰며 거울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거울 안에 있는 나를 응시했다.


"마지막은, 내 차례였잖아!"


거울 속 나는 여전히 비열하게 웃고 있었다.






소설가 박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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