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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코 Dec 10. 2020

Day18. 내 인생의 세 사람


나와 너무 다른 너

사람이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느끼게 해주는 내 동생은 나와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다 다르다. 성격, 취향, 외모, 좋아하는 음식까지 하나도 맞는 것이 없다. 하지만 내가 정말 사랑하는 동생이기에, 이런 점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20대 중반, 개발자가 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공부를 하며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을 때 동생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 있었다. 지금보다 더 불도저 같던 그 시절의 난 가만히 있는 것은 안일한 행동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사람들은 만나고 싶지도 않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집에 가면 그런 동생의 모습을 매일 보다니, 아이러니했다. 일도 안 하고 집에서 빈둥거리는 동생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동생이 최대한 편한 게 쉴 수 있게 해 주려고 노력했다. 동생에게 필요한 시간일 수도 있기에 이 시간을 잘 보내면, 다시 일어설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집에 있을 땐 식사시간에 같이 밥을 해 먹고, 밖에 나가서 외식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동생이 쉴 때 여러 가지 경험을 해봤으면 싶어서 여러 활동들을 찾아봐서 알려주었다. 그중에 제주도 게스트 하우스에서 살면서 한 달 동안 일도 하고 여행도 할 수 있는 한달살기가 한창이었다. 동생은 그 길로 제주도 비행기 티켓을 끊었고 한 달 동안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그리고 돌아와서 다시 일을 시작했고 그동안 했던 어느 일 보다 열심히, 오래, 잘, 해냈다. 만약에 내가 그 시간을 참지 못하고 동생을 다그치고, 내몰았으면 우리 사이는 틀어졌을 것이다. 동생이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을 것이고, 추억을 만들어 주지도 못했을 것이다.

사람마다 에너지의 양이 다르다. 누군가는 이 정도 했으면 쉬어야 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계속해도 지치지 않을 수 있다. 나는 동생과 나와의 차이를 통해, 또 이해하려는 애정을 통해 다름을 배운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

나는 전화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특히 윗분들에게 그런데 내가 절대 애정이 없거나 그분들을 생각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런 내가 더 연락을 못했던 때가 있었는데 바로 회사를 그만뒀을 때다. 회사를 안 다니니 자존감이 낮아졌고, 불안한 마음에 누군가에게 연락할 생각도 하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전화가 왔다.

"너 이렇게 연락 안 할 거야."

"죄송해요 제가 먼저 전화했어야 하는데..."

"다음엔 아웃이야. 어디야"

이 분은 내 고등학교 은사님이신데 정말 살뜰히 나를 챙겨 주셨다. 내가 잘할 때나 못할 때나, 부족할 때나 늘 연락해주시고 응원하고 믿어주셨다. 나에게 나이기에 그냥 믿어주는 선생님이 계셔서, 이만큼 클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전하지 못한 편지
2017.02.06

선생님 안녕하세요 상아예요 엄청 오랜만에 편지 쓰는 것 같네요.
저는 집에 잘 들어왔어요. 밤이 늦었으니 조금 센티해져도 이해해주세요.
정말 오랜만에 다른 사람한테 징징 거려 본거 같아요. 투정도 하고 자랑도 좀 해보고 물론 친구들에게 가끔 하는 거지만 그냥 오늘은 선생님이랑 이야기하니까 좀 달랐어요. 음 엄마한테 하는 거랄까?
지하철 타러 가는 길 내내 뒤돌아볼까, 혹시 벌써 가셨으면, 추운데, 그냥 그래도 다시 돌아봤을 때 아무도 없으면 쓸쓸하니까 했었는데
선생님이 거기 서 계시니까, 손 흔들며 인사해주시니까, 그냥 혼자 울컥했던 것 같아요.
아직 나를 걱정하고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구나, 힘내라고 응원해줄 사람이 곁에 있구나 했어요.
살면서 항상 조금은 억울해 있었던 것 같아요.
행복하고 좋은 일들도 많았지만, 힘들고 슬펐던 순간도 있고 왜 나한테 이런 시련이, 아니 왜 이렇게 일찍 했었던 것 같아요.
아팠던 건 터널처럼 길었던 것 같고, 좋았고 행복했던 건 터널 끝의 눈 부심처럼 찰나 같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선생님이랑 얘기해보니까,

터널이 있어서 눈 부심도 있었던 것 같아요.
작년 엄마 기일 때, 스페인에 있어서 엄마 뵈러 가지도 못했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엄마는 내가 이렇게 회사를 그만둔다고 하면 그만두고 오라고 했을까? 반겼을까? 여전히 나는 자랑스러운 엄마의 자부심이 되는 딸이었을까 생각했어요. 근데 그러지 못했을까 봐 무섭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어요.
엄마는 그동안 제가 힘들어하는 걸 보면 분명 오라고 하셨을 거지만, 제 자신이 조금은 부끄러워 혼자 괜히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저는 여전히 엄마 딸이고 선생님한테 제자 상안데. 더 잘 보이고 더 잘하고 싶어서 그랬던 거라고 이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선생님이 이렇게 연락할 때까지 기다려서 죄송해요. 그래도 많이 생각했어요 선생님. 스페인 갔을 때는 선생님이 여행 갔다 오고 나서 주신 엽서 주셨던 것도 생각났고 얘기했던 것도 생각났어요. 그리고 웃긴 게 그때도 또 생각났어요. 불이 다 꺼진 집에서 혼자 수능 성적표 가채점하고, 꼬부기랑 놀겠다는 약속도 취소하고, 망연자실하고 있을 때, 선생님이 전화해주신 거. 저는 정말 평생, 앞으로도 그런 순간은 없을 것 같아요. 저는 정말 선생님 아니었음 재수고 뭐고 그냥 공장 가서 일했을지도 몰라요. 썼던데 중에 제일 좋은 데 가서, 이렇게 좋은 회사에서도 일해보고, 기회를 잡을 발판도 마련하고. 엄마한테 다 말해놨어요. 선생님도 잘 되게 해 달라고. 저한테 은인이라고 ^^ 엄마가 잘 보고 좀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돌아가신 엄마한테도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고, 엄마가 질투 날지 모르겠지만, 자랑스러운 제자도 되고 싶어요. 선생님이 키운 제자가 이렇게 잘돼서, 이렇게 잘 됐다. 정말 대한민국을 아주 조금은 바꿀 수 있는 멋있는 사람이 되려고, 자랑이 되려고 노력할게요.

늦게까지 징징거리는 제자 밥 먹이고, 타이르고, 응원해주고 얘기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이 자랑스러워할 제자가 될게요. 제일로요.
어떤 제자를 제일 자랑스러워할지 모르겠지만, 그게 뭐든 제가 그거까지 할게요.   


나와 함께 해주는 사람


집에 일찍 들어가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룸메이트인 네가 있으니. 예전에 혼자 살 때는 참 어두웠다. 방에 사발면 하나에 소주를 기울이며 하루의 스트레스를 풀기도 했고, 차가운 방바닥에 누워서 외로움에 떨기도 했다. 그렇지만, 지금 나와 함께 있는 네가 있어 좋다. 까만 밤을 혼자 지내지 않고,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있고 무섭다고 징징 거릴 사람이 있어서 좋다. 처음엔 서로 맞추느라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이 과정을 통해 누군가와 맞추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배려가 필요한 일인지 매일 배운다. 나의 삶이 안정을 찾아가는 건 함께 하는 사람이 있어서인 것 같다.

이제 양말도 안 뒤집어 벗고, 옷도 바로바로 걸어 놓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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