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인생은 무엇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나에게 있어 좋은 삶의 지표 중 하나는 공헌(Contribution)하는 삶이다. 사람이라는 동물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행복할 수 있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해야 부를 축적해 자유를 얻을 수 있다. 공헌하는 삶을 살면 위의 두 마리 토끼를 둘 다 잡을 수 있다고 믿는다.
최근에 존 보글의 부의 마인드라는 책을 읽었다. 책에서는 한 사람의 인생을 평가하는 핵심은 공헌과 인격이라고 제시한다. 매우 청교도적인 메시지긴 하지만, 구구절절 공감하는 내용이고 내가 생각하는 좋은 인생의 지지자를 만난 기분이라 책을 읽으며 매우 기뻤다.
책을 읽고 나서 또 하나의 질문이 마음 속에 맴돌았다. 좋은 삶의 지표를 공헌(contribution)이라고 뒀을 때, 어떻게 해야 잘했다고 소문이 나는 걸까?
예전의 나는 공헌의 방식 중 비즈니스의 방식이 가장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미디어 등지에서는 기업가들의 성공 신화를 찬양한다. 아마 그 영향도 있었고, 내가 속한 IT 업계가 세상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보니 그것이 가장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느끼는 건 공헌의 방식이 항상 비즈니스의 방식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이유는 두가지이다.
첫째로 풀고 기여하고자 하는 문제에 따라 기업의 방식이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 신약을 만들고 싶다면 바이오 기업을 설립하는 것이 맞겠지만, 특정 주제에 대한 지식에 관심이 있다면 그보다는 대학원 연구자가 더 맞을 수도 있다. 실제로 트위터 창업자 잭 돌시는 트위터를 기업의 형태로 만든 것을 후회했다고 한다. 프로토콜의 형태로 만들었어야 자기가 원하는 바를 더 잘 이루었을 것 같다고 말이다. 그가 한 말이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그가 하는 프로젝트로 미뤄 보았을 때 아예 거짓말은 아니라고 믿는다.
둘째로는 사람마다 성향과 재능이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주변에서 보는, 사회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는 10x 엔지니어들은 주로 geek들이다. 그들은 알게 모르게 세상에 기여하지만, 그들은 비즈니스에는 재능도 없고 관심도 없는 경우가 많다. 그들에게 지금의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기여할 것을 강요한다면 그들의 행복도는 매우 떨어질 것이다. 반대로 비즈니스맨을 연구소에 앉혀놓으면 바로 도망갈 것이다.
나는 최근까지 공헌의 방식에 대해 좁은 시야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처음에 언급했듯 공헌 또한 자신의 삶을 잘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인데, 특정 방식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누군가는 회사를 세워 세상을 바꾸고, 누군가는 연구실에서 진리를 탐구하며, 또 누군가는 조용히 사람을 돕는다. 오펜하이머는 핵폭탄을 만들어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려고 했고, 정치활동을 통해서도 평화를 가져오려고 했다. 중요한 것은 방식이 아니라 무엇을 하는가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질문은 여전히 남지만, 정답은 없고 스스로 결정하면 되는 문제일 뿐이다. 그저 믿는 대로 행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