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 따라 꽃멍 숲멍(여름) | 팽나무 느티나무 | 창원 우영우나무
휘리릭 지나가는 봄을 붙잡아 두고 싶지만, 눈치 없는 여름은 부르기도 전에 달려온다. 만약 길을 걸을 때 나도 모르게 발길이 그늘을 찾고 있다면, 여름이 이미 곁에 온 것이다. 날씨가 더울 때 큰 나무가 드리우는 그늘은 생각만으로도 시원하다. 햇살이 따가워지는 초여름 주말, 큰 나무를 찾아가기로 했다.
오늘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온 나무를 찾아 나섰다. 가족들이 정말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이다. 그 드라마 속에 상당히 비중 있는 역할(?)로 출연하여 '우영우 나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그 나무.
그 나무가 있는 곳은 경남 창원시 대산면 북부리다. 낙동강을 따라 이어지는 드라이브를 즐기기 위해 조금 일찍 남지 나들목으로 빠져 나왔다. 나들목에서 좌회전하면 오른편으로 낙동강과 나란히 길이 이어진다.
강가 곳곳의 수변생태공원과 습지의 초록빛이 싱그럽다. 가로수를 따라 강 풍경을 보면서 시골길을 달리는 기분이 여유롭고 상쾌하다. 창녕함안보를 지나쳐 본포교가 나오면 낙동강을 건넌다. 창녕에서 창원으로 넘어온 것이다. 다리에서 좌회전 후 북부리까지 이제는 왼편으로 강 풍경이 펼쳐진다.
북부리에서 ‘우영우 나무’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언덕 위에 우뚝 솟아 있어 한눈에 들어온다. 드라마 상징인 고래가 그려진 벽화 구경을 하며 마을을 걷다 보면 금방 언덕 위에 도착할 수 있다. '오른다'라는 표현을 하기도 애매한 높이이지만, 주변이 대부분 평지와 강이라서 언덕에서는 내려다보는 풍경은 거침없다. 사방이 확 트여 있다. 낙동강이 길게 들판을 가로지르고 양쪽으로 넓은 들판이 펼쳐진다.
드라마가 종영되고 시간이 제법 흘렀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이 찾아와 나무가 내어주는 그늘에서 쉬고 있다. TV를 볼 때 느티나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팽나무이다. 수령이 무려 500년 이상이라 여러 사람이 손을 맞잡아야 겨우 둘러쌀 수 있다. 노목이 따가운 초여름 햇살을 가려주고, 강바람이 언덕을 지나가니 초여름 더위를 느낄 틈이 없다.
재미있는 사실은 드라마 속 이야기가 현실이 되었다 점이다. 드라마에서 주민들은 도로 개설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소덕동 나무를 지키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결국 도로 노선을 바꾸어 그 나무를 지키게 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드라마가 끝난 후 실제로 산림청에서 이 나무의 가치를 인정하여 보호수로 지정했다고 한다. 그리고 근처에 낙동강 자전거길과 산책길도 있어서 둘러보기 좋다.
우영우 나무처럼 시원한 그늘을 내어주는 큰 나무로는 느티나무와 플라타너스도 있다. 시골 동네마다 어귀에 서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 동네를 지켜주는 수호신처럼 마을을 푸근히 감싸준다. 들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그 아래에서 잠시 새참도 먹고, 낮잠을 한숨 청하기도 한다. 객지에 나갔다가 돌아올 때 멀리서 동네 어귀 느티나무가 보이면 이제 고향에 다 왔다는 안도의 숨을 쉬게 된다.
‘아름다운 숲 대상’에 뽑힌 영천 임고초등학교 운동장에는 커다란 플라타너스가 여러 그루 있다. 운동장 한가운데 우뚝 선 플라타너스가 만들어 주는 그늘도 꽤 넓다. 여러 반 아이들이 동시에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다. 쑥쑥 자라는 플라타너스처럼 여름날, 그 그늘에서 아이들도 뛰놀며 자랄 것이다. 꽃가루 때문에 플라타너스의 인기는 예전 같지 않지만, 아직도 곳곳에 남아 푸르름의 그늘 자락을 내어준다.
오늘 우영우 나무가 내어준 시원한 그늘에 앉아서 ‘그늘’의 의미를 한번 생각해 본다.
‘그늘’이라는 말은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늘은 ‘어두운 부분’을 뜻하기도 하지만, 또한 ‘의지할 만한 큰 존재가 베푸는 보호’라는 뜻도 있다. 누구의 삶에나 어두운 그늘은 있기 마련이다. 그래도 우리에게 시원한 그늘을 내어주는 나무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쉴 수 있는 그늘 한 자락 내어주는 큰 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무 학교 / 문정희
나무에 관한 한 나무에게 배우기로 했다
해마다 어김없이 늘어 가는 나이
너무 쉬운 더하기는 그만 두고
나무처럼 속에다 새기기로 했다
늘 푸른 나무 사이를 걷다가
문득 가지 하나가 어깨를 건드릴 때
가을이 슬쩍 노란 손을 얹어 놓을 때
사랑한다!는 그의 목소리가 심장에 꽂힐 때
오래된 사원 뒤뜰에서
웃어요! 하며 숲을 배경으로
순간을 새기고 있을 때
나무는 나이를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도 어른이며
아직 어려도 그대로 푸르른 희망
나이에 관한 한 나무에게 배우기로 했다
그냥 속에다 새기기로 했다
무엇보다 내년에 더욱 울창해지기로 했다
-문정희,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민음사, 2004)
◉플라타너스 꽃말: 용서, 화해, 휴식
◉팽나무 꽃말: 고귀함
◉느티나무 꽃말: 운명
◈전국 숲 명소
- 창원 북부리 팽나무(우영우나무)
- 춘천 플라타너스 거리
- 청주 플라타너스길(글제목 사진)
- 영천 임고초등학교 학교숲
- 담양 관방제림
- 대전 산내동
- 서울 선정릉나들길 / 창덕궁 후원(비원)
- 성주 성밖숲(천연기념물 왕버들 군락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