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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프리카에는 꽃 폭포가 있다 • 능소화

계절 따라 꽃멍 숲멍(여름) | 능소화 | 대구 능소화폭포

by 새벽강

대프리카에는 꽃 폭포가 있다

‘대프리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대구와 아프리카를 합친 말로, 대구의 더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만큼 대구 여름 날씨는 무덥다. 많은 이들이 더위를 피해 시원한 산과 계곡, 바다로 피서를 떠난다. 하지만 멀리 피서를 떠날 수 있는 여유가 언제나 허락되는 것은 아니다. 도시에서 바쁘고 고달픈 일상을 견뎌야 할 때도 많다. 그래서 지나가면서 한번 잠시 쳐다보기만 해도 시원한 느낌을 주는 도시의 분수, 인공폭포는 참 고맙다.


"우리 폭포 보러 갈까?"

"갑자기 무슨 폭포?"

"대봉동에 꽃 폭포가 있다고 하더라."

"진짜?"

대구 중구 도심에 폭포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것도 꽃 폭포란다. 덥지만 바깥으로 나갈 용기를 내볼 만하다. 7월 어느 주말, 도심으로 아내와 함께 피서를 떠난다. 더위를 피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목적지는 바로 ‘대봉동 능소화 폭포’이다.


40도의 날씨에 만나러 가다

대프리카에서 종종 만날 수 있는 계기판 40도

차 안 계기판에 찍힌 온도가 무려 40도다. 인근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능소화 폭포를 향해 걷는다. 이 도시에서 여름을 보낸 지도 오래되었지만, 오늘따라 유독 덥다. 큰 우산으로 땡볕을 가려 보지만 푹푹 찌는 열기까지 가릴 수는 없다. 온몸이 금세 땀으로 젖어갈 무렵, 눈앞에 능소화 폭포가 나타났다.


정말 폭포가 맞다! 건물 위에서부터 주황색 능소화들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린다. 왜 ‘능소화 폭포’라는 이름이 붙여졌는지 바로 이해가 된다. 아래로 드리워지며 피어나는 꽃의 특성을 잘 살려서 높은 건물 벽에 키워낸 것이다. 사진 찍는 행렬에 동참하여 기다리는 동안에도 계속 감탄이 나온다.

능소화_대구_능소화폭포.jpg 대봉동 능소화 폭포(대구 중구 대봉동). 김광석길과 가까운 곳에 있다.


나무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능소화(대구 대명동 계대)

능소화 꽃 이름의 의미

능소화 폭포를 비롯하여 대봉동 곳곳에 능소화가 피어 있다. 능소화 포토존도 몇 군데 더 있고, 주택 담장과 대문 위에도 피어 있다. 구경을 마치고 근처 시원한 카페로 들어간다. 더위를 식혀줄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찍은 사진을 구경하다가, 문득 능소화(凌霄花)라는 한자 이름이 궁금해졌다. 어릴적부터 흔하게 들어본 꽃 이름이 아니니까. 바로 검색해 보았다. 능(凌)은 ‘능가하다, 깔본다’는 뜻이고, 소(霄)는 ‘하늘’이라고 나온다. 하늘을 능가하고 깔보다니 상당히 강렬한 느낌의 꽃 이름이 아닌가!


어떤 글에서는, 푹푹 찌는 더위를 내리기도 하고 장마와 태풍까지 몰아치는 하늘에 맞서 여름 내내 오롯이 꽃을 피워내는 능소화를 칭송하고 있다. 자신의 발걸음을 막는 작은 일에도 쉽게 흔들리는 우리에게 능소화가 삶의 자세에 대해 가르쳐 준다고 한다. 또 다른 블로그에서는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꽃’이라고 그 의미를 소개해 두었다. 하늘을 향해 덩굴로 뻗어 올라가는 강인한 꽃이라고 한다. 각 설명이 모두 그럴듯하게 들린다.



능소화는 중국 황실에서 사랑받은 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양반집이나 사찰에서 많이 길렀다. 그래서 ‘양반 꽃’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대구의 대표적인 전통 마을 중 하나인 인흥마을(남평 문씨 본리세거지) 담장에도 여름철이면 능소화가 피어난다. 오래된 짙은 기와와 대비되는 주황색 선연한 꽃은 흙담을 딛고 하늘로 피어오른다. 그 모습이 그리움과 애절함을 가진 단아한 여인의 모습과 같다. 그 아름다움을 만나기 위해 여름마다 대봉동 능소화 폭포와, 인흥마을 흙 담장 골목길에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오늘 아내와 그 발걸음을 같이 하고, 마음에 새로운 꽃 하나 새기고 돌아간다.

능소화_대구 인흥마을 담장.jpg 짙은 기와와 색 대비를 이루는 대구 인흥마을 능소화. 인흥마을에서는 문익점 동상과 목화밭도 만날 수 있다.



능소화


그대 지금

오랜 기다림에 지쳐 있다면

주홍빛 선연한

저 능소화를 보라


한여름 뙤약볕에

온갖 풀잎들 맥없이 쓰러져도

기어이 흙담을 부여잡고

망울망울 피어올라

담장 너머로 기다림을 드리운다


화려한 슬픔의 만개

미처 전하지 못한 마음

후두둑 바닥에 떨어져도

늘찬 줄기로 이어진 꽃봉오리에

더 진한 그리움으로 피어올라라


애달픈 마음

언젠가는 가 닿으려나

여인의 주홍 옷고름이

푸른 기와 담장에 오늘도 나부낀다


능소화_한국화.jpg


◉ 능소화 꽃말: 여성, 명예, 이름을 날림


◈ 전국 능소화 명소

- 대구 인흥마을 / 대봉동 능소화폭포

- 서울 북촌한옥마을

- 서울 뚝섬 한강공원

- 부천 중앙공원

- 김해 수로왕릉

- 부산 월륜사

- 경주 교촌마을

- 남원 광한루원

- 아산 외암마을


*다음주부터 연재 요일이 변경됩니다. 매주 금요일에 연재중이던 <꽃멍 숲멍>은 일요일로, 매주 일요일에 연재중인 <일상의 쉼표>는 금요일로 변경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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