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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함에 속지 마세요, 분황사의 반전 매력•황화코스모스

계절 따라 꽃멍 숲멍(여름) | 황화코스모스 | 경주 분황사지

by 새벽강

그동안 경주에 몇 번 왔을까?

초등학교 수학여행으로 처음 경주에 왔다. 10원짜리 동전 모델인 불국사의 다보탑을 보면서 신기해하던 아이들은 청운교와 백운교를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남겼다. 그 후로 중학교 시절엔 해마다 화랑문화제 대회 참가, 고교 시절에는 같은 반 친구들과 가을 나들이, 대학교 MT... 그 이후로도 셀 수 없이 많이 왔다.


살고 있는 도시를 제외하고 가장 많이 가본 도시가 바로 신라 천년의 기억을 담고 있는 경주다. 문화재와 명소들이 워낙 많지만, 한 번 이상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다. 계절마다 첨성대를 중심으로 아름다운 꽃이 만발하는 경주는 볼거리, 먹거리 천지다. 하릴없이 고분을 바라보며 카페에 멍하니 앉아 있어도 좋다.


노랑코스모스가 손을 흔들길래

주말 드라이브로 경주 보문단지 가는 길에 분황사 옆을 지나가는데 그 주위가 꽃으로 가득하다.

돌탑이 있어 분위기를 더하는 경주 분황사 옆 황화코스모스 군락


"저기 꽃이 많이 폈네. 잠시 들러서 꽃 보고 갈까?"

"좋아!"

역시 잘 맞는 우리 부부의 여행 궁합. 예정에 없었지만, 분황사 입구 주차장에 차를 대고 꽃밭으로 간다. 분황사부터 황룡사지 사이가 온통 진한 노란색이다. 주인공은 황화코스모스!


남미가 원산지인 황화코스모스는 파종시기에 따라 7월부터 10월 사이에 꽃이 핀다. 그래서 어느 지역에서는 여름꽃이고, 다른 지역에는 가을꽃이기도 하다. 작년 가을, 대구 하중도 코스모스축제 때 분홍색 코스모스 건너편에 황화코스모스가 피어 있었다. 그래서 가을꽃으로 알고 있었는데, 경주 분황사 옆 황화코스모스는 여름이 제철인가 보다.


들여다보니 예쁘다

내리쬐는 땡볕만큼이나 황화코스모스 꽃잎도 쨍한 노란색이다. 꽃을 찾아온 노란 벌도 더위 속에서 자신의 본업에 여념이 없다. 나 역시 꽃구경과 사진 촬영에 집중한다. 꽃밭 사이에 있는 돌탑, 멀리 황룡사역사문화관 한옥 지붕이 들어가게, 경주 남산 능선 자락이 걸리게도 찍어 본다. 그리고 꽃밭 가운데 있는 당간지주가 나오게도 찍고, 꽃잎에 클로즈업해서 찍어도 본다. 노란 원색에서 밝은 에너지가 느껴진다.


'어, 예쁘잖아!'

나태주 시인의 <풀꽃>처럼,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제야 아름다움이 보였다.

오래 보면 사랑스러워질 것만 같았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황화코스모스를 이렇게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별로 없었다. 오늘처럼 예쁘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나에게 코스모스 하면 분홍색이 먼저 떠오른다. 가을바람에 하늘거리는 여린 꽃의 이미지에도 분홍색이 더 잘 어울려 보였다. 그래서 작년 코스모스 축제에서도 이 노랑코스모스 사진은 많이 찍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드디어 이 꽃만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발견한 듯하다.


황화코스모스 건너편에는 백일홍꽃과 해바라기도 한창이다. 더운 날씨에 어느 부부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열심히 사진을 찍는 중이다. 남편 사진작가님의 요청에 따라 모델 아내는 연신 자세를 취한다. 그들의 열정과 팀워크에 감탄하면서 꽃길을 걷는다. 그런데 걷다 보니 분황사 정문이 나온다.

해바라기와 백일홍가 여름 햇살을 받으며 활짝 피어 있다



이참에 한번 들어가 볼까?

경주에 정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왔지만 분황사에는 들어가 본 적 없다. 왜냐하면 분황사 석탑은 지나가는 차 안에서도 잘 보이니까. 역사책에서 분황사의 탑은 '모전 3층석탑'이라고 배웠는데, 담장 위로 1층부터 3층까지 다 보이니까 들어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자주 찾는 보문단지 가는 길에 늘 한 번씩 쳐다보게 되니까.


가까이에서는 처음 만난 분황사지 3층 석탑

분황사 정문을 들어왔다. 예상대로 분황사지 모전 3층 석탑이 정면에 있다. '모전'이라는 말처럼 벽돌을 쌓아 올리듯 만든 탑이다. 그런데 예상과는 다른 점이 더 많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1층 모습이었다. 담장에 가려 1층 아랫부분을 그동안 보지 못했었는데, 그 모습이 기대 이상이다.


탑의 네 귀퉁이에 씩씩한 사자상이 눈에 들어온다. 1층 각 면마다 감실(불상이나 불경 등을 모셔두는 방)로 들어가는 문이 있고 금강역사가 좌우로 지키고 서 있다. 금강역사의 모습이 얼마나 선명한지 야외에서 천 년 세월을 버텨온 것이라 믿기 어려울 정도다. 감실이 있다는 것도 놀라운데, 정면 감실 안에 온화한 표정의 부처님 입상이 있다.


분황사지 석탑은 같은 3층인 석가탑을 비롯한 신라 석탑의 일반적인 비율보다 납작한 형태인 줄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안내문을 읽어보니, 선덕여왕 때 세워진 이 탑은 원래는 7층이었을 것이라 한다. 7층이었을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본다. 훨씬 아름다운 탑의 모습이 그려진다.

석사자상(위_왼쪽), 감실 입구 문을 지키는 금강역사(위_오른쪽), 감실 안 온화한 표정의 불상(아래)


탑 주위를 한 바퀴 돌고 나니, 안쪽에 작은 법당 건물도 보인다. 탑만 남아 있는 폐사지가 아닌 것이다.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가 본다. 법당 안에도 부처님이 서 계신다. 그런데 작은 건물 크기에 비해 불상이 크거니와, 그 모습이 마치 동자승 모습 같아서 특별하다.(실내는 사진 촬영 금지여서 그 모습을 소개해 드릴 수 없어 아쉽다.)


법당에서 나오니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몇몇 사람이 앉아 있다. 빈 의자가 보이길래 우리도 거기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한다.

입구에서 가져온 리플릿을 펼쳤는데, 탑 사진 옆에 당간지주 사진이 있다. 지금 울타리 안에는 당간지주가 없다. 아까 황화코스모스 군락 사이에서 높이 서 있는 당간지주를 보았는데, 거기인 모양이다. 그렇다면 지금 담장은 분황사 원래 담장이 아닌 것이다. 한참 떨어진 당간지주와 거리를 생각해 보면 절의 규모가 상당히 커진다. 또 한 번 나의 예상과 선입견이 깨어지는 순간이다.

분황사 당간지주는 제법 멀리 떨어진 꽃밭 가운데에 있다


의자에 앉아서 스치는 바람에 주위를 돌아보고 한번 더 놀랐다. 내가 앉은 의자 뒤에는 큰 돌들이 줄지어 있다. 절터에서 나온 주춧돌, 기단석 등인 모양이다. 주춧돌 하나의 크기를 봐도 원래 이 절의 규모가 얼마나 컸을지 짐작하게 한다. 또, 연꽃 문양이 정교한 석등의 기단석을 보면 얼마나 화려했을런지.


익숙함에 그냥 지나치지 않기를

자주 지나다니면서 알고 있다고 믿어온 나의 편견이 산산조각이 났다. 경주에 있는 웬만한 문화재는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분황사지 석탑의 아름다움과 가치도 새롭게 알 수 있게 되었다. 마치 조금전 들판에서 황화코스모스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것처럼.

줄지어 서 있는 주춧돌과 기단석(좌), 직접 타종할 수 있는 분황사 대종(우)


언제나 곁에 있어서 당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한 대상의 새로운 발견.

오늘 나는 황화코스모스의 아름다움도 새롭게 발견했고, 분황사지의 진면목도 알게 되었다. 늘 가까이에 있어 익숙해진 존재나 대상의 참모습을 새롭게 살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분황사지에는 직접 종을 쳐볼 수 있다. 이런 저런 마음의 다짐을 담아 합장한 후에 직접 타종한다. 깊고 진한 여운이 울려퍼진다.


분황사지처럼 늘 지나치던 길 건너편의 막국수집도 오늘 가보니 맛집임을 새롭게 알게 된 오후였다.

분황사지 길 거너 식당의 막국수와 수육



황화코스모스 / 남정림


내가 코스모스라는 것을

미처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남다른 노랑 빛깔을

지우고만 싶었어요.


어느 날은 흰색 코스모스로

어떤 날은 빨강 코스모스로

살고 싶어 바람 따라 흔들렸지요.


당신 오시길 기다리던

어느 저녁에 알게 되었어요.

나도 노을처럼 당신을

황금빛 풍성함으로 곱게

물들일 수 있다는 것을

- 남정림, 사랑, 지구 너머의 계절(모악, 2021)


황화코스모스 꽃말: 애정, 소녀의 순결, 넘치는 야성미


전국 황화코스모스 명소

어디서든 잘 자라는 황화코스모스의 특성에 따라 전국 명소도 아주 많다. 가까운 곳을 찾으면 되겠다.

수도권

- 남양주 물의 정원 / 한강공원 삼패지구

- 서울 올림픽공원 들꽃마루

- 인천 인천공항 하늘정원

- 광주 곤지암도자공원


충청권

- 단양 도담정원

- 대전 갑천수변공원


전라권

- 고창 학원농장

- 구례 학원농장


경상권

- 경주 분황사

- 대구 하중도

- 부산 삼락생태공원

- 양산 황산공원

- 거창 가조온천 꽃단지

- 통영 사량도 덕동마을


제주권

-서귀포 가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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