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 따라 꽃멍 숲멍(여름) | 해바라기 | 함안 강주해바라기마을
어느 날 특별한 행선지를 정하지 않고 남쪽으로 드라이브를 나갔다.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 처음 가보는 길로 들어섰다. 낙동강을 건너 낯선 지방도로를 달린다. 작은 공단을 지나가자 파란 들판이 나타난다. 한참 시골길을 달리다 보니 ‘강주 해바라기 마을’이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해바라기가 많이 심어진 동네인 듯하다. 호기심에 한 번 들어가 본다.
마을은 여느 시골 동네와 다르지 않고 평범하다. 그런데 마을 뒤 언덕 밭에 해바라기가 가득 심어져 있다. 해바라기 꽃밭이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름답다. 2013년부터 작은 농촌마을을 살리기 위해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힘을 모았다고 한다. 그 뒤로 꽃을 심은 면적도 점점 넓어지고 매년 축제까지 열린단다. 마을을 살리기 위해서 한 포기 한 포기 심고 가꾸었을 주민들의 마음 또한 예쁜 꽃 같다.
미리 찾아보고 온 곳이 아닌 탓에, 아쉽게도 아직 만개할 시기가 멀었는지 활짝 핀 해바라기를 만나기 힘들다. 해바라기 키도 그리 크지 않다. 기대했던 풍경은 아니지만 동네의 수수한 모습이 오히려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아직 푸른 잎 가득한 해바라기 사이를 걷다가 마을로 내려온다. 골목길 벽에 동심을 자극하는 아기자기한 벽화를 보며 느긋하게 걷는다. 며칠이 지나면 저 언덕은 해를 닮은 둥글고 노란 해바라기들로 가득 차겠지.
해바라기는 어릴 적부터 보아온 익숙한 꽃이다. 옥수수만큼이나 키가 훌쩍 자라 담장 위로 고개를 내밀기도 하는데, 어린이 얼굴보다도 더 크고 둥근 꽃이 핀다. 고흐 그림처럼 정열적인 샛노란 꽃잎과 그 안에 둥글게 빼곡히 자리 잡은 노란 씨앗에도 자연스레 눈길이 간다. 지금은 기름으로 많이 만들어 팔지만, 예전 어린 시절에는 호박씨처럼 씨앗을 까먹던 추억이 담긴 꽃이다.
무엇보다 해바라기는 이름이 인상적이다. 해를 바라보는 꽃.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대륙에서 발견하여 유럽에 전해진 해바라기는 ‘태양의 꽃’이라 불리게 되었다. 아시아로 넘어오면서 중국어로는 '향일화(向日花)', 우리말로는 '해바라기'가 되었다. 그런데 실제로는 활짝 핀 해바라기꽃이 해를 따라 움직이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래도 꽃이 피기 전까지는 잎과 가지가 해를 향해 움직인다고 하니 완전히 틀린 말 또한 아니다. 해바라기의 이름은 하나의 대상과 목표를 향해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는 의지와 열정을 보여주는 듯하다.
하루하루 앞만 보며 살다가 가끔은 그동안 지나온 발자취를 돌아보게 되는 날이 있다.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이런 생각이 드는 날은 혼자 길을 떠난다. 조용한 절에 앉아 있기도 하고, 전망 좋은 카페에 앉아 글로 써 보기도 한다. 내 삶도 언젠가는 막이 내릴 것이다. 해바라기를 보며 나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바라는가? 해바라기처럼 어딘가를 향해 열정적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해바라기의 시 / 홍수희
사는 것이
지치고 힘겨울 때에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기를
한갓 안개 속의 풀잎처럼
숨고 싶어질 때에
어색한 변명도 위로도
내가 나를 설득할 수는 없고
불면의 밤만 깊어갈 때에
마음은 외딴섬으로
망망대해를 부유할 때에
빗물은 차가운 뺨을 적시고
바람은 야위고 고단한 어깨를
이리저리 팽개칠 때에
당신의 얼굴만 바라보았어요
당신만 바라보았어요
아마 사랑이란 그런 것
내가 나에게 머물지 않는 것
마음은 진창을 밟고 있어도
시선은 태양을 향하는 그것
이보세요
눈물겨운 오늘도
당신 생각으로 저물어 가요
-홍수희, 『생일을 맞은 그대에게』(해드림, 2019)
◉ 해바라기 꽃말: 동경, 숭배, 프라이드
◈ 전국 해바라기 명소
- 함안 강주해바라기마을
- 태백 구와우마을
- 경주 교동(월정교)
- 서귀포 항파두리항몽유적지
- 안성 팜랜드
- 고창 학원농장
*글 속에 다녀온 곳은 함안 강주해바라기마을인데, 꽃이 피기 전에 다녀와서 꽃 사진은 다른 지역입니다. 올해(2025) 강주해바라기마을의 해바라기는 개화 상태가 매우 좋았고, 제13회 해바라기 축제가 6월 하순부터 7월 초순까지 큰 규모 열렸다고 합니다. 올해 해바라기를 아직 못 보신 분은 태백 구와우마을을 추천드립니다. 7월 말에서 8월 중순까지 축제를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