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흔들리며 피는 우주 • 코스모스

계절 따라 꽃멍 숲멍(가을) | 코스모스 | 하동 북천역

by 새벽강

가을바람에 하늘거리는 가녀린 소녀

신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고민하다가 가장 먼저 창조한 꽃. 처음 만들다 보니 그 꽃은 너무 가냘프고 연약했다. 신은 만족하지 못하고 그 꽃을 바탕으로 모양과 색을 변형하여 여러 가지 꽃을 만들었다고 한다. 가을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리며 피어나는 그 꽃은 바로 코스모스이다. 맑고 순수한 영혼을 지닌 가녀린 소녀 같다.


어릴 적 시골 강변에는 가을마다 코스모스가 피었다. 하얀 카라의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 누나들이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던 그곳. 지금처럼 다양한 보기 힘들던 시절, 가을 강변에 가득 피어나던 코스모스는 단연 최고의 포토존이 되어 주었다.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있는 길 향기로운 가을 길을 걸어갑니다.


가수 김상희 님의 <코스모스 피는 길>에도, 나훈아 님의 정든 <고향역>에도 피어 있던 코스모스는 그 시절에 가을을 상징하는 꽃이었다. 아마 이 노래들을 아는 세대라면 오래된 사진첩에 코스모스를 배경으로 찍은 추억 한 장쯤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가을 바람에 한들거리는 코스모스(하동군 북천역)


간이역과 코스모스

올해 추석 연휴는 그야말로 황금연휴다. 추석 전후로 길고 여유로운 휴가가 주어졌다. 해외여행을 떠나는 여행객으로 이번 연휴 공항은 유난히 북적거렸다. 그 인파에 끼지 못한 우리는 코스모스 나들이를 가기로 했다. 목적지는 코스모스 축제가 열리고 있는 경남 하동군 북천역이다.

경전선의 작은 간이역인 북천역은 2000년대 들어 승객이 줄면서 폐쇄 위기에 놓였다. 그 당시 북천역 직원들이 역을 살리기 위한 방안으로 기찻길 주변에 코스모스 씨앗을 심기 시작했다. 가을철 기찻길 주변에 코스모스가 만개하자 여행객들이 몰려들었다. 다시 활기를 되찾은 역은 폐쇄를 면하고 '코스모스역'으로 불리게 되었다. 간이역과 코스모스는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해주는 정서에서 서로 잘 어울린다.


연휴답게 고속도로는 곳곳에서 정체되었다가 풀리기를 반복한다. 진주나들목에서 빠져나와 국도로 접어드니 가을길 드라이브의 즐거움이 있다.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북천역 근처 주차장에 도착했다. 지역 축제답게 쿵짝거리는 노랫소리가 흥겹다. 그래도 우리는 조용히 꽃구경을 하고 싶어서 먼 방향으로 걸어간다.

길게 뻗은 논밭에 코스모스가 가득하다. 바람에 한들거리는 꽃을 배경으로 사람들은 사진을 찍는다. 요즘 들어 다양한 색깔의 코스모스가 많아졌다. 하지만 이곳 코스모스는 토종이 많아, 흰색, 분홍색, 빨간색 코스모스가 대부분이다. 덕분에 옛 감성을 물씬 느낄 수 있다.

토종 코스모스 색(상) 코스모스 꽃밭 벤치(하)


코스모스 사이 논길을 걷다가 그늘이 있는 벤치에서 잠시 쉬어간다. 구름 사이로 햇살이 잠깐씩 비추고 간간이 가을바람이 불어온다. 복잡한 고속도로와는 달리 이곳의 햇살과 바람은 여유롭다. 잠시 가을의 정취를 만끽한다.

조롱박과 수세미가 달려 있는 터널을 통해 돌아 나온다. 터널은 조화와 리본으로 장식까지 해 두어 발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게 만든다. 주렁주렁 달려 있는 열매들이 수확의 계절 가을임을 알려준다.


꽃밭 입구에는 밤과 뻥튀기를 팔고 있다. 반들반들 윤이 나는 햇밤이 제법 굵다. 한 바가지를 샀더니 덤으로 한 바가지 가량을 더 담아주신다.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렸더니, 인사가 고맙다며 금방 나온 뻥튀기에 구운 땅콩까지 한 줌 올려주신다. 아저씨의 넉넉한 인심도 같이 봉지에 담아 차로 향한다.

가을이 느껴지는 덩굴식물 터널



질서와 조화의 우주, Kosmos

코스모스는 한국인들에게 익숙하지만, 20세기 이후에야 들어온 꽃이다. 코스모스의 원산지는 멕시코이며,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유럽으로 전파된 후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한국에는 선교사 등을 통해 도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뛰어난 적응력과 강인한 생명력 덕분에 지금은 전국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코스모스라는 이름은 스페인의 식물학자 안토니오 호세 카바닐레스가 붙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통 8장의 꽃잎이 마치 규칙적이고 조화로운 별처럼 둘레에 자리 잡고 있어, 혼돈(카오스)과 대비되는 '질서'와 '조화'의 의미를 가진 그리스어 '코스모스(Kosmos)'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리스어 코스모스는 '완전한 체계로서의 우주'를 의미하기도 한다. 우주라는 뜻을 지닌 단어로는 '스페이스(Space)', '유니버스(Universe)', '코스모스(Cosmos)'가 있다. 모두 '우주'를 의미하지만, 조금씩 의미의 차이가 있다. 스페이스는 물리적인 공간의 개념으로, 유니버스는 모든 시공간과 그 내용물 전체를 포함하는 광의의 우주 개념으로 쓰인다. 코스모스는 유니버스의 모든 것에 질서와 조화라는 철학적, 심미적 개념이 덧붙여진 우주를 뜻한다. 단순히 물리적 공간을 넘어서 조화롭고 질서 정연한 하나의 완전한 체계로서의 우주인 것이다.


신이 혼돈(Chaos) 상태의 세상을 질서(Cosmos) 있게 만들 때 가장 먼저 시도한 창조물이 코스모스이다. 가냘프지만 질서 정연하게 배열된 꽃잎 모습이 '우주' 같은 코스모스. 살짝 불어오는 바람에도 쉽게 흔들리지만 조화로운 우주처럼 피어나는 소녀 같은 꽃, 가을에는 그 가녀린 소녀를 만나러 간다.



코스모스 / 이해인


바람이

가을을 데리고 온

작은 언덕길엔

코스모스

코스모스

분홍빛 하얀빛

웃음의 물결

가느다란 몸매에

하늘을 달고

조용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소녀들

푸른 줄기마다

가을의 꿈 적시며

해맑게 웃는다

코스모스

코스모스

바람이 분다

-이해인, 『민들레 영토』(분도출판사, 1976)


소녀와 코스모스(대구 금호강 하중도)

코스모스 꽃말: 소녀의 순정


전국 코스모스 명소

- 하동 북천코스모스메밀꽃축제

- 구리 구리코스코스축제(구리 한강시민공원)

- 파주 파평코스모스축제

- 대구 하중도 정원박람회

- 금산 두지리경관꽃코스모스축제

- 경주 첨성대

- 합천 신소양체육공원


하중도의 가을 저녁




keyword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