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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린 Sep 10. 2021

10대들, 만족을 늦추는 게 가능할까?

기다리면 더 큰 보상이 있을까?


  ‘아빠는 했던 약속은 그래도 언젠가는 지켜. 적어도 지키려고 노력해.’ 

  두 딸이 내게 해주는 가장 좋은 칭찬입니다. 무엇보다도 여행에 대한 약속이었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었을까요? 같은 반 친구들이 방학 때 해외여행을 다녀온다는 이야기를 큰딸이 몹시 부러워하던 때가 있었죠. 그래서 우리 가족도 조만간 여행을 갈 거라고 약속을 했습니다. 하지만 빠듯한 형편으로는 당장 딸이 원하는 해외여행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딸과 약속을 했죠. 올해는 못가지만 1년 뒤에는 반드시 갈 거라고. 그리고 한두 푼씩 아끼기 시작했습니다. 


  여행을 위해 가족들과 또 다른 작은 약속들도 했습니다. 첫째 이른 귀가. 사람들과의 만남을 줄이니 술값도 절약되고 가족과의 시간도 자연스럽게 늘었죠. 둘째 외식비를 줄이려고 주말에 직접 요리하겠다는 약속도 했습니다. 오코노미야끼, 떡갈비, 오이 소박기, 갈치조림, 달걀 토마토 볶음, 치킨 샐러드 등. 블로그를 보며 따라 하다 덤으로 실력까지 늘었죠. 돈도 굳고, 애들과 사이도 각별해졌습니다.


  드디어 일 년 후 1월. 대망의 싱가포르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것도 싱가포르의 핫플레이스인 마리나 샌즈베이에서 이틀을 묵었죠. 연말 연초 프로모션이 진행되어 의외로 저렴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부러워했지만, 우리 가족은 두 딸이 학원도, 과외도 없이 지냈고, 사치와 담쌓고 사는 아내가 있었기에 통 크게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그 덕에 아빠는 약속을 정말 잘 지키는 사람이 되었지요. 


  10대들에게 부모는 여전히 모델링의 대상입니다. 그런 까닭에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죠. 특히 부모가 제공하기로 한 보상을 반드시 지키면 10대들은 당장에 즉각적인 만족이 없더라도 기다릴 힘이 생깁니다. 기다리면 더 큰 보상이 있다는 믿음이 생기는 거죠. 우리 가족은 싱가포르 여행이라는 더 큰 보상을 위해, 충동적인 소비를 줄였습니다. 딸들에게는 스스로 열심히 공부해야 학원이나 과외를 안 하고, 그래야 그 돈으로 여행경비를 마련할 수 있다고 설득했죠. 딸들은 생활이 흐트러질 때마다 여행에 대한 보상을 떠올리며 만족을 지연해 나갔습니다. 주말에는 소박한 음식을 즐기며 말이죠.      


 패밀리 레스토랑, 마리나 샌즈베이, 어디 갈 건데? 

  

  충동적인 10대. 하지만 만족 지연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우선, 지금 당장 주어지는 보상과 기다린 후에 주어지는 보상의 차이를 10대들에게 명확히 인식시키는 게 필요합니다. 즉각적인 보상과 기다린 후의 보상에 큰 차이가 있다면 더욱 자제력이 발휘되지요. 기다렸다가 마시멜로를 한 개 더 받는 게 유리한 것을 두 딸도 알고 있었던 거죠. 만약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져서 마음이 지쳐가면, 보상을 상기시키는 방법이 있습니다. 여행 책자를 사서 미리 공부하거나 동선을 짜보는 것, 또는 그곳 요리를 주말에 시도해보는 거죠.


  만족 지연을 위한 또 다른 팁은 점점 어려워지면서 동시에 재미있는 도전적인 과제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마시멜로 테스트의 월터 미셀 교수는 유아들의 경우에 피아노, 레고, 정글짐 놀이를 추천하며 자녀와 함께 도전적 과제를 수행하라고 권했죠. 우리 가족에게는 함께 만드는 요리가 있었습니다. 아빠가 주말에 요리를 하자, 딸들도 베이킹을 하기 시작했죠. 처음에는 간단한 쿠키, 그러다 요즘은 초코케이크처럼 상당히 난이도 있는 음식까지 도전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과제는 분명히 쉬운 과제보다 만족이 지연됩니다. 그러나 과제를 끝낸 후의 만족감은 어려울수록 더 큽니다. 이때 “Good Job!”이라는 칭찬은 필수지요. 어려운 과제를 해냈다는 자기 유능감이야말로 앞으로의 과제에 도전할 힘을 주니까요.


  마지막으로, 재능이나 능력이 타고난 것이 아니라 노력으로 향상된다는 신념을 10대에게 심어주어야 합니다. 결과에 대한 보상보다는 과정에 대한 보상이 있어야 하죠. 고백하건대 싱가포르 여행은 처음에는 큰딸에게 몇 점 이상을 받아야만 이뤄진다고 결과에 초점을 두고 약속을 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결과는 제시한 기준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딸이 노력했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우리 가족은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말해줬지요.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한 것을 아빠는 잘 알고 있다고. 그리고 노력하다 보니 예전보다 훨씬 나아진 거라고, 노력은 능력을 바꾸는 힘이라고 말이죠.      



잦은 실패에 너그러워도 될까?     


  실패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10대들에게 즉각적인 유혹에 빠지게 만듭니다. ‘어차피 노력해도 안 되니 즉각적인 만족을 추구하자.’ 이런 생각이 10대들의 머릿속에 자리를 잡는 것이죠. 흔히 자녀가 실패했을 때, 누굴 닮았느냐며 부부끼리 탓하는데 이것은 자녀들 앞에서 최악의 대화에 가깝습니다. 나는 우리 부모로부터 가장 안 좋은 것만 물려받았다는 상처만 생기고 유능감과 자존감은 한없이 낮아질 뿐이죠. 그러니 10대들의 실패에는 무조건 너그러워야 합니다. 실패하더라도 과정에서 쌓인 것들이 또 다른 도전을 위한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죠. 그것을 인식시켜야 10대들은 어려움을 잊고 만족을 지연하며 또다시 어려운 과제에 도전할 용기를 얻습니다.           



슬기로운 부모생활을 위한 팁!     

사소한 약속, 중요한 약속, 작은 약속, 큰 약속, 자녀와 했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다 지키세요. 약간 늦더라도 꼭 지키세요.
너무 늦게 지키는 건 곤란하죠.
크고 어려운 약속, 장기적으로 한 가지 만드세요.
목표를 공유하면 어려운 일도 참기 쉽습니다.
혼자 참는 게 아니라 가족 모두가 만족을 참고 있으니 말이죠.
함께 준비하고, 꿈꾸는 시간도 길어지는 겁니다.
“누굴 닮아서 그러니.” “나 때는~”, “애는 썼네.”, “그러게 조금 더 준비하랬잖아.”, “또, 엉망이네.”, 심지어 “누가 이딴 거 하랬어.”
 “또, 깨뜨렸네. 그냥 내버려 두라고 했잖아.”
 아무리 괴상한 걸 시도해도 이런 말은 금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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