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노트
스크롤 다운 스크롤 다운 어랏 갑자기 정신이 들고 마우스를 쥔 손이 멈춘다. 정신이 번쩍 든다. 누군가 자신의 땅을 깊숙히 파고 들어간 것이 보인다. 나는 비교하지 않아 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지내 왔다. 그런데 머리로는 제아무리 알고 있어도 이 순간만큼은 비교에서 자유롭지 않다. 작업을 멈춘 채 별 생각 없이 인스타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 각성이 들었다. 그 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지 않고 편안히 흘러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그것은 비교에서 시작되는 각성이다. 비교를 좋아하지 않지만 아무도 따라올 수 없는 나만의 영역을 만들고 싶은 건 본능이라서 누가 따라온다는 느낌을 갖거나 나보다 깊숙이 들어가는 타인이 있다는 걸 발견하면 마음에 조바심이 생긴다.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나만의 영역은 지도에 없고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을 때에만 가끔 나타나는 땅이다. 그 땅에는 나 홀로 라는 안도가 있다. 여기까진 아무도 찾지 못할 거야 하는 마음 말이다. 그렇게 쫓기듯 조용히 나만의 비가시성의 세계에 한 발을 딛고 잠시 숨을 몰아쉬어 본다. 나 말고는 그곳까지 가는 길을 모른다는 것이 어쩐지 위안을 주는 시간이다.
그것도 잠시. 나는 다시 조바심이 난다. 지도에 없는 땅을 찾다가 그만 혼자만 알고 있던 비밀번호를 일어버린 것 같다. 이상하다 지난번에 여기 이렇게 길이 있었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큰 일이다. 다시 시작점으로 가본다. 차근차근 하다 보면 길이 보일 거야. 그렇게 숨을 깊이 들이 쉬고 내 안에 걸린 자물쇠를 집중하는 마음으로 열어 본다. 아직 집중이 잘 안된다. 길이 사라진 듯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이를 어쩐다 다시 해보자 흔적이 있어야 하는데 늘 다니던 그 길에 작은 흔적들이 소리없이 사라졌다. 초침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나는 어디서 각성이 되었는지 기억해 내려 지나온 길을 되짚어 본다. 나만의 땅에 들어가는 길은 섬세한 마음의 결 들을 한올한올 찾아주는 것이 어느 시점에 도달했을 때에만 보이는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하는 수 없다. 문이 사라졌으면 다시 문을 만들어야 한다. 해이해졌던 시간이 다 풀어 놓은 수학문제의 풀이과정을 지워 버렸다. 이젠 문제를 차근히 다시 풀어보는 수밖에 없다. 서울로 가는 길이 하나가 아니듯 문제의 풀이도 수많은 갈래가 있을 것이다. 사라진 문에 대한 미련을 접고 다시 문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다음 단계의 초입에 도달할 수 있다.
오늘은 스크롤다운 놀이에 정신이 팔려 하루를 되돌려 버렸다. 그런 날도 있는 거지 한다. 다른 길을 찾게 되면 그만큼 넓어진 거니까 그렇게 위로 아닌 위로를 한다. 지도에 없는 땅 나에게만 보이는 땅은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무지개처럼 안타깝고 아련하지만 그 무지개를 건너면 지도에는 나오지 않는 다음 죄표를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