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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콘도

by 에티텔
05_macondo.jpg 이효연, 마콘도, 아사에 유채, 116.7x72.7cm, 2018

십 년 전 캐나다에서 지냈었다. 그해 가을 단풍으로 유명하다는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넓은 대지를 달리고 있었다. 평소 경험하기 어려운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평야에 울긋불긋 단풍이 드리운 곧게 뻗은 길이었다. 카메라에 담는 데는 한계가 있는 그런 풍광이었고 그날의 기억은 상처처럼 마음에 새겨져 자꾸만 떠올랐다. 마침내 그림으로 그리게 되었는데 참고했던 사진 속 길 옆 이정표에는 온타리오라고 적혀 있었다. 그렇게 적으면 낭만이 반으로 구겨질 것 같았다. 뭔가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상상했다. 그러다가 마콘도가 떠올랐다. 마콘도는 마르께스의 소설 <백 년의 고독>에 나오는 마을 이름이다.

신세계.jpg 신세계 백화점 외벽에 걸린 마콘도 이미지

그렇게 그림은 이름을 갖게 되었고 그 그림은 몇 해 지나 신세계 백화점 외벽에 장식되는 이벤트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 뒤로 마콘도라는 그림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겼고 나는 새로 그리는 그림에 종종 마콘도를 슬며시 그려 넣곤 했다. 그러다가 2025년 4월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아예 마콘도 내용을 중심으로 하는 전시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콘도가 있는 실내-edit.jpg 이효연, 마콘도가 있는 실내, 아사에 돌가루와 유채, 90.9x72.7cm, 2024

그리고 오래전에 읽은 백 년의 고독을 다시 읽었다.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면 삽화가 되기 쉬워 조심하려 애썼다. 소설의 느낌은 느껴지는데 그림은 스토리를 설명하지 않은 채 소설과 평행선을 달리길 바랐다. 그림은 평소 내가 관심 갖던 내용을 그리되 형식면에서 소설의 기법을 사용하려고 했다. 결국 나는 액자식 구성의 그림을 여러 개 그렸다. 하나의 그림이 다른 그림 안에 액자 속으로 들어가고 또는 책표지로 들어간다. 그렇게 그림들은 서로의 그림 안에 등장하며 서로를 비춘다.

두점.jpg 이효연, 빛이 시작되는 곳, 아사에 유채, 162x130.3cm, 2024 이효연, Macondoscape, 아사에 유채, 90.9x72.7cm, 2025

이 기법은 소설 속에 세대를 이어 오며 반복되어 나타나는 등장인물의 이름과 그들의 삶이 드러나는 방식과 닮았다. 한편 마르께스를 부를 때 빠지지 않는 수식어가 있다. 바로 마술적 리얼리즘이다. 그의 소설에서는 개연성 같은 건 고려되지 않고 이야기가 마구 쏟아져 나온다. 그래서 마술사처럼 글을 써 내려가니 그런 별명이 붙은 것 같다. 내 그림을 설명할 때에도 자주 사용하는 문구가 있다. 현실 같지만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라는 말이 그렇다. 현실적이지만 현실에 없는 비현실의 세계를 현실처럼 그린다. 나는 그런 나의 스타일이 마술적 리얼리즘이라고 불리는 소설의 면모와 어딘지 모르게 닮았다는 느낌을 가졌다. 소설을 읽고 작품을 보아도 좋고 혹은 그림들을 먼저 보고 소설을 읽어도 상관없을 것이다. 몇 해전 하루끼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라는 소설을 읽고 서로 다른 두 세계가 페어링 되는 구도에 흥미를 느껴 작업에 시도했던 적이 있다. 이번에는 재밌게 읽은 소설 <백 년의 고독>과 나의 그림을 페어링 시키는 시도를 했다.

두점 2-캡션.jpg

현관문을 열고 나서면 훅 하고 들어오는 봄 내음, 나뭇가지마다 물이 올라 한껏 들뜨는 계절이다. 온 천지가 꽃 향으로 물드는 4월이 오면 전시를 하곤 했다. 그렇게 꽃들이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4월에 올해도 전시를 하게 되었다. 나의 글을 함께 하는 모든 분들과 같이 나누고 싶다.


이효연 개인전 <마콘도> 클램프 갤러리 2025.4.11(금)~5.1(목)

강남구 양재천로 191, 02-577-9807, 월, 화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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