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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요, 여기에 리듬이 있어요

by 에티텔 Mar 27. 2025
이효연, Green mint, 아사에 유채, 가변크기, 2020이효연, Green mint, 아사에 유채, 가변크기, 2020



작업은 지난번 전시에서 시작된 실마리가 다음 전시로 연결되어 이어지곤 한다. 지난 기획전의 출발은 가로 세로 10cm의 작은 사각형 안에 무언가를 담아달라는 것이었다. 작은 사각형에 무얼 그릴 수 있을까 고민하였다. 지난 2년여간 추상작업을 취미로 해오고 있던 것이 문득 생각났다. 이 참에 기회가 왔으니 작은 사각형들을 취미활동과 맥을 이어 보기로 한다.


그리고 나는 즐겨보던 화집 위에 작은 사각 캔버스들을 무심히 올려놓았다. 그런데 그게 내 시선을 꼼작 못하게 얼려 버리는 것이 아닌가. 난 우선 그 장면을 사진으로 찍고 곰곰이 궁리에 들어갔다. 작업하고 있는 풍경화들 위에 작은 추상 도형을 얹고 싶어 졌다. 그렇게 해서 다음 작업의 진로를 탐색하게 되었다.


라임은 시나 가사 등에서 행의 끝이나 중간에 비슷한 음소를 반복하는 수사법을 말한다. 음의 작은 단위인 라임처럼 그림 속의 조형요소 가운데 어떤 부분을 한동안 틈나는 대로 그려보곤 했다. 그림에서 라임이라고 느껴지는 것과 색이나 형태의 요소들이 반복되는 것을 떠올렸다. 그것은 태생적으로는 내 안에 잠재된 구체성에 기대어 자라는 이미지이다. 구체적이지 않은데 구체성에서 출발한 이미지, 그것들을 어떻게 시각화할까 하는 것이 의문이었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방향을 뭉뚱그려 놓고 우선 바느질부터 시작해 버린 격이 되었다 시인지 노래인지 알 수는 없지만 구체적 이미지로 드러나는 그림에서 라임처럼 느껴지는 패턴들을 추출하려 하였다. 그러한 노력은 구상화에서 발췌된 추상 이미지들이었다. 구상화에서 추상적 맥락을 읽어내는 시도가 아닐까 의심하면서 바느질은 어떤 방향으로 몸집을 키우고 있었다. 생각은 곧잘 행동보다 앞선다. 적어도 이 바느질 놀이 에서만큼은 그렇다.


바느질이 진행될수록 패턴들은 다른 패턴의 원인이 되기도 결과가 되기도 한다. 한 예로 하나의 사각형 안에 작은 네 개의 사각형을 그려 넣으면서 나의 무의식은 끊임없이 변주를 행한다. 변주는 마치 돌연변이가 생겨나듯 서로를 닮았지만 같아지지 않는다. 나는 천편일률적인 것을 혐오한다. 그 생각이 이제는 무의식의 영역으로 스며든 것일까 내 생각은 늘 변하고 진화한다. 이때에도 정해진 규칙이 없는 만큼 순서도 없다. 뒤죽박죽 떠오르는 생각들을 작은 캔버스에 그리면서 나는 다시 진화하여 생각보다 행동이 빠른 생명체가 된다. 그리고 나는 앞서 말한 것을 부인하고 그리고 뒤집는다. 이유는 모른다. 더러 불친절해 보일지라도 이것이 내 진심이다.


이효연,  Green pink, 패널에 유채, 가변크기, 2021이효연,  Green pink, 패널에 유채, 가변크기, 2021


이효연, Yellow blue, 아사에 유채, 가변크기, 2020이효연, Yellow blue, 아사에 유채, 가변크기, 2020

마침내 구체적인 형상이 있는 그림에서 출발한 작은 원소 같은 패턴들이 자라나 추상적인 이미지가 된다. 그들끼리는 어떤 공통점이 있기도 하고 몇 단계를 건너뛰기도 한다. 이렇게 탄생한 작은 추상적 원소들은 스스로의 방법으로 네트워킹 하고 그 네트를 시각화시키기도 한다.


이효연, <잠시만요, 여기에 리듬이 있어요> 전시전경 2021이효연, <잠시만요, 여기에 리듬이 있어요> 전시전경 2021

멀리 가 닿기를 본능적으로 원하지만 매번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럴 때면 내가 선 자리를 둘러본다. 조형적 라임이라는 시각 원소들을 만들어 놓고 먼 꿈을 꾼다. 꿈은 멀고 닿을 길 없고, 작은 사각형들은 재잘댄다. 라임이 모여 어떤 소음을 만들어내는 듯하다. 소음을 한 올 한 올 결을 발라보면 거기에는 질서가 있다. 질서는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혼돈의 반대편에서 온다. 그렇다. 혼돈은 질서를 품고 질서는 다시 반복을 품는다. 한없이 쪼개서 작은 단위가 되기도 하고 무한히 부풀려서 혼돈을 만들기도 한다. 리듬은 질서와 혼돈 사이 어디쯤 있을 것이다. 마침내 나는 이미지의 라임을 그리고 그림 위에 스타카토를 찍어 본다.


<잠시만요, 여기에 리듬이 있어요>는 2021년 소노아트 갤러리에서 있었던 개인전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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