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라이킷 105 댓글 20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친구꽃

by 에티텔 Mar 20. 2025
이효연, 친구꽃 1, 아사에 아크릴과 유채, 130.3x162cm, 2016이효연, 친구꽃 1, 아사에 아크릴과 유채, 130.3x162cm, 2016


살아가는 동안 몇 사람쯤 되는 인연과 조우하며 한 번의 생을 살아가게 될까? 나는 이제 그 이름조차 기억이 희미한 어릴 적 친구부터 하루에도 몇 번씩 떠올리게 되는 친구까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교차로에서 서성이다 하루씩 잠이 든다. 가족으로 태어나지 않은 이상 우리는 언제고 남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반대로 피 한 방울 교류하지 않으면서 가족보다 많은 것을 공유하기도 한다. 세세한 연애사 같은 것은 가족과 공유하기보단 친구가 더 편하지 않은가 말이다.


이효연, 친구꽃 3, 아사에 유채, 130.3x193.9cm, 2017이효연, 친구꽃 3, 아사에 유채, 130.3x193.9cm, 2017

나는 예쁜 것을 좋아하고 그중에서도 꽃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없다. 친구를 좋아하고 꽃을 좋아하니까 친구꽃이다. 이쯤 되면 나도 나란 생명이 어떻게 다른 생명들과 많은 것을 교류하고, 공유하고, 누리게 되고 심지어 닮아가는지 궁금해진다. 그래서 그들을 그리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가장 열심히 연습해 온 방법으로 더듬기를 해보려고 한다. <친구꽃> 친구 하나하나가 나에게 꽃이고 나는 그 꽃을 그리고 그들은 내게 와서 의미가 된다. 김춘수는 이름을 불러 주었지만 나는 그들을 그리려고 한다. 이것은 언젠가 책이 되고 싶은 나의 연습장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친구라는 명사에 집착해 왔다. 친구는 단순하면서도 복잡하고 나를 행복하게 하다가도 나를 어두운 동굴 속으로 밀어 넣기도 한다. 그러나 매일 만나고도 스치는 사람이 있고 한 번을 보고도 오래오래 되새기는 사람도 있다. 때로 나는 책에서 라디오에서 친구들에 버금가는 위안을 얻고 영향을 받는다. 어떨 때는 인생의 여러 고비마다 나타나 나를 단련시키는 중책을 맡기도 한다.



이효연, 친구꽃 5 전시전경, 아사에 유채, 각 53x45.5cm, 2018이효연, 친구꽃 5 전시전경, 아사에 유채, 각 53x45.5cm, 2018


나는 다양한 경로로 내게 와준 이름들을 그리고 부르고 싶다. 그래서 이번 작품에는 일면식도 없는 얼굴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즐겨 듣는 라디오 진행자이고, 팟캐스트의 고정 손님이다. 혹은 자주 꺼내어 보는 책의 저자이기도 좋아하는 화가이기도 하다. 그들은 이미 내 삶에 깊숙이 침투해 스미었기 때문이다. 나는 언젠가 간절히 원하면 만나게 된다는 믿음을 믿어보려고 한다. 동시에 아니어도 그만이지만 말이다.


<친구꽃>은 2018년 4월 도로시 살롱에서 있었던 개인전 제목이다.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