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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질서의 무늬

by 에티텔
landscape of patterns.jpg 이효연, Landscape of patterns, oil on linen, 80.3x116.7cm, 2025

나는 언제나 조금 늦게 도착한다.
방 안에는 두 개의 의자가 놓여 있고,
서로 다른 온도의 얼굴들이 나란히 앉아 있다.
그들 사이에 꽃을 내려놓는다.


꽃은 연결을 약속하지만,
오히려 간극을 더 또렷하게 드러낸다.
가까이 있다는 것은
닿을 수 없음을 더 선명히 보여주는 일처럼.


벽에 걸린 그림 속,
나는 오래전부터 그곳에 있던 사슴을 본다.
그것이 기억인지, 예감인지,
내 안의 낯선 동거자인지 묻지 않는다.
묻는 순간, 사슴은 사라질 것만 같으므로.


그림은 나를 설명하지 않는다.
그 안에는 내가 없고,
그림이 끝나도 나는 여전히 모호하다.
그 모호함이 나를 끌어당긴다.


스며들다 어긋나고,
어긋나다 다시 스며드는—
그 불완전한 반복 속에서
나는 잠시 자유롭다.


방 안의 새,
벽에 걸린 또 다른 그림,
꽃병의 식물들.
그들은 내 곁에 있으면서도
결코 나를 보지 않는다.


그 무심함 속에서 나는 외부를 느낀다.
나 아닌 세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세계.
나는 그곳에 스며들었다가
다시 밀려나기도 한다.


도착하기 전부터 이곳에 고여 있던 공기,
알 수 없는 손님들의 풍경.
나는 다만, 조금 늦게 도착한 채
그 어디쯤에 서 있다.


닿을 수 없는 것들과
닿으려 하지 않는 것들 사이,
얇고 불확실한 시간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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