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탐색 page. 20
걱정하다:
안심이 되지 않아 속을 태우다.
표준국어대사전
걱정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본 후 나는 적잖이 놀랐다. 걱정은 어떤 대상을 향한 감정이라기보다 그저 개인의 속을 태우고, 끓이는 행위에 불과했다. 문득, 언젠가 들어봤던 티베트 속담이 떠올랐다. "걱정한다고 걱정이 없어진다면 걱정할 게 없겠네." 그럼에도 인간은 걱정을 한다. 수많은 위협 속에 놓였었고, 그 위협에서 살아남은 조상들의 DNA에 기록된 정보들 때문일까. 우리는 수시로 끊임없는 걱정 속에 자신을 던져 넣는다.
동의보감에서는 걱정과 관련된 장기가 '비장'이라고 말한다. 사실 비장은 우리에게는 좀 생소한 장기이다. 비장이 하는 일은 우리의 혈액을 걸러내고 면역력을 증강시키는 역할이다. 혈액을 저장하거나 조혈작용을 돕기도 하는데 이 주먹만 한 장기는 생각보다 아주 중요하다. 보통의 경우, 걱정이나 불안은 뇌의 영역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걱정은 몸의 영역이고 걱정이 오기 이전에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앞선다.
이 감정들은 감각적 몸에서부터 시작하여 뇌의 영역으로 옮겨가기 시작한다. 이러한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걱정이 많아지면 면역력이 떨어진다. 실례로, 스트레스를 과도하게 받으면 몸의 기능이 나빠지기도 한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은 악순환이다. 걱정을 좀 했을 뿐인데, 모든 순환이 막혀버린다니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걱정하기 대회가 있다면 우승을 하고도 남을 사람이다. 그래서 도대체 나의 머릿속에는 어떤 걱정이 있기에 이렇게 힘든 것일까. 하고 그 걱정을 따라가는 작업을 해보았다. 걱정이 많은 사람은 과연 어떤 요소를 가지고 있으며 어떤 걱정을 하는가에 집중해 보았다. 그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저절로 답이 드러났다. 우선, 기본적으로 생각이 많다. 어떤 생각에 덧붙인 생각을 따라가면 거기서 현재가 아닌 과거나 미래로 사고가 확장됨을 발견했다.
과거에서는 어떤 지점에서 누군가 한 말에 대해 조용히 읊조리며 혼자 화를 내기도 한다. 그리고는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닐까. 슬그머니 걱정을 하기 시작한다. 미래도 마찬가지다. 미래로 확장되는 사고를 따라가 보면,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의 걱정들을 늘어놓는다. 나의 경우에는 대체로 건강염려가 많은 편이다. 또 미래에 내가 헐벗고 굶주리지는 않을까 혹은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망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다.
나는 그렇게 과거와 미래의 걱정 더미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생존이었다. 조상들이 몸속에 새겨놓은 DNA 속 바로 그 생에 대한 욕구였던 것이다. 나는 걱정의 실체를 알고 나서 그동안의 걱정들에 대해 실소를 터뜨렸다. 내가 두려워하고 걱정했던 모든 것들은 내 존재가 사라지거나, 누군가가 나를 해치거나, 내가 죽을 것만 같은 바로 그 지점이었다.
데카르트의 명언이 떠올랐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사실 개인적으로 늘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말이었다. 내가 존재하니까 생각을 하는 거라며 따지고 싶었지만 이번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 속에서 나는 끊임없이 '존재'를 상기하고 있었다. 나의 존재, 그 존재의 꺼짐이 걱정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늘 촛대 위의 작은 불처럼 자신에 대해 걱정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 작은 촛불이 아니라 영영 사라지지 않는 불의 속성, 그 자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생에 대한 걱정은 사라진다. 그에 비롯된 다른 걱정들도 없앨 수 있는 것임을 알게 된다. 우리가 그동안 걱정하고, 그 걱정에 대해 걱정했던 이유는 그것이 주는 순간의 위안에 중독 되어버린 탓이었다.
걱정을 하는 것이 마치 대단한 대비책이라도 되는 것인 양 거기에서 안정을 갈구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안정이 없었다.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걱정의 굴레만 있을 뿐이었다. 안정은 거기에서 한 발짝 뒤로 나오는 행위 속에 있다. 그리고 내가 바람 앞의 작은 촛불이 아님을 아는 것이 전부이다. 걱정 속에 걱정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은 들어있지 않다. 우리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걱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존재하지도 않는 걱정의 끝을 볼 생각 따위는 하지 말고, 억지로라도 나의 시선을 돌릴 필요가 있다. 어차피 걱정에 끝이 없음을 우리는 안다. 그저 거기서 걸어 나와 몸을 움직여야 한다. 몸이 말랑말랑해지기 시작하면, 우리의 뇌도 말랑말랑해져 자신이 지금 하고 싶은 것을 찾게 된다. 그리고 과거와 미래가 아닌, '여기의 삶'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