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칸의 '여유로움'

감정탐색 page.19

by 바다별다락방
여유롭다:
여유가 있다.

여유:
1. 물질적ㆍ공간적ㆍ시간적으로 넉넉하여 남음이 있는 상태.
2. 느긋하고 차분하게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마음의 상태.
또는 대범하고 너그럽게 일을 처리하는 마음의 상태.

표준국어대사전



우리는 언젠가부터 생에 쫓겨 삶을 잃어버렸다. 보이지도 않는 미래를 상상하느라, 더 이상 잡을 수도 없는 과거를 만지려 하느라 '지금'을 저만치 밀어두었다. 최근 어떤 깨달음이 하나 있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했을 그런 깨달음이었다. 그것은 내일을 살기 위해 오늘 아침 눈을 뜨는 아이러니에 대한 얘기였다. 우리는 살면서 몇 번이나 여유를 느껴본 적이 있을까. 우리의 생이 필름카메라의 필름이라면 그 필름 속 어떤 장면에서 나는 살아있음을 느껴보았는가.




이런 궁금증을 가진다는 것은 살아온 삶의 절반 이상을 지금 내가 찍는 필름 한 칸이 아니라, 이미 찍혔거나 아직 찍히지 않은 칸을 기웃했음을 뜻한다. 또한 그로 인해 낭비해 온 시간의 존재를 알았음을 말해준다. 아깝다. 한없이 아깝다. 아무래도 그 마지막 필름을 찍는 날, 잘 살았다고 얘기할 수 없을 것 같다.


우리에게는 필름 속 한 칸만큼의 여유가 필요하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바로 이 장면, 우리는 이 장면을 살기 위해 여기에 있다. 과연 언제부터 열심히 달리지 않은 자신이 가치 없어 보이기 시작한 걸까. 또 언제부터 자신의 가치를 다른 것과 견주기 시작한 것일까. 그런 비교급에는 아주 작은 여유도 허용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더 이상 다른 것들과 우리의 삶을 견주지 말아야 한다.




'지금 여기'가 주는 감동을 조금 더 음미한다 해도 끔찍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가 배우지 못한 어떤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지금 여기에 존재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 이전에는 너무 많은 것들을 말하는 혼란스러운 세상이 문제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지금 여기'가 너무 불편했던 우리는 그것이 주는 가치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배우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음미해야 하는지조차 배우지 못했다. 만족과 여유와 행복이 '지금 여기'는 아니고 '저기 어딘가'에 있음을 학습한 우리는 그것을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그러니 이제는 자신에게 알려줘야 한다. 바로 여기에 내가 있음을, 두 발로 내가 여기에 땅을 딛고 서있음을. 여유는 지나가는 누군가가 어느 날 갑자기 던져주지 않는다. 그것만 기다리다가 정말로 나의 삶이 단숨에 닳아 없어지는 것을 지켜보고 싶지는 않다. 다만 매일 아주 작은 순간들을 쪼개어 새싹하나, 바람냄새 한 줌, 밥 한 술, 그저 내가 여기에 존재함을 느껴보고 싶다. 여유라는 것은 정말 놀랍게도, 수없이 쪼개진 필름 그 사이사이에 한 칸씩 들어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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