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함의 기적
"넌 이것밖에 안 돼냐!"
그들은 분노를 담아 나에게 외쳤다.
선배들의 분노의 화살을 맞으며 나는 생각했다.
'나는 왜 이렇게 못 뛸까? 숨이 넘어갈 것만 같다.'
'내 선택은 잘못됐어. 정말 달리는 게 죽기보다 싫어.'
난 달리기를 하면 언제나 낙오자였다.
생도 시절 내가 속한 중대는 선배들을 포함해서 60명 정도였다.
물론, 낙오자는 나 혼자가 아니었다. 천식을 앓는 친구, 비만인 친구, 그리고 나.
군대에서 보통만큼도 뛰지 못한다는 것은 늘 콤플렉스였다.
"넌 자격이 없어. 여기가 공부하러 온 곳인 줄 알아?"
"너 지금 머리 굴리는 거지?"
나는 좌절했다. 그리고 늘 부끄러웠다.
'나는 왜 여기 있는 것일까?'
누군가에게 비난을 받아 자신감이 떨어지거나, 삶의 압박감이 들 때 나는 뛰었다. 누구보다 못하는 달리기였지만, 걸음보다 빠르면 된다고 생각했다.
달리기의 좋은 점은 누군가의 간섭 없이 내 의지와 두 발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어느 날,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봤다. 톰 행크스가 달리다 보니 장애를 극복하고 빠르게 달리는 장면.
'저게 된다고?'
뛰면서 나는 꿈을 꾸었다. 언젠가 저런 스토리를 내가 만들어내기를...
그날 이후 나는 뛰기 시작했다. 언젠가 저런 스토리를, 나 스스로 만들어내기를 꿈꾸면서.
그리고 나는 멈추지 않았다. 꾸준히, 묵묵히 뛰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미국 유학생으로 선발되었다. 한 기수에 1~2명 보내는 그 좁은 문에 운이 좋게 발탁된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의 야경을 보고 '언젠가 미국에 가봐야지'라고 다짐하며 혼자 영어 공부를 해왔었는데, 내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미군들은 매일 아침 6시 PT(체력단련)를 신성한 일과의 시작으로 여긴다. 체력은 군인으로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2012년 당시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를 휩쓸었고, 같은 반 미군 친구들은 나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다. 대한민국 태극기를 달고 나라를 대표해서 간 내가 그들에게 뒤처진다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 나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매일 2마일(약 3.2km) 달리기를 했다.
이를 악물고 뛰고 있는데, 옆에 삐쩍 마른 흑인 여군이 나를 제치고 지나간다.
그녀의 이름은 린지. 성은 챔피언(Champion)이었다.
이름값을 하듯 챔피언은 바람을 가르며 앞서 나갔다.
'유전자는 어쩔 수 없는 건가?'
그래도 나는 멈추지 않고 뛰었다.
'나는 내 의지의 유전자를 믿기로 했다.'
미군 친구들은 주말에 만나 술을 마시기도 하지만, 마라톤 대회에 자주 나갔다. 그들은 나를 꼬드겨 계속 데리고 나갔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어느 날 문득, 나는 애리조나에서 3m 이상 되는 선인장을 바라보며 사막을 달리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늘 힘들면 달렸고, 외로워도 달렸다.
타지에서 늘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이면서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졸업을 앞둔 며칠 전,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우리 마라톤 풀코스 나가자!"
"뭐? 힘들잖아. 그게 가능해?"
"어. 26마일밖에 안 돼. 너라면 할 수 있을꺼야."
"그래?"
덜컥 신청한 마라톤 풀코스.
미국에서 그렇게 인생 첫 마라톤 풀코스를 뛰게 되었다.
풀코스를 뛰는 동안, 나는 후회했다.
'왜 덜컥 신청한 거야. 이건 미친 짓이야.'
다리는 천근만근, 숨은 턱까지 차올랐다.
그런데 멈출 수가 없었다.
한 발, 또 한 발.
그렇게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리고 완주 메달을 받는 순간 깨달았다.
'내 인생에 불가능은 없구나.'
생도 시절 낙오자였던 내가,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 것이다.
이것은 기적이나 다름 없는 일이었다.
"대대장님, 체력은 어떻게 20대이신가요?"
"글쎄. 꾸준히 뛰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은데?"
"말이 됩니까? 만 25세 기준 특급이라니요?"
그렇다.
나는 특수부대를 이끄는 지휘관이 되어 있었다.
지난날 낙오자였던 내가.
지휘관을 하면서 늘 생각했다.
‘나 자신부터 무너지면, 부하들에게 체력을 말할 자격이 있을까?’
리더십은 말로 되는 게 아니었다. 앞에서 뛰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가장 어렵고 위험하고 힘든 곳에 나는 여전히 맨 앞에 섰다.
‘리더란 말로 이끄는 사람이 아니라, 앞에서 함께 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타고난 재능은 없었다. 어쩌면 저주받은 DNA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당신도 지금 낙오자라고 생각하나요?
괜찮습니다. 멈추지 않으면, 언젠가 결승선을 통과합니다.
그리고 그때 당신은 알게 될 것입니다. 평생의 낙오자는 없다는 것을.
단지 아직 결승선에 도착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 뿐이라는 걸.
그래서 나는 오늘도 뛴다.
내 한계를 향해, 그리고 아직 결승선에 도착하지 못한 누군가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