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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Oct 26. 2024

완벽하지 않아도 특별해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는 타조가 등장하지 않는다』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는 타조가 등장하지 않는다』질 바슐레 글/그림, 나선희 옮김, 32쪽, 책빛, 2022

Il n'y a pas d'autruches dans les contes de fees (2008)






어릴 때 읽던 동화는 아름답고 완벽했다. 공주도, 왕자도, 그들의 해피엔딩까지도. 하지만 나이가 들며 의문이 생겼다. 실제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그런 인물들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더욱 그랬다. 동화 속 주인공들처럼 되고 싶었던 ‘나’는 완전함과는 거리가 멀었고 오히려 결점투성이의 인간이었다. 그 세상에 ‘나’는 어울리지 않았다. 이런 생각을 그대로 담아 놓은 그림책이 있다. 질 바슐레의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는 타조가 등장하지 않는다』이다.



다소 넋이 나간 듯한 타조 한 마리가 깨진 호박과 함께 책 표지 중앙에 앉아 있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목에는 12시를 향해가는 시계를 걸고 있고 주변에 줄을 맨 생쥐들도 있다. 결정적으로 타조 발 모양의 유리구두 한 짝! 여기까지 그림을 읽다 보면 ‘아, 신데렐라’를 떠올리게 된다. 이제야 정말 긴 이 책의 제목이 무슨 뜻인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약간의 기대감을 안고 책장을 넘기면, 익숙한 이야기 속 낯선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작가 질 바슐레는 누구나 어릴 때부터 한 번은 들어 봤을 만한 고전 동화를 보여주지만, 주인공은 낯선 타조로 바꾸어 놓았다. 우리가 기억하는 아름다운 공주나 용감한 왕자 대신 어울리지 않는 타조가 등장한다. 타조는 예쁜 모자를 써도 어색하고, 성냥불조차 제대로 못 켤 정도로 둔해 보인다. 먹성이 좋아 백설공주를 패러디한 장면에서는 일곱 난쟁이 중 한 명을 삼켜버리기도 한다. 또한, 어디든 머리를 넣으면 자신이 안 보일 거라 생각하는 모습 등은 독자들이 알던 샤를 페로, 안데르센, 그림형제의 동화와 비교되며 시각적인 언밸런스를 만들어낸다. 우스꽝스러운 패러디 속에서 독자는 부조화의 재미를 맛본다. 


이러한 요소는 유머 코드로 작용함과 동시에, 독자와 작품 간 깊고 다채로운 상호작용을 끌어낸다. 작가는 기존 이야기의 시공간을 해체하여 독자가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들게 하고, 원작에 온전히 몰입하지 않고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만든다. 질 바슐레의 다른 작품에서도 볼 수 있듯, 독창적으로 풀어낸 글과 그림의 조화는 읽는 이마다 각자의 스키마에 따라 다른 의미로 해석할 수 있도록 돕는다. 불완전한 타조의 모습에서 ‘나’ 자신의 결점을 발견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은 결말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타조는 새지만 날지도 못하고 예쁘게 지저귀지도 못한다. 성질도 고약하고 영리하지 못한 면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에서는 주인공임을, 평범하면서도 중요한 삶의 한 부분을 통해 보여준다. 공주나 왕자는 아니지만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도 행복함을 말하는 마지막 장면은 독자들이 전형적인 틀에서 벗어나 다양한 목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한 가지 더. 장면마다 자세히 봐야 보이는 - 매번 모습을 달리하는 버섯, 사라진 난쟁이, 구석에 있는 포스터, 스웨덴 왕궁 문장 등 - 작가의 작고 위트 넘치는 선물도 꼭 찾아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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