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틸드』
『마틸드』루이스 코헤이아 카르멜로 글, 마리아키아라 드 조르조 그림, 이정희 옮김, 32쪽, 목요일, 2023
『Matilde』(2019)
내가 사랑한 사람이 다른 곳을 보고 있다면?
모든 것에 시작이 있듯 사랑도 마음속에 불씨가 지펴지는 순간이 있다. 서로의 마음이 통하여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랑도 있으나 안타깝게도 그런 상호 간의 교류는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내 사랑이 향한 상대방이 내가 아닌 다른 이를 마음에 두고 있다면? 현실은 이렇게 잔혹한 경우가 더 많다. 사랑해선 안될 사람을 사랑하면 그 끝은 비극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마치 그리스 신화 속 나르시스와 에코처럼 말이다.
매력적인 고양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그림책 『마틸드』에서도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사랑을 볼 수 있다. 옷 가게 에스메랄다에서 일하는 마틸드. 무료한 일상에 어느 날 가게 밖에 서있는 나르시스를 발견한다. 그가 자신을 보고 웃고 있다고 착각한 마틸드는 마음속에서 혼자만의 사랑을 키워간다. 반면 나르시스는 쇼윈도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감탄하느라 유리 안쪽에 누가 있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다. 가게 안에서만 나르시스를 보았던 마틸드는 우연히 밖에서 나르시스의 시선과 미소가 향한 곳을 확인하고, 자신이 큰 오해를 했음을 알게 된다.
누구든 그를 보면 망연자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게 된다는 빼어난 용모의 나르시스(Narcissus나르키소스)는 이미 이름에 ‘망연자실’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그러나 그의 눈에 차는 상대는 없었기에 다가오는 모든 이들을 야멸차게 거절했다. 에코 또한 나르시스에게 연정을 품었지만 잔인하게 무시당했고, 거부당한 사랑의 고통에 몸부림치다 목소리만 남게 되었다. 수많은 구애자들의 애달픈 마음이 하늘에 닿아, 복수의 여신인 네메시스의 저주를 받은 나르시스. 깊은 숲 속 맑은 샘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버리고 만다. 그 상대가 자신임을 알고도 접을 수 없던 나르시스의 사랑 역시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현대에 맞게 재해석한 나르시스와 에코
『마틸드』에서는 연극학을 전공한 글작가 루이스 코헤이아 카르멜로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신화 속 에코와 나르시스가 현대적 상황에 맞게 새롭게 등장한다. 여기에 영화 스토리보드 작업 이력을 지닌 그림작가 마리아키아라 드 조르조가 이야기를 멋진 색감과 구조로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무대 위에 올려놓았다. 오묘한 초록색 표지 속 무심히 퍼즐을 맞추는 하얀 고양이가 첫눈에 독자의 시선을 잡는다. 고양이의 스카프와 같은 밝은 노란색 책등이 주인공을 더욱 도드라져 보이게 만든다. 무슨 내용인지 궁금증을 가지고 책을 펼치면 몽환적인 푸른색 반복 패턴이 면지에 펼쳐진다. 벽지 혹은 타일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문양은 마틸드가 일하는 가게 에스메랄다와 나르시스의 집이 있는 건물 벽면으로 이어진다. 표지의 에메랄드 빛깔 초록색과 면지의 파란색은 두 주인공을 나타내는 색깔로 쓰인다. 또한 두 인물의 그림 서사와 글 서사가 서로 다른 페이지에 교차하며 이어지는 초반 부분은 연극이나 드라마 장치처럼 보이기도 한다.
투명한 유리 벽을 사이에 두고 마틸드와 나르시스는 각자 다른 존재를 마음에 품는다. 마치 샘에 비치는 자신 밖에 볼 줄 몰랐던 나르시스와 그 모습을 지켜보는 에코처럼. 나르시스라는 이름을 보는 순간 ‘마틸드가 에코일까’ 생각하게 되지만 결말은 그와는 다른 방향으로 이어진다. 신화에서 가져온 이야기의 모티브도, 인물에 대한 묘사와 상황 설명을 색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도 모두 극적이다. 서로 다르게 키워온 감정을 확인하는 순간, 마틸드는 시원하게 나르시스의 따귀를 올려붙이며 그녀의 외사랑을 끝내 버린다.
에코의 운명을 거부한 “마틸드”가 찾은 새로운 결말
이들의 마지막을 보며, 책의 제목을 다시 확인한다. 나르시스나 에코가 아닌 “마틸드”. 신화와 그림책 모두 나르시스는 이름의 변화가 없지만, 마틸드는 달라졌다. 작가는 왜 주인공 이름을 마틸드라 바꾸고 제목까지 썼을까? 마틸드는 에코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나르시스를 짝사랑했던 수많은 그 누구 중 한 명이었을지 모를 마틸드는 사랑을 정해진 운명이라 여기지 않는다. 그녀가 나르시스를 포기하지 못하고 매달리던 에코와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가 선택한 사랑이 같이 나를 바라보지 않더라도 절망하여 주저앉지 않는다. 인간의 나르시스적인 모습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변하지 않는 본성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상대역은 더 이상 에코가 아닌 당찬 마틸드다. 그녀는 나르시스에게 사랑의 선택권을 주지 않고 스스로 결정했다. 비극을 희극처럼 딛고 일어설 용기를 지닌 마틸드를 보며, 독자도 피식 웃고 응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