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기적』
『작은 기적』피터 콜링턴 지음, 문학동네, 2005
『A Small Miracle』(1997)
한국에서 떠나 오기 전 마지막 계절이 겨울이었다. 그해 겨울은 평년보다 더 많은 눈이 내렸다. 그래서 그런지 일 년 내내 더운 이곳에서 가장 그리운 계절이 겨울, 소복하게 눈이 쌓이는 시기이다. 연말 특히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면 아이들과 같은 마음으로 하얀 눈을 그린다. 한 해 동안 힘들었던 몸과 마음을 포근하게 덮어주는 눈과 함께, 잠시라도 평온한 순간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내고 싶다. 그러나 올해는 눈에 대한 그리움보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으로 얼룩진 성탄을 보낼 걱정에 마음이 더 무겁다. 눈보다 평화를 바라는 것은 크리스마스의 기적처럼 어려운 일일까?
그림책 『작은 기적』 은 그림으로 모든 것을 전달하는 ‘글 없는 그림책’이다. 작가 피터 콜링턴은 크리스마스에 일어났으면 하는 기적 같은 이야기를 이 작품 속에 담아냈다. 작지만 위대한 사랑을 전하는 기적 말이다. 한 페이지에 여러 장면이 연결된 화면 구성을 따라 그림을 읽다 보면 마치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실제로 2002년 TV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고, 유튜브를 통해서 볼 수도 있다.
집시로 보이는 어느 늙은 여인이 마차를 개조한 허름한 집에서 부스스 일어난다. 집안은 얼핏 보아도 텅 비어 있다. 창문 밖으로 눈발과 서리가 보이지만 몸을 따뜻하게 할 작은 군불조차 없다. 노인과 평생 함께 해온 듯한 낡은 아코디언 하나 빼고는. 빵 한 조각도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한 노인은 마지막으로 그날그날 벌이를 넣어두는 저금통을 확인하지만 그마저 비어 있다. 어쩔 수 없이 빈속에 얼어붙은 몸으로 외출 준비를 하고 나선다. 그녀의 오랜 친구인 아코디언을 들고서.
다음 이어지는 페이지에는 사진인지 그림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멋진 겨울 풍경이 펼쳐진다. 실제 사진을 전공했던 작가는 배경과 인물의 조화로운 구성을 너무도 잘 아는 듯하다. 눈이 내려 하늘과 땅이 구분되지 않는 풍경과 구부정한 노인이 이루는 구도가 아름답다. 작품 속 원경은 한겨울 추위만큼 매서운 현실을 반영한다. 삭막한 겨울 풍경만으로 노인이 처한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과 처연한 현실 그리고 그녀가 그 순간 느낄 외로움과 서글픔을 독자에게 그대로 전달한다.
그에 반해 근경 묘사는 포스트 모더니즘적인 특징이 매우 흥미롭게 드러난다. 현실의 부조리함과 이를 벗어난 기적 같은 판타지 사이를 오가며 작품과 독자가 서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틈을 만들어낸다. 뒷배경 식당 문에 걸린 안내판은 ‘아침식사 됩니다’에서 ‘점심식사 됩니다’ 그리고 ‘음료만 제공됩니다’로 바뀌며 시간의 흐름을 보여준다. 테이블에 앉아 따뜻한 음식을 먹는 손님들과 그 거리를 지나는 행인들도 계속해서 바뀐다. 그들은 행복한 표정으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지만 늙은 여인에게만은 시공이 멈춘 듯, 아니 사라진 듯하다. 종일 연주를 했지만 한 푼도 벌지 못한 노인은 평생을 같이 해온 자신의 전부나 다름없는 아코디언을 팔고 만다. 그러나 이 마저도 날치기 도둑에게 빼앗긴다. 악재가 이렇게 연속으로 겹칠 수 있을까 싶지만, 그녀의 인생이 지금껏 이런 상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음을 그림들을 통해 미뤄 짐작해 볼 수 있다.
집으로 가는 길, 자신의 돈을 훔친 도둑이 이번에는 교회에서 헌금함을 훔쳐 달아나려는 것을 보고 온몸으로 막는 노인. 헌금을 지켜내고 교회 안으로 들어와 보니 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구유 성상들이 마구잡이로 흩어져 있다. 그녀는 마지막 힘을 끌어 모아 구유 속 예수, 마리아와 요셉, 동방박사들, 목동까지 정리한 후 헌금함을 옆에 두고 교회를 나온다. 그리고 한없이 펼쳐진, 끝이 보이지 않는 눈길 위에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이 가련한 노인을 어쩐다 말인가? 그런 그녀의 인생에 이제 판타지 같은 변화가 시작될 조짐이 보인다.
먼 이국 땅에서 밤하늘의 별만 보고 아기 예수를 찾아온 동방박사들처럼, 작은 인형들은 흩날리는 눈발을 헤치고 할머니를 찾아내는 기적을 보여준다. 인형들은 그녀를 집으로 옮긴 뒤 정성껏 돌본다.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는 연신 할머니 곁에서 몸을 주무른다. 목수인 요셉은 나무를 해 난로에 불을 지펴 집안을 따뜻하게 만들고, 부서진 곳곳을 수리해 준다. 목동은 도둑맞았던 할머니의 저금통을 되찾아오고, 동방박사들은 자신들이 가져온 선물을 팔아 할머니를 위한 음식을 사 온다. 그녀의 평생 친구 아코디언까지 되찾아서 말이다. 한 장면 한 장면이 다 작은 기적이다.
모두가 외면하던 늙은 집시 여인을 살린 것은 세상의 축복을 받지 못한 어린 엄마와 젊은 목수, 광야를 떠돌던 목동, 그리고 타지인들 셋이었다.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지 않았지만 이들은 자신이 가진 소중한 것을 노인을 돕기 위해 바쳤다. 특히 세 동방박사의 선물은 왕을 상징하는 황금, 거룩하고 신성함을 나타내는 유향 그리고 희생과 참사랑의 몰약이었다. 이들은 가장 낮은 자, 약한 자를 위해 세상에서 제일 귀하다는 예물을 가차 없이 전당포에 팔아버린다. 의지할 곳 없는 굶주린 이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독자는 이 부분에서 오묘하게 통쾌한 전복의 미학을 느낄 수 있다.
구유는 가장 낮은 곳의 가난과 고난을 상징한다. 그곳에서 시작한 구세주의 탄생은 돈, 권세, 영예보다 고통받는 약자에게 관심을 가지고,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야 함을 알리는 역설적 표현이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여전히 사회에서 가장 관심이 필요한 이들을 볼 줄 모른다. 방향을 잃은 우리의 모습은 늙은 여인을 외면하는 사람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바로 이 순간에도 하늘의 별은 반짝이며 어디로 가야 할지 안내해주고 있는데 말이다. 마지막 장면 속 노인의 집 위에 떠있는 유난히 밝은 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