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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rick Oct 09. 2022

이야기 넘치는 국립중앙박물관 답사

중국관&일본관&불교조각관

정유경 시인의 ‘이야기 나누기’라는 시가 있다. 놀기는 더하기, 숙제는 빼기, 이야기는 나누기. 이야기는 나 혼자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눠야 맛이다. 오늘 소개할 국립중앙박물관 전시를 올여름에 체험학습연구회 선생님들과 다녀왔다. 한 해에 너덧 번은 가는 국립중앙박물관(중박)이지만 이번에는 이야기 나누며 갔다 오니 또 새로웠다. 왜냐고? 서로 알고 있던 것들을 이야기하며 여러 눈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혹시 중박을 여러 번 다녀와서 이제 다 알만하다 싶으면, 여럿이서 함께 다시 가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왁자지껄 수다 삼매경은 아니라는 것쯤은 이 글을 읽는 분들이야 잘 아실 테니 넘어가겠다.


이야기 나누기 

                          정유경     

알지?     

놀기는 더하기

숙제는 빼기

용돈은 곱하기

이야기는 나누기     

이야기는 당연히 나누어야지

나누어지기 위해 태어난 이야기     

두 눈을 반짝이게 하는 안약 같은 이야기가슴까지 화하게 하는 치약 같은 이야기스스로 스며들어 아픈 데를 풀어주는 물약 같은 이야기고약 같은 이야기……     

들은 이야기겪은 이야기만든 이야기기쁜 이야기슬픈 이야기새 이야기네 가슴 내 가슴에 별처럼 떠서 반짝이는 이야기설레는 이야기……     

맞지?     

놀기는 더하기

숙제는 빼기

용돈은 곱하기

이야기는 나누기     

이야기는 나누기     

이야기는 나누기                                                       

                                                                                                          《까만 밤_창비_2013


중박 전시관을 간단히 소개하면 1층은 구석기부터 대한제국까지 시대별 전시관으로 꾸며놓았고 2층은 서화를 중심으로 기증자의 이름을 딴 전시관들이 있다. 그리고 3층은 우리나라의 도자기를 중심으로 조각과 공예 그리고 세계의 다양한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중박은 세계 어느 박물관과 견주어도 그 크기나 유물의 양에 있어 절대로 적지 않다. 그래서 하루에 박물관을 모두 둘러보겠다고 계획을 세우다 보면 반나절도 못 지나 다리가 부어 걸음을 뗄 수조차 없다. 우리나라 최고의 박물관인 만큼 예우(?) 차원에서라도 한 번에 보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여유 있게 답사해보시길 권한다. 예약이 어렵지 않으니 이번에는 1층, 다음에는 2층 이런 식으로 중요하게 볼 전시를 미리 생각해보는 것이다. 박물관 답사는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유물 하나하나 깊이 들여다볼수록 그 유물의 매력을 만날 수 있음을 기억하자. 오늘은 특별히 잘 다니지 않는 전시관이면서 새롭게 단장한 중국관, 일본관을 소개한다. 일행과 천천히 이야기 나누며 본다고 하면 적게 잡아도 반나절의 시간은 필요하다. 

공예와 그림으로 본 중국관      

중국관에는 <세 발 술잔>을 비롯한 청동기 유물부터 한나라 때의 기와와 도용(陶俑 진흙으로 빚어 만든 동물이나 사람), 불비상, 도자기, 남송 화원의 대가 마원의 산수화 등이 전시되어 있다. 중국관에서 수다 떨며 보기 좋은 유물을 고르자면 <박산향로>, <도용>, 심전의 ‘방아깨비 잡는 고양이’ 그림을 들 수 있다. 

첫 번째로 볼 유물은 <박산향로>다. 

박산은 중국 동쪽 바다 한가운데 있는 산으로 신선과 상서로운 동물이 살고 있다는 상상 속의 공간으로 봉래·방장·영주의 삼신산(三神山)을 말한다. 박산은 향로로 많이 제작되었는데, 한나라 때부터 만들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지고는 있으나 그 기원은 확실하지 않다. 향은 예부터 나쁜 냄새를 사라지게 하고 부정(不淨)한 것을 없애 준다고 여겼기 때문에 중국과 우리나라뿐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에서 피웠는데, 산 사이로 향의 연기가 피워 오르는 박산의 형태는 상서로운 느낌을 주기에 단연 최고라 할 수 있다. 

박산향로는 보통 제일 아래쪽의 받침대, 받침대와 향로를 이어주는 기둥, 그리고 제일 위의 박산을 형상화한 향로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백제금동대향로 또한 제일 위쪽은 박산을 형상화한 것이다) 중국관 것과 석암리 9호 무덤 출토 향로는 박산이 있는 바다를 상징하는 접시 받침대가 있다. 반면 백제금동대향로는 꿈틀거리는 용으로 받침대와 기둥으로 삼았다. 백제금동대향로는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박산향로 중에서는 최고로 화려하다 할 수 있다. 석암리 9호 무덤에서 출토된 청동박산향로는 중국관 박산향로와 기둥과 받침대 모양이 살짝 다르다. 석암리 출토 박산향로는 봉황으로 기둥을 삼았고 받침대와의 사이에는 바다를 좀 더 명확히 하기 위해 거북이를 올려놓았다. 세 개의 박산향로를 한 곳에서 볼 수 있다면 비교하며 보는 맛이 있겠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래도 우리에게는 만능 스마트폰이 있으니 검색해서 세 개의 향로를 비교하며 만나보자. 

두 번째로 볼 유물은 한나라부터 송나라까지 무덤에 부장품으로 매장되었던 <도용>과 진묘수(鎭墓獸)다. 부장품이란 무덤 안에 시체를 모실 때 함께 넣어 매장하는 물품으로 중국에서는 수장품(隨葬品), 일본에서는 부장품(副葬品),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유물·매장유물·부장품 등으로 불리고 있다. 부장품은 현세와 내세를 구분하게 되고 현세의 생활이 내세에서도 계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넣게 되었는데, 이미 구석기 시대의 고인돌에서도 구슬과 상아 등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그 시작이 선사시대부터 있었다고 할 수 있다.(구석기 시대에도 순장(殉葬)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중국 도용은 상나라 때에 처음 시작되어 한나라와 진나라 시기에 크게 유행하다 이후 당나라 대에 크게 다시 유행하였다. 중국관에는 당나라 시기의 도용이 많다. 당나라 하면 당삼채(唐三彩)의 도자기를 떠올릴 텐데, 붉은색과 녹색, 흰색의 유약을 발라 도용 또한 만들었는데 그 모양이 매우 정교하고 사실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영국박물관에 갔을 때 실제 사람의 크기와 똑같은 당삼채의 승려 도용을 본 적이 있는데 뛰어난 사실적 묘사와 그 정교함에 두 눈이 번쩍 뜨이기도 했다. 당나라 시기에 제작된 십이지신 도용과 소그드인, 말 또한 매우 사실적으로 만들었다. 소그드인은 도용은 한족과는 다른 높은 코와 큰 눈의 이목구비에 고깔모자를 쓰고 있다. 소그드인 중에서도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만 이런 고깔모자를 썼다고 하는데, 나중에는 시베리아 지역과 흉노족도 즐겨 썼다고 한다.

당나라 시기에 제작된 십이지신은 얼굴을 동물이고 몸은 사람인 수면인신(獸面人身)의 모양을 하고 있는데 긴 겉옷을 입고 옷 소매 속으로 손을 감추고 있다. 이러한 모양은 통일신라 시대 우리나라에도 전래 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선 돌을 깎아 만든 것도 있다. 십이지신 도용은 무덤의 동서남북 방향에 각 3개씩 놓아 나쁜 기운을 막는 역할을 했다. 

화려한 부장품을 넣어 매장하는 풍습은 당나라 때까지 유행하였다고 하는데, 송나라 시기에 제작된 악기 연주하고 춤추는 재밌는 도용도 전시되어 있다. 현세에서의 편안함이 내세까지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에 시녀와 병사, 무사 도용을 만드는 것은 뭐 그럴 수도 있을지 생각이 된다. 그런데 죽은 이의 즐거움을 위해 악기 연주하고 춤추는 도용까지 만든다? 죽은 이을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 권력이 얼마나 대단했으면 죽어서까지도 이런 대접을 받을까 부러움도 들고 부아도 치민다.

도용 중에 무덤 입구나 외곽을 수호하도록 특별히 제작된 도용을 진묘수라 한다. 서아시아 지역에서 인면수신(人面獸身)의 형태가 있었는데, 기원전 2세기경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으로 전해졌다고 한다. 진묘수는 남북조시대와 제작된 동물 모양과 당나라 시기에 제작된 인면수신 모양이 있다. 남북조시대는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던지라 진나라나 한나라 시기와 비교해 부장품을 많이 넣지 않았고 명맥만을 유지하는 정도였다. 북위를 중심으로 현세에 사용하던 물건을 부장하고 무덤을 지키는 진묘수를 동물 형상으로 만들어 무덤 앞에 놓았다. 그러나 죽은 자의 영혼이 안녕하기를 바라는 내세사상이 점점 발전하면서 진묘수는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역할까지 더하기도 하였다. 남북조시대의 괴수도용을 보면 날카로운 창 같은 것이 등에 3개가 꽂혀있고 꼬리도 날카로워 괴수 같기도 하지만 돼지코에 큼지막한 눈 그리고 우람한 앞다리 부분에 비해 단단하지만 왜소한 뒷다리 부분의 불균형한 모습이 귀엽게 생각된다. 게다가 볼이 옆으로 툭 튀어나온 채 웅크리고 앉아있는 것이 마치 집을 지키는 ‘프렌치불독’을 닮았다. 혹시 부여박물관을 가볼 기회가 생긴다면 무령왕릉에 부장된 진묘수와 비교해서 감상한다면 우리나라와 중국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물론 스마트폰 검색도 좋겠다.)

당나라 시기에는 남북조 시기와 달리 인면수신 도용을 제작했는데, 도용의 형상을 만든 후에 유약을 바른 후에 붉은색과 검은색, 녹색으로 색칠을 해서 좀 더 무섭게 보이도록 했다. 그런데 괴수 도용과 인면수신 도용 얼굴이 조금 다르다. 괴수 도용은 얼굴을 포함한 모든 곳을 유약을 바르고 색칠했지만 인면수신 도용은 얼굴에 유약을 바르지 않고 채색만 하여 현재는 색이 많이 사라졌다. 그래도 여전히 무시무시한 얼굴은 분명하다. 

중국관에서 세 번째로 볼 유물은 청나라 화가 심전의 <방아깨비를 잡는 고양이>다. 심전은 중국 저장성 오흥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남빈이다. 중국에서는 그리 유명하지 않았지만 1731년 12월 일본으로 건너가 2년 동안 있으면서 많은 인기를 얻었고, 일본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남빈파(南蘋派) 화가들 외에 문인화가, 마루야마시조파 등이 영향을 받았다) 심전은 명대 궁정 화조 화가인 여기(呂紀 약1477~약1503 활동)의 화풍을 계승하여 세밀한 필치와 선명한 색채로 길상적(吉祥的) 의미가 담긴 사실적인 그림을 잘 그렸다.         <방아깨비를 잡는 고양이> 이는 좌측에 쓰인 “癸丑八月上浣 南蘋沈銓寫於崎陽館舍(계축팔월상순 남빈심전사어기양관사”글씨로 보아 심전이 일본에서 귀국하기 직전인 1733년 8월 나가사키(崎陽) 관사에서 그린 것으로 생각된다. 그림에는 괴석과 장미가 있고 고양이 한 마리가 방아깨비를 물고 있다. 괴석은 짙고 옅은 먹선을 이용하여 절묘하게 형태를 그렸고, 그러데이션처럼 짙은 먹물이 번져 퍼지는 발묵법으로 안을 채웠다. 농담과 콕콕 찍은 점을 통해 매우 섬세하면서도 사실적인 괴석을 그려놓았다. 짙은 녹색의 잎과 대비되는 화사한 분홍색의 장미를 그려 그림의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고양이는 매우 꼼꼼하게 붓질을 하였고 고양이의 매끄러운 털의 질감을 잘 표현하였다. 고양이가 물고 있는 방아깨비 또한 다리, 날개, 배를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앞서 말하였듯이 이 그림은 단순히 방아깨비를 물고 있는 고양이를 그린 것이 아니다. 그림에 등장하는 괴석과 장미 그리고 고양이는 모두 장수를 의미하는 길상화다. 장미는 한자로 장춘화(長春花)라 하는데 장춘은 영원한 젊음을 의미한다. 한자에서 늙은이를 나타내는 한자는 기(耆), 질(耋), 구(耈), 모(耄)가 있는데 뜻하는 나이가 조금씩 다르다. (기는 60세 이상의 노인, 질은 70~80세 노인, 구는 90세 이상의 노인, 모는 80~90세 노인을 가리킨다) 고양이 ‘묘’와 늙은이 ‘모’ 중국어 발음으로 모두 ‘마오’이다. 그래서 장수의 의미를 담아 길상화에선 고양이를 그린다.                                                     

황묘농접도_간송미술관_한국데이터베이스산업진흥원, CC BY 라이선스로 제공

  김홍도의 그림 중에도 길상의 의미를 담아 고양이를 그린 그림이 있다. 바로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황묘농접도>다. 심전의 그림도 매우 아름답다 할 수 있지만 <황묘농접도> 앞에선 한 수 접어야지 싶다. 봄과 여름의 어느 즈음 화창한 날씨 패랭이꽃과 제비꽃이 피어있고 야트막한 바위가 있는 곳에서 긴 꼬리를 가진 검푸른 제비나비가 꽃을 보고 날아들었다. 그리고 그 나비를 신기한 듯 노란 털의 새끼고양이가 잔뜩 웅크린 채 쳐다보고 있다. 황묘농접 즉 ‘노란 고양이가 나비를 희롱한다.’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지만, 이 그림 또한 길상화다. 패랭이꽃의 꽃말은 청춘으로 석죽화(石竹花)라고도 불린다. 바위는 앞서 말했듯이 불변의 장수를 의미하고, 죽(竹)은 축하한다는 의미가 있다. 제비꽃은 여의화(如意花)는 모든 일이 뜻대로 풀리라는 의미가 담겨있는데 그건 등긁개 모양을 하고 있어 제 뜻대로 등을 긁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 속 소재들을 들여다보면 오래오래 사시면서 모든 일을 뜻대로 이루시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지금까지 중국관에서 꼭 보았으면 싶은 세 유물을 살펴보았다. 우리에게도 남아있는 유물인 만큼 어떤 작품이 더 좋은지 일행과 이야기하며 견주어 본다면 보는 재미가 배가 될 것이다.   

  

일본 문화와 예술의 후원자 무사     

두 번째로 볼 전시관은 일본관이다. 일본관은 2021년 1월 새롭게 개관하였는데 문화와 예술을 후원한 무사의 새로운 면을 살펴볼 수 있도록 전시를 구성했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중국과 우리나라와는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아름다움을 간직한 나라다. 한·중·일 3국의 문화적 코드를 생각하며 보면 좋다. 일본관에서 꼭 보았으면 하는 유물은 ‘노가면’,‘훈염과 평안노모’, ‘온나노리모노’다. 

첫 번째로 만나 볼 유물은 ‘노(能) 가면’이다. 일본에는 노가쿠라는 14세기 무대예술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데 가면극인 노(能)와 만담 극인 쿄겐(狂言)으로 나뉜다. 노 가면의 종류는 크게 오키나(翁), 조(尉), 온나(女), 기신(鬼神), 오토코(男) 가 있는데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그 이름이 조금씩 다르다. (아래 사진 속 좌측부터의 배열순서) 

아야카시는 무사의 넋이 쓰는 가면으로 <후나벤케이(船辨慶)> 연극에서 타이라노 토모모리라는 인물을 연기할 때 사용한다. (이외에도 친구를 잃어 괴로워하는 남자나 혼인을 하지 못하여 망령이 된 남자 연기를 할 때도 사용한다) 타이라노 토모모리는 헤이안 시대 무사로 헤이케 정권의 핵심 인물이었다. 단노우라 해전에서 미나모토모 요시쓰네가 이끄는 함대에 지게 되는데 이때 갑옷 두 개를 겹쳐 입고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했다고 한다. 아야카시는 까만 눈동자 주변이 흰색이 아닌 금색으로 칠해 신적인 존재를 상징하지만, 전체적인 생김새는 인간과 같다. 

아쿠조는 매부리코에 부리부리한 눈과 수염을 가진 노인 가면이다. 코에는 혹이 있고 부어올라 있어 코가 붓는 병을 뜻하는 ‘하나코부’라고도 불린다. 일본 사람의 모습이 아니어서인지 신이나 다른 나라 사람의 역할을 할 때 쓰인다.

고히메는 부푼 볼과 가는 다란 눈매를 하는 젊은 여성의 가면으로 보는 각도에 따라 표정이 달라진다. 위에서 웃는 얼굴이 되고 아래에서 보면 슬픈 얼굴로 보인다고 하니 전시실에서 보게 되면 앉아서도 볼 것을 권한다. 흐트러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정돈된 머릿결은 젊음을 상징하고, 살짝 올라간 붉은 입꼬리는 젊은 여성의 생식기를 나타낸다.

한냐는 딱 보아서도 알겠지만 귀신 가면이다. 고히메의 머릿결과 비슷하긴 하지만 이마 앞쪽으로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몇 가닥 있고 이마 좌우로 뿔이 있다. 눈에는 노란색 금속을 박아서 빛나도록 했다. 한냐 가면은 질투와 원한이 가득한 여성을 나타냈다고 하는데 처음 봤을 때는 뿔과 찢어진 입 때문에 처음엔 괴기스럽고 무섭다는 느낌을 받겠지만 조금 오래 보면 찢어진 입이 오히려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슬퍼 보인다. 

마지막으로 와카오토코는 젊은 남자 가면인데, 입을 벌리고 이마를 찡그리고 있는 것이 화가 나서 무언가를 말하려는 모양새다. 작은 눈이 가늘게 찢어져 있는데 정말 일본 사람의 모습을 잘 살려서 표현했다. 

리움 큐레이터 역임한 최광진은 <해학>이란 책에서 일본의 사천왕에 대해 ‘잔인하고 괴기스러우며 신경질적인 표정을 하고 있다.’라고 표현했는데 노 가면에서도 이러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두 번째로 볼 유물은 ‘훈염(薰染)과 평안노모(平安老母)’다. 훈염은 일본 근대 조각가인 고토 세이치의 작품으로‘좋은 감화를 받다’라는 의미가 담긴 작품이다. (훈염의 본래 의미는 ‘향기가 스며들다’인데 의미가 변화되었다) 연화좌에 무릎을 꿇은 체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살짝 미소를 머금은 체 하늘을 향해 얼굴을 살짝 들었다. 머리에는 화려한 모자를 썼고 상체는 마치 목걸이만 걸치고 있어 상체는 얼핏 나신(裸身)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어깨와 머리 뒤로 날개옷이 나부끼는 것으로 보아 옷을 입고는 있다. 양손으로는 향로를 받치고 있는데 손가락의 표현이 매우 사실적이다. 얼굴을 보면 여성이지 않을까 싶은데 상체는 여성이라고 단정 지어 보기 어렵다. 간혹 불교 조각에서 보살을 만들 때 여성적인 느낌으로 만드는데, 훈염도 그렇지 않았을까 싶다. 감화를 받아 미소 짓는 그 순간을 표현한 훈염의 얼굴을 보다 보면 깨달음의 순간 미소 짓는 얼굴이 너무나도 표현이 잘 된 우리의 국보 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떠오른다. 

평안노모는 히라쿠시 덴추의 작품으로 일본미술원이 주최하는 1936년 제23회 재흥원전(再興院展) 출품했던 작품으로 이왕가미술관(李王家美術舘)이 구매하여 1938년 전시했다. 이 작품은 도쿄 지요다구에 있는 서예점 주인이 어머니의 13주기를 기념하여 주문한 작품으로 제작되었다. 이왕가미술관에서 이 작품을 구매하겠다고 하자 조각가 똑같은 작품을 만들어 보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앞서 본 영국박물관에 소장된 삼채의 당나라 승려와 마찬가지로 매우 사실적이다. 얼굴보다 손이 매우 크다는 것이 조금 눈에 거슬릴 뿐 섬세한 옷 주름과 사실적인 표정이 압권이다. 

세 번째로 볼 유물은 여성이 타는 가마인 ‘온나노리모노’다.

                                                

  신분이 높은 무사 가문의 여성이 탔다고 하는데 가마 전체에 우선 검은 칠을 하고 금가루를 뿌려 그림을 그려 넣은 마키에 기법을 사용했다. 검은색과 금색의 대비에서 오는 화려함이 예사롭지 않은 인물이 탔을 거로 생각하게 한다. ‘신분이 높다’라고 했는데, 이 정도 가마를 타기 위해서는 쇼군(막부의 우두머리로 토요토미 히데요시나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같은 인물을 말한다.)이나 다이묘(10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지방의 영토를 다스리며 권력을 누렸던 영주를 말한다. 우리나라 삼국시대와 비교하자면 호족정도 된다) 가문 정도는 돼야 했다고 한다. 신분에 따라 구조와 디자인이 정해져 있었다고 한다. 일본의 가마는 우리와 달리 5m 되는 긴 대를 가마 위쪽 끝에 끼우고 앞뒤에서 사람이 들어 나른다. 그리고 가마를 타는 것도 우리처럼 가마 앞에서 문을 들어 올리는 것이 아니라 옆에서 미닫이문을 여닫으며 타도록 만들었다. 

가마 안쪽 바닥에는 편안히 앉아서 갈 수 있도록 폭신폭신한 꽃 자수를 놓은 화려한 방석이 놓여 있고 가마의 벽면은 꽃과 새, 소나무, 매화나무나 <겐지모노가타리> 그림으로 꾸며놓기도 했다. 온나노리모노는 가문의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만큼 될 수 있는 대로 화려하게 꾸미려고 했다. ‘검이불루(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라는 우리의 미학 측면에서 보자면 그 화려함에 입이 떡 하니 벌어지긴 하지만 사치스러움으로 보여 우리네 정서와는 조금 결이 다르다.  

    

마치며      

추석을 지나고 나니 날이 선선하여 가을이 온 듯하다. 가을은 답사하기 좋은 계절 아닌가. 서울 나들이 계획을 세워보았다면 중박 답사도 일정에 넣어보면 어떨까? 코로나로 선뜻 해외여행이 어려운 시절이라 그 아쉬움을 중박의 중국관과 일본관을 둘러보는 것으로 달랠 수 있다. 두 전시관에서 이외에도 보았으면 좋을 법한 유물들이 더 있지만 지면 관계상 다 담지 못했다. 한·중·일의 유물들이 비슷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미학을 담고 있어 일행과 이야기 나누며 견주어 보기에 좋다. 혼자라면 스마트폰 친구와 함께 검색하며 살펴보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일본관과 중국관을 나오면 인도와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메소포타미아 전시실이 이어진다. 일본관 앞에는 세계 도자관과 몇 개의 새로운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불교 조각관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세계의 문화를 둘러보는 즐거움이 있는 셈이다.

시간이 된다면, 국립중앙박물관의 자랑이라 할 수 있는 2층의 ‘사유의 방’도 들러보라 권하고 싶다. 우리나라 최고의 유물이라 할 수 있는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국보 78호와 국보 83호를 함께 모셔 놓은 방의 이름이다. (원래는 불교조각실 독방에 교차 전시되었다가 2층 ‘사유의 방’에 함께 전시되어 있다.) 예전에 국보 78호와 83호를 따로 보았다면 함께 볼 수 있으니, 전에 한번 보았다고 넘어가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전시해 놓았던 3층 불교조각실 그 독방(?)에는 17세기에 제작된 ‘목조보살입상’이 있다. 국보로 지정되진 않았지만 화려한 의복과 장신구 사실적인 묘사 등이 매우 뛰어나 중요 유물로서 독방을 물려받을 만한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중국관, 일본관과 같은 3층에 있는 불교조각실에 있으니 시간이 된다면 한 번 들러보길 권한다. 그리고 정말 아쉬우니까 하나 더. 불교조각실에 가면 미니어처 같은 작은 불상들을 모아서 전시하고 있다. 남양주에 있는 수종사 팔각오층석탑에서 출토되었는데, 선조의 비였던 인목왕후(인목대비로 불리기도 하나 실제 대비로서의 존호는 소성대비라고 한다.)가 소원을 빌며 석탑 안에 넣었다고 한다. 하나하나 따로 보는 것도 좋지만 비슷한 크기의 불상을 모아놓다 보니 서로 다른 모양 속에서 율동감도 느껴지고 큰 불상에서 볼 수 없는 귀여움도 있다. 이렇게 소개하고 보니 이야깃거리가 또 넘친다. 중박은 언제, 누구와 가도 이야기가 넘치는 곳이 될 수밖에 없는 듯하다. 동지들이 다녀와서 나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 참고

1. 이나경, 신선이 사는 세계_낙랑 무덤에서 출토된 청동박산향로, 국립중앙박물관

2. 오세은, 국립박물관 소장 중국 도용의 이해, 고고학지 제19집, 2013

3. 최광진, 미술로 보는 한국의 미의식 2-해학, 미술문화, 2019

4. 사이트 : 일본 emuseum.nich.go, 국립중앙박물관 e-뮤지엄 

5. 정유경, 까만 밤, 창비,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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