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패신화 사회

오타쿠? 캥거루? 집이 최고지

by 이정훈

누구나 부동산에 투자하고

누구나 부동산으로 돈을 벌고

심지어 국가가 계획적으로 부동산을 육성한다.

그런데

누군가는 부동산 때문에 길거리에 앉고

누군가는 부동산 때문에 신용 불량자가 되고

누군가는 부동산 때문에 자살을 한다.

그렇게

서울과 지방

강남과 강북이 갈렸고

계층과 서열이 정리되었고

친구들이 나뉘었다.

불패 신화의 전설이다.


육체는 나약하고

정신은 더 빈약하다.

육체노동은 무가치하고 천한 것이다.

머리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공부가 답이다.

공부는 암기다.

암기력 하나면 족하다.

좋은 학벌도 인맥도 쌓을 수 있다.

인생의 첫 번째 도약점이다.


남들보다 앞서야 하고 뛰어나야 한다.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위해서다.

행복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돈은 존경과 권력 그리고 성공의 필수 조건이다.

그렇다고 돈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가장 쉬운 방법으로 돈을 벌 수 있어야 한다.

건물주가 답이다.

은행은 담보로 돈을 빌려주고

빚으로 지은 건물은 돈을 벌어준다.

그것으로 또 다른 땅을 사서 또 다른 건물을 올리고

또다시 부를 축척하면 그만이다.

인생의 두 번째 도약점이다.


도시는 화려하고 반짝이는 것들의 고향이다.

값비싼 부동산 위에 세워진 도시는

살찐 돼지들의 만찬 장소로도 안성맞춤이다.

춤추고 노래하고 즐기며 쾌락을 좇는 사람들의 본향이다.

자본의 그늘에서 피어난 도시의 안락함은 마약과 같다.

안락함에 길들여진 인간은 쉬운 길을 찾는다.

땅 짚고 헤엄치는 것이 일상화된 인간들의 습성이다.

이상한 사회적 자본으로 길러진 습성이

도시를 갉아먹는 밈(Meme)으로 자라났다.

그리고 도시의 진(Gene)이 되었다.(1)

게으름은 인생의 마지막 도약점이다.

게을러야 한다.

부지런하면 굶어 죽는다.

공멸한다.

게을러야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이다.


그렇게 일등 사회를 추구하고

그렇게 전문가를 꿈꾸던 사람들

오타쿠로 다시 태어났다.(2)

자유를 말하지만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 사회
노동을 강조하지만 삶을 유지할 수 없는 사회
선택을 존중하지만 책임지지 않는 사회

부동산 가격과 계급이 최고가 된 저급한 사회

그렇게 캥거루가 태어났다.(3)

편리하고

간편하고

즐거운

개인주의자들의 세상이다.

정확한 계산

정확한 나눔

그렇게

낯선 종족들이 태어났다.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다.(4)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사람을 평가하고 분류한다.

그러나 편협한 사회가 요구하는 경쟁의 기준은

오직 하나 생산성과 소비력이다.

누가 얼마나 더 많은 부를 축척 하였는가 이다.

그리고 그 기준치에 미달하면 비 정상적이라 낙인찍는다.

몸뚱이에

집구석에

자동차에

얼마나 처 바를 수 있는가

돈이 신분인 사회가 되었다.


부동산 공화국서 집은 최고다.

그러나

그 집 한 채 없으면 조롱거리다.


사람의 취향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오타쿠의 취향은 조롱거리다.


유교 사회에서 부모 공양은 기본이다.

그러나

켕거루의 삶은 조롱을 넘어 경멸이다.


공동체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성공 가능성이 낮은 특정 취향들

그리고 무능한 구성원들에 대한 사회적 조롱인 것이다.


그러나 누가 알겠는가.

사회가 정한 정상의 틀 밖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
더 많은 새롭고 창조적인 문화 창달의 가능성과 기회를 품고 있을지.


어쩌면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과

불안정한 노동시장

과도한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과 비용들

이렇게 많고 다양한

구조적 문제와

사회적 병폐를

경제적·정신적 독립을 이루지 못한다는 이유를 들어

켕거루들에게 전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배주머니 속에서 보호받고 살아야 하는 새끼 캥거루들

부모라는 안전망 없이는 살아남기 힘든 사회적 조건 속에

인큐베이팅(Incubating)되어야 하는 존재들(5)
이들에 대한 비난은

사회가 만든 구조적 불평등을 외면하고

정서적 안정을 위해, 사회가 전가한 굴레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오타쿠라 조롱하고 캥거루라 놀리며
사회적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비열한 짓인지도 모른다.

불패 신화로 새겨진 부동산 공화국은
집과 돈과 계급이 아니라
사회의 밑바닥에 깔린 사람들의 불안과 고독을 주춧돌로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불공정한 기회와

강요당한 경쟁 그리고 무책임한 책임의 전가는

구성원들을 비정상적인 상태로 몰아넣었고

우리 사회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들추었으며

사회적 부산물로 우리의 거울이 되고 있다.

그들이 버티고 있는 질문들은

우리가 외면한 문제들이고

불완전한 사회망에 대한 질책이다.

그들의 존재는 우리 사회의 결핍이며
그들의 생존 전략은 사회적 안전망의 확인이었다.

우리 모두가 직시해야 할 현실인 것이다.

부동산 공화국의 불패 신화와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 속에 탄생한

오타쿠와 캥거루는

결코 비정상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의 일부이며
우리 사회가 직시해야 할 문제이며

우리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 사회가

좀 더 진보적이고 인간적인 길을 가려는 증거라 할 수 없다.

단지
우리 모두의 현실을 직시하고
누군가는 이 그림자 속에서

그리고

또 누군가는
그 그림자 위에서도

새로운 신화를 쓰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1. 1976년 동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이기적 유전자>에서 제시한 학술 용어 '(meme)'은 마치 인간의 유전자(gene)와 같이 자기복제적 특징을 갖고, 번식해 대를 이어 전해져 오는 종교나 사상, 이념 같은 정신적 사유를 의미한다. 패러디 되고 변조되며 퍼지는 작품 속 문화 요소라는 의미로 확대 된 것은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으로 인터넷이 보급된 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새로운 방식의 문화 전파 현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고 있다.

2. 오타쿠는 특정 대상에 집착적 관심을 갖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아키하바라 및 애니메이션 팬을 의미하며 비하적인 뉘앙스가 있다. 이는 1989년, 미야자키 쓰토무 사건에 대한 언론의 보도와 사회적 선입견 등으로 인해 부정적인 의미를 띈다. 비슷한 의미로 X 스퍼거, 너드, 긱 등이 있으며, 특정 대상에 크게 빠져 있는 경우를 일컫는 말로 의미가 상통한다.

3. 경제적, 정신적으로 자립심이 부족하여 부모에게 의존하려는 젊은 세대를 가리키는 말을 가르켰으나, 의미가 확장되어 경제활동과 무관하게 독립을 하지 않았으면 '캥거루족'으로 불린다. 사회적으로 성인이 되고 독립할 정도의 나이가 됐는데도 모든 경제력을 부모 또는 가족에게 의존하는 사람의 모습을 어미 캥거루의 배주머니 안에서 먹이를 받아 먹고 천적에게서 보호받는 새끼 캥거루의 모습에 빗댄 비하적 표현이다.

4. 태어날 때부터 컴퓨터, 인터넷, 스마트폰 등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세대를 의미한다. 디지털 원주민으로 번역되기도 하며 디지털 기기와 서비스를 모국어처럼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정보를 얻고 소통하는 방식이 기성세대와 다르다는 특징이 있다.

5. 주로 아이디어나 신생 기업이 안정적인 성장을 할 수 있도록 필요한 지원과 서비스를 제공하여 육성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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