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질한 인간들
민식은 한마디로 찌질한 인간이다.
공사판을 전전하며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것 자체가 찌질하다.
순둥 순둥 했던 태석은 언제나 웃는 얼굴이었다.
친구들 중에서도 유난히 소심하고 착한 아이였다.
때문인지 힘으로 민식을 당하지 못하던 친구들도
민식만은 늘 만만하게 여겼다.
찌질하다는 의미는 지지리도 못난 놈이란 뜻이다.
사회적으로 성공도 하지 못하고 성취한 것도 없는 놈이
자존심만 쎄서 못난 행동을 하는 인간이란 의미다.
소심한 태도와 시원스럽지 못한 일머리도 찌질한 놈들의 조건이다.
남에게 민폐만 끼치고 생활도 보잘것없는 놈도 찌질한 놈이다.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도 되는 것도 없는 인간이란 의미다.
한 마디로 찐따다.
그러나 범죄자나 나쁜 놈을 찌질하다고 하지 않는다.
그런 놈들은 만만하지 않다.
그런 놈들 앞에서 함부로 입을 놀리면 무순일이 생길지 알 수 없다
무서우니 피해야 하는 놈들일 뿐 찌질하지는 않다.
찌질하다기보다
무시당하는 인생은 공통점이 있다.
출발부터 찌질하다는 것이다.
그러다 점차 찌질한 인생으로 그렇게 흘러가기 마련이다.
민식에겐 그 흔한 부모도 형제도 없었다.
유일한 혈육이던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그 가난했던 홍제동 달동네에서 조차 살 수 없었다.
민식의 인생에 배움과 재산, 인맥이란 단어는 없었다.
성인이 되자 민식의 찌질함이 본격적으로 드러났다.
공업 고등학교를 간신히 졸업한 민식에게
대학은 당연히 갈 수 없는 곳이었다.
부모 잘 만난 친구들이 장사 밑천을 받아
가게를 열고 차를 사고 집을 사서 마누라를 얻을 때도
민식의 삶은 여전히 찌질 했다.
뭐 하나 되는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민식은 못 생긴 것도 성격이 모난 것도 아니었다.
게으르거나 나태하지도 않았고
남들이 다 하는 농땡이도 피울 줄 몰랐다.
말 그대로 건장한 체구의 성실하기 그지없는 청년이었다.
그럼에도
이 사회는 민식을 기준 미달로 낙인찍고 그렇게 취급했다.
가진 것이 없는 천애고아(天涯孤兒)였던 것이다.
세상인심은 박복한 인간들에게 더욱 매몰찬 법이다.
돌아올 것이 없는 인간들에게 기대란 없다.
꾸역꾸역 하루를 견디며 사는 인간들은 경멸의 대상으로 족하다.
우리 사회에서 찐따는 호구가 될 확률이 매우 높다.
민식은 호구의 조건을 모두 갖춘 셈이었다.
그러나 호구가 꼭 나쁘거나 손해만을 보는 것은 아니다.
바둑에서 호구(虎口)는 호랑이의 입을 의미한다.
바둑돌이 사방을 둘러싸고 한쪽만 트인 모양새다.
어디에 돌을 두어도 잡아 먹히고 마는 것이 호구다.
호구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없다.
단 호구에 들어가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호구는 치는 사람에게도 손해를 주는 경우가 있다.
바둑에 연결되면 살고 단절되면 죽는다는 말이 있다.
집짓기 놀이에서 연결은 최고의 공격이자 방어법이다.
호구보다는 연결하는 것이 최선의 활로를 찾는 방법이기도 하다.
때문에
단수(單手)와 호구는 행마(行馬)와 상황에 따라 (1)(2)
최악과 최선의 선택이 되는 법이다.
막장에서 다리를 다친 민식은
얼마 되지도 않는 산재 보험으로 연명하며 살아야 했다.
365일 일용 근로자도 일했지만
하루 일당 20만 원을 넘기지 못했다.
단순 잡부였던 까닭이었다.
그나마 한국인 오야지가 있을 때는
일자리 구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그러던 것이 2007년을 전후해
건설 현장에도 구조조정 바람이 불었다.
넘처나는 일거리에 비해 일할 사람이 없었다.
대학물 먹은 젊은이들이 막 노동판을 기웃거릴 이유는 없었다.
막노동 판에 인력난이 불자 인건비가 상승했고 인력 업체들이 경쟁에 뛰어들었다.
지역 일꾼들이 현장에 난입해 특정 조합 인력과 건설 장비만 쓸 것을 요구하기도 하고
현장에 투입되던 공정별 팀원과 인건비 작업 시간까지 협상하고 조정하려 들었다.
막장 기술자들은 늙어갔고 사람 구하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가 되었다.
건설협회에서 시행한 산업연수생 제도와 방문 취업제가 시행되자
외국인 노동자들이 급증했다.
튼튼하고 힘센 외국인들이 한국인들의 자리를 빠르게 되메워 갔다.
건축주들도 값싸고 군말도 없고 말 잘 듣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결국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한국인들은 나이 많은 목수들이 전부였다.
민식은 산재보험으로 8백9십만 원을 받았다.
그나마 1년 이상 일한 덕에 3개월간 평균 임금이 적용되었다.
20만 원 X22일=440만 원 / 440만 원 X3개월=1천320만 원 / 30일 X3개월=90일
평균 임금은 1,320만 원 나누기 90일 하니 146,667원이었다.
그렇게 계산된 휴업 급여는 평균 임금의 70% 였다.
1일 휴업급여는 146,667X70%=102,667원이다.
102,667 X(90일-3일)=약 8,932,029원이었다. 휴업 첫 3일은 지급되지 않았다.
하루 일당 20만 원을 받던 민식이
1달 입원하고 2달 병원 통근 치료하고 받을 수 있었던 최고의 금액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였다.
산재 보험을 적용받은 민식을 받아주는 막장은 없었다.
더구나 외국인들이 장악해 버린 막노동판에
나이 든 한국인들의 자리는 더욱 없었다.
먹고사는 것이 찌질했던 민식이
기웃거린 곳은
인터넷 중고 물품 거래소였다.
당근이었다.
돈이 없거나 혹은 알뜰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또는 선천적으로 헌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거나 돈 냄새를 맡은 사람들이었다.
중고가 돈이 된다는 생각은 혁신적이었다.
쓰레기가 돈이 되는 세상이 된 것이다.
고치는 것보다 새로 만들고 사는 것이 더 값싼 세상에서
중고를 돈을 주고 살 일은 없었다.
그러던 것이 황금알을 낳기 시작한 것이다.
그만큼 살기가 어려워졌다는 반론이기도 했다.
중고 물품만 올라오던 사이트는
이젠 만물박사 보물 창고가 되었다.
모든 것이 올라왔다.
쓰레기가 올라오던 사이트에 명품이 오르고
지역 모임과 일자리 그리고 광고가 도배되기 시작했다.
일자리가 급했던 민식은
당근에 오르는 일자리에 모두 지원했다.
쿠팡 퀵플렉스, CJ물류, 삼성 반도체 현장노동, 1톤 트럭, 5톤 트럭, 버스 운전기사,
냉동 창고 정리, 배달까지...
그러나
하나 같이 일자리 제공 보다 지원자들을 벗겨 먹을 심상으로 올린 광고들이었다.
하다 못해 쿠팡도 삼성도 CJ도 지원자들의 상황 고려는 전혀 없었다.
값싼 노동력 싸게 부리다 자르고 교대하면 그만이었다.
이미 그곳에도 대기업의 머슴들이 수문장 노릇을 자처하며
중간 마진을 챙기고 있었다.
찌질한 인간들의 절박한 일자리조차
또 다른
찌질한 인간들의 먹잇감이었다.
한 달 월급 500만 원 700만 원 한다며 운전만 하면 된다던
어느 운송회사는 자본금 1억을 요구했다.
지입(知入)이라 했다.(3)
자신의 화물차를 운송회사 명의로 등록하고,
그 회사 명의로 운송을 하여 수익을 내는 화물운송 방식이었다.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에 따라 영업용 번호판이 필요한 제도를 악용한 광고였다.
회사에서 중고 차량을 알선하여 주기도 하고
일정 금액을 매달 납부하는 할부 방식부터
신차를 새로 구입하여 영업을 하는
사실상 개인 사업자가 남의 영업장 일을 하며 돈을 벌어주는 희한한 구조였다.
이런 지입은
차량 톤수에 따라
운행 경로에 따라
한 달 가져갈 수 있는 돈의 액수가 달라졌다.
새벽 운송만으로 월급 400만 원을 장담하던
어느 운송업체는 당당하게 톨비며 주유비 지원을 내걸었지만
그곳도 보증금 5천을 요구했다.
언제 다 갚게 될지도 모르는 금액이 영업 조건으로 달려 있었다.
음식 배달도 규모만 작을 뿐 영업 행태는 다르지 않았다.
하루 30-40만 원 가능하다던
어느 배달 업체는 배달용 오토바이가 필요하다며 5백을 요구했다.
그것이 부담스러우면
전기 자전거 2백만 원짜리를 할부로 해줄 테니 그것으로 영업하라 했다.
삼성 생명 GFC로 일하면 한 달 수천 돈벌이는 일도 아니라던
삼성생명 경인 사업단 수원 법인은 더 가관이었다.
어느 날 민식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무단으로 수집한 개인 정보를 활용한 전화였다.
삼성 생명은 기업을 대상으로 컨설팅 작업만을 한다며
마치 대단한 일에 선택된 것에 감사하라는 듯이 일자리를 제안했다.
삼성 생명 교육에 참가하면 80만 원을 주고
교육이 끝나면 100만 원을 더 주는 조건이었다.
그리고 삼성 생명 GFC가 되면 한 달 수익 수백 정도는 장담한다 했다.
일자리가 급했던 민식은 꼬박 한 달을 교육에 정진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 수업을 들었고 보험 관련 시험을 봤다.
시험은 자비로 응시하고 붙으면 회사에서 나중에 지원해 준다고 했다.
교육을 받는 동안 삼성 생명의 지원은 점심 제공이 고작이고 전부였다.
그러나 결론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교육이 끝나고 막상 영업장으로 배정이 되고 나니
보험 영업 사원 입사 조건이 180도 달라져 있었다.
우선은 생명 보험 영업을 하려면 보증금이 필요했다.
생명 보험 대리점(GA)이 보험 계약자 보호와 모집 질서 유지를 위해
보험 회사에 예탁하는 의무적인 보증금이었다. 개인은 1억 원이었다.
신용 점수가 나오지 않으면 1차 탈락이었다.
그리곤
10일도 남지 않은 기간 안에 보험 계약 2건을 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보험 금액도 회사에서 정한 금액 이상이 되어야 했다.
게다가 월간 보험 마감 시간을 준수하여야 한다고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회사에서 요구한 영업 기간은 단 3일이었다.
2차 탈락이었다.
게다가 아침 8시부터 매일 같이 교육을 받아야 했다.
게다가 인사 전권을 쥔 삼성생명 경인사업단장의 눈에도 들어야 했다.
3차 탈락이었다.
50여 명에 달하던 동기들이 20명으로 줄었다.
하나 같이 일자리가 급하고 절실했던 찌질한 사람들이었다.
삼성 생명에서 약속했던 180만 원은 구경도 못했다.
마른오징어에서 액젓이 나온다고 했다.
사람들은 궁지에 몰리면 안 하던 행동도 서슴이 없다.
찌질한 행동들이 사회에 만연한 이유다.
언제부터인지 너도 나도 찌질한 행동을 당연시하고 있다.
대기업들이 원자재 탓하며 독과점한 설탕 밀가루 가격을 올렸다.
청과물과 상관도 없는 건설사며 사모펀드(PEF) 운용사 그리고 대기업 오너들로 구성된
가락시장 도매상들이 담합하니 과일이며 채소가 하늘로 치솟았다.
밀가루 가격도 설탕 가격도 야채 가격도 올랐으니
앞집 빵 가게(假家)도 가격 올리고
옆집 만두 가게도 가격 올리고
뒷집 자장면 가게도 가격 올리니
덩달아 마라탕 가게 주인도 가격 올리고
기회를 틈타 모퉁이 커피 가맹점도 가격을 올렸다.
너도 나도 보지도 않은 손해 반영해 덩달아 가격을 올린다.
사 먹는 사람들은 땅에서 흙 파다 장사하나?
노동자들 인건비 올려 달라 파업하고
가게 주인들 오른 물가 반영 한다고 월세 올려 버린다.
공공요금 매년 적자라고 가격 올리니
여기저기 개인 사업자들 무순 재주로 버티냐며 또 가격 타령이다.
너도 나도 마냥 찌질한 대열에 합류해서 가격 올리기 경쟁을 한다.
망하는 것보다는 찌질이가 되어서라도 살아야 한다.
그것이 이 찌질한 사회에서 살아나는 법이다.
사실 이 사회에는 호구와 찌질이들
찐따 등신들이 넘쳐난다.
파렴치한 정치인들의 행태나
뻔뻔하고 오만한 검. 판사들의 권력도
교활하고 무식한 변호사, 교수, 학자들도
사람 목숨을 돈으로 보는 의사들이나
은행들의 몰염치한 돈놀이나
카드사들의 합법적인 고리대금도
짜고 치는 유통 업자들의 매점 매석도
전 국민의 개인 정보를 질질 싸고 다니는 통신사들의 터무니없는 통신비도
호구들 등 처 먹고사는 찐따들도
눈먼 돈 사냥에 환장한 사람들까지
결국
돈이 전부인 사회에서
누가 호구이고 누가 찐따인지
분간이 안 되는 세상이다.
1. 상대의 돌을 완전히 둘러싸기 직전 돌 하나만 남은 상태를 의미하며 아다라고도 한다.
2. 바둑, 장기, 체스, 쌍륙 등에서 돌이나 말을 일정한 규칙에 따라 판 위의 적절한 자리에 놓는 것
3. 가질지(知), 들 입(入) 자를 사용하는 지입은 자신의 차량을 운송 업무에 투입한다는 의미이다. 지입은 일제 강점기 자동차가 보급되면서 시작되었는데 당시 일본 법령에서 유래한 '모찌코미(持ち込み)'에서 비롯되었다. 운송회사 명의로 등록된 개인 소유의 차량을 지입차라 하며 지입 차주는 자신의 차량을 운송회사에 등록하여 화물 운송업에 종사하는 개인이다. 운송 회사는 지입차주에게 차량 등록 명의와 영업용 번호판을 제공하여 운송 업무를 위탁받고 배차하는 역할을 하며 마진을 떼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