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연재
2부
빛을 내는 모든 것들의 주변
아주 오래전, 어떤 세계가 있었다. 세계의 사람들은 대지에 배를 깔고 살았다. 고개를 들지 못하는 몸을 가졌고, 오늘날, 우리가 하늘이라고 부르는 공간에 대한 개념 없이 자신들의 생을 시작했다. 어떻게든 자신들의 방식으로 살아갔고, 삶을 끝내고, 다시 살았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그곳에는 빛나는 모든 것들이 있었다.
라라가 말했다.
“불안하게 서 있는 것 같아. 어떤 운명이 잘 설계된 평면 위에”
나는 라라의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평면은 아닐 거야. 평면 위에서는 방향만 있고 공간은 없어. 점프도 추락도 할 수 없지. 만약 우리 둘 다 종이 위에서 이동하는 중이라면, 어쨌든 우리는 만날 수는 있을 거야.
별로 로맨틱하지 않은 방식일 테지만. 너는 오른쪽으로만 향해 가는데 나는 왼쪽으로만 다닐 수도 있는 거고, 네가 북쪽으로 가는 날, 나도 우연히 북쪽으로 향했거나, 내가 먼저 남쪽으로 걸음을 옮겼을 때, 너도 어떤 이유에서나 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남쪽을 향해 달릴 수도 있어.
결국, 어쩌면 우리는 만났을 수도 있고, 결코 만날 수 없었을지도 몰라. 그저 우리 둘 중의 한 사람의 속도가 더 빠르거나, 느린 경우에 만나는 시점만 조금 달라질 뿐이야.”
라라는 다시 물었다.
“세계는 좁고 긴 직사각형 종이 같아. 우리는 그 종이 위에 사는 거네. 우리에게는 우리마다 각각 하나씩, 다른 종이가 있어. 종이는 깨끗해. 한 사람에게는 한 장의 종이가 허락돼. 나는 내 종이에 나의 세계를 그릴 수 있어. 지금의 모습이든, 좋아하는 모든 사물과 사람들, 혹은 싫어하는 모든 사물과 사람들, 꿈에서 가끔 보이는 이미지든, 엄마 아빠와 함께 갔던 놀이공원이든,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져 버린 그 날의 시간이든, 공간이든, 거기에 스며든 냄새든.
중요한 것은 나의 세계를 너의 종이 위에 그릴 수는 없다는 말이야."
라라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이쪽에 사는 나는 너의 세계로, 그러니까 너의 시공간으로 절대로 들어갈 수 없다는 거야. 왜냐하면, 우리는 다른 종이 위에 살고 있으니까. 우리의 세계는 각각 달라. 나는 나의 종이 위에 살고 있고, 너는 너의 종이 위에 살고 있어. 우리는 서로 만날 수 없어. 원래 그런 거야. 서로 만날 수가 없어. 영원히.”
나는 대답했다.
"네 세계가 아름다워도 나는 네 세계로 갈 수 없어. 상상할 수도 없는 거지. 그것이 슬프다고 말할 이유도 없어. 어차피 우리의 세계는 처음부터 다르니까."
라라는 물었다.
“그런데 네 말대로 평면 위의 한 점에 우리가 서 있는 것이 아니라면, 너는 우리들의 공간이라는 게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우리들의 공간’이라고 하는 말은 너, 나 이렇게 둘, 적어도 둘 이상의 ‘우리’라는 주체가 함께 공유하고 있다는 말 아니야?”
“맞아. 종이 위의 이동은 매우 지루해서 어느 날, 내가 갑자기 네가 보고 싶어 질 때, 발꿈치를 들어 고개를 빼고 너를 찾을 수도 있어. 혹은 점프를 있는 힘을 다해서 할지도 몰라. 커다란 종이 위에 네가 어디 있는지 찾기 위해. 그래도 네가 보이지 않는다면 가끔 허공을 달릴 거고, 높은 곳에 올라가서 너를 찾을 거야. 그러니까 우리는 선에 있는 것이 아니야. 우리 중 누군가가 운명의 평면 위로 점프를 시작하게 되면, 그때 우리는 평면 위의 시공간을 공유하게 되는 거야.”
그 순간 우리 앞에 까만 개미가 기어갔다. 햇살이 개미에 닿으니 까만색도 제법 반짝반짝 빛이 났다. 우리는 우연히 개미를 본 것일까? 아니다. 개미는 그저 지나가고 있었을까? 아니다.
고개를 세우고 서로의 눈만 바라보던 우리가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고개를 숙여 아래를 바라보았던 것이고, 그때가 하필이면 개미가 우리의 발밑을 기어가고 있었던 순간이었을 뿐이다.
이 모든 일은 우연이다. 까만 등에 비친 작은 섬광이 우리 앞의 개미의 세계를 밝게 비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