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이란 우울감이 파도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파도 아래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풍경들이 존재한다.
우울증의 바다에서 다양한 풍경이란 다양한 감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 속에서 감정을 발견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모든 감각이 둔화되어 감정의 고리를 타고 오는 경험들 또한 찾기가 어렵다. 때때로 분노와 슬픔의 소용돌이가 일 때도 있지만 그래도 가장 흔하게 발견할 수 있는 감정은 '무력감'과 '좌절감'이다. 감각과는 떨어져 있는 우울증의 바다에서 유영한 결과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 다양한 풍경에 대한 인식은 '낯섦'에서 오기도 한다. 이 세계는 意(뜻 의)로 시작되는 모든 게 없다. 의미, 의욕, 의지.. 이 낯선 세상에서 쌓을 수 있는 블록은 단단한 바닥이 없는 것들이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쌓을 건데?
운동, 또는 그게 힘들면 걷기라도 해 보세요.
햇빛을 쬐어 보세요.
감정 일기를 써보세요.
전문가와 상담하세요.
약을 드세요.
나는 수영을 못한다. 이 바다에서 오래 견디지 못할 것을 잘 알기에 우울증, 뇌과학, 심리학 등 관련된 책과 동영상을 필사적으로 뒤졌다. 해결책들은 모두 알고 있다. 이 바다에 있는 누구나 그렇듯. 자기 계발서를 아무리 읽어도 달라지기가 힘든 것처럼, 수영 영법을 책으로 열심히 익힌다 한들 수영이 어느새 될 리가 없다.
우울증의 바다에서는 하루하루가 생존이다. 이 게임에서 내 HP는 언제나 거의 고갈 상태이고 이걸 채울 수 있는 미션도 존재하지 않는다. 미션이 있다 해도 수행하기 전에 이미 죽을 것이다. 한 칸을 아끼기 위해서는 신중해야 한다. 하나를 하기 위해 다른 모든 걸 버려야 한다. 침대에서 눈을 떴기 때문에 침대에서 나갈 수가 없다. 침대는 유일하게 날 보호해 주고 에너지를 아낄 수 있는 안식처다. 그렇기 때문에 화장실도 갈 수가 없다. 그 또한 내 의지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나는 침대에 갇혀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침대에서 화장실까지 3 걸음, 4 걸음, 또는 무한대. 침대에서 바라보는 욕실 문은 우울증의 바다에서 흔한 풍경이다. 보이는데 갈 수가 없는. 신기루 같은.
침대와 욕실 사이. 온갖 無로 빚어진 낯섦의 풍경에서.
이제는 더 이상 낯설지도, 익숙하지도 않은 그 경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