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이다 병

by 유칼리

정신건강의학과에 들어서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늘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소아청소년과, 내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분주함이 없다. 대기실은 단순히 기다리는 공간이 아닌 응접실 같다. 아무도 내게 말을 걸거나 하지 않아서 좋다. 그 공간의 공기만이 조용히 나를 반긴다. 사람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그즈음의 나에게 예약된 시간에 의사 선생님을 뵙는 건 진심으로 반가운 일이었다. 이상한 소리 같지만 지금도 이따금씩 그때가 그립다.


상담실은 하얗고 깨끗하다. 내 이야기를 들으며 곁눈질한 벽에는 시간이 흐르는 모양대로 창의 블라인드와 내 그림자가 늘어진다. 20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그날도 한 편의 드라마가 상영된다. 내가 아주 잘 아는 이야기다. 일부는 수도 없이 돌려봤지만 엔딩은 아직 모른다. 역시 반전이 있어줘야 하는데. 오늘 이 드라마도 의사 선생님과 함께 보고 있다. 선생님은 머리 한올 흘러내리지 않은 머리를 늘 정갈하게 빗으신 인상 좋으신 어르신이다. 첫 상담에서 우울증이 찾아온 계기와 현재 상태가 진단된 이후, 상담이 거듭될수록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가 안고 있었던 고민과 딜레마들이 먼지벌레처럼 튀어나왔다. 선생님은 어느새 사라지고 맞은편에서 이야기의 조용한 에코가 돌아온다. 타닥타닥 이야기를 기록하는 선생님은 진지하고 침착하다. 나도 덩달아 침착하게 수만 번 본 그 드라마를 곱씹는다.




나르시시스트에 대해 열심히 공부했다. 잘 알아둬야 백전백승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더 아프지 않을 것 같았다. 나르시시스트가 뭔지 알게 되고 처음에는 속이 시원했다. 드디어 그동안 바늘을 삼킨 것 같았던, 뒤틀려온 관계의 원인을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사실 또한 알게 되면서 더 깊은 절망이 찾아왔다. 엄마와 숨 막히는 침묵 속에 수개월에 걸쳐 카톡으로 간간히 오고 간 그 '대화(라 부를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를 통해 깨달았다. 내가 원하는 건 고작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일 뿐인데. 나는 아마 평생 그 말을 들을 수 없을 거다.


나르시시스트에게는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 바로 자신의 이미지이다. 종잇장처럼 얄팍한 그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가장 가까운 가족도 기꺼이 희생시킬 수 있다. 그들은 언제나 옳고, 좋은 사람이고, 검소하고, 고상하고, 신앙심 깊은 점잖은 이미지지만 그 뒷면은 독단적이고, 거칠고, 우악스럽다. 나르시시스트는 완전무결하다. 부정적인 감정은 (가장 만만한) 타인에게 투사해서 뒤집어 씌운다. 자존심이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한 사람이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불행하다. 스스로를 가장 싫어하는 게 바로 나르시시스트 자신이니까.


나를 단지 희생양으로 취급하고 싶지 않다. 갑자기 깨어 일어나 모든 걸 바로잡으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럴 능력도 없을뿐더러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나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싶다. 내가 어디가 아픈지 알고 내가 나를 정성껏 도와주고 싶다. 가족들 속에서 나를 헤라로 파내고 싶다. 희미해진 가스등을 보며 내 눈을 탓하다 종국엔 나를 더 싫어하게 될 것 같은 두려움에 도망쳤을 뿐이다. 넷플릭스 시리스 '미지의 서울'의 할머니가 하시는 말씀을 듣고 다시 용기를 얻는다. 나는 살기 위해 도망쳤다. 과거로부터.


사슴이 사자 피해 도망치면 쓰레기야?

소라게가 잡아먹힐까 봐 숨으면 겁쟁이야?

다 살려고 싸우는 거잖아.

미지도 살려고 숨은 거야.

암만 모냥 빠지고 추저분해 보여도 살자고 하는 짓은

다 용감한 거야.


엄마가 원하는 인생을 사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했지만 고통스러웠고 이제 그만하고 싶다.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해 온, 내가 걸어왔던 길들이 누군가의 기준에 따라 잔인하게 묵살되고, 재단되는 것을 더는 견딜 수 없다. 나는 가족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런 능력이 없다. 내 가치를 그런 것으로 채우려 하지 말자. 후폭풍을 감내해야 한다.




의사 선생님은 매번 나와 같이 진심으로 고민하셨다. 내 이야기에 공감하고 고민들을 함께하려고 하셨다. 선생님의 정성과 노력, 환자를 개선시키고자 하는 의지와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병원에 갈 때마다 내가 어떤 노력을 하고 있고, 어떤 부분에서 나아지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계획으로 어떻게 실천해 나갈 것인지 설명하려고 애썼다. 그날 다시 실시한 검사 결과에서는 경계선을 넘어 정상 범위로 한 발짝 이동했다. 병원을 나서는 내 발걸음은 밀려오는 허탈함과 씁쓸함으로 다시 무거워졌다.


병이다 병. 나는 정신건강의학과에 와서도 인정받으려고 애쓰고 있구나.


이제 매일 약을 먹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혹시 또 상태가 안 좋아지면, 약이 떨어지면 다시 병원에 가면 된다. 선생님은 해결책을 명확하게 알려주지 않으셨지만 상담이 거듭될수록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건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구나. 결국엔 내가 해야 한다. 거울 속의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의사 선생님처럼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병도, 해답도 내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