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니퍼 Mar 13. 2021

25년 전 방송작가?

글을 돈으로 바꾸는 2가지 원칙

방송국에 매일 출근하는 프리랜서

언론사 기자나 광고회사 카피라이터가 아니고는 글 쓰는 직업이 정규직인 일터는 거의 없어.

나도 25년 전인 1995년부터 2000년까지 방송국에 매일 출근하며 6년을 일했지만, 원천징수 영수증의 소득 구분은 자유직업 코드였지.


방송작가 처우가 2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나빠진 게 분명해. 나무 위키에서 방송작가를 검색해 보니 요즘엔 막내작가를 5년 정도 버텨내야 메인작가도 아닌 서브작가(코너 전담)로 입봉을 한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야.


25년 전에도 열 명 중 세명 남아

서브작가나 메인작가의 원고료의 수준도 25년 동안 물가상승률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듯해. 예전에는 최소한 자료조사원을 1년 넘게 시키면 팀 안에서 어떻게든 서브작가 자리를 주기 위해 노력하는 분위기였어.


물론 자료조사원 10명 중에 서브작가로 올라서는 사람은 서너 명 정도였고, 서브작가 10명 중에 메인작가가 되는 경우도 10명 중 3명 꼴이긴 했지. 불편하지만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야 하는 경쟁구조로 돼 있었어. 하지만 과거에는 길면 1년 정도 자료조사를 해보고 방송작가로서 적합성을 검토한 후 다음 단계를 선택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면 요즘은 막내작가로 그럴듯하게 불리면서 착취의 굴레에 빠져 있는 거 같아.


방송인력 아카데미 홍수시대

이렇게 방송작가나 프리랜서 직무인 방송 스텝의 처우가 세월이 쌓일수록 더 나빠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 함께 각 방송사와 대학교는 물론이고, 사설 학원에서 방송아카데미를 운영하면서 방송 예비인력 교육 시장만 과도하게 커진 느낌이야.


'지난 2008년에는 SBS 긴급출동 SOS에서 근무하던 막내작가가 투신자살을 했다. 이 때문에 막내작가의 근무환경 개선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그때뿐이었다. 이렇듯 많은 막내작가들이 방송계에 뛰어들지만 대부분 절망하고 돌아가는 게 현실이다.' (출처:나무위키)


3개월 쓰고 버리고, 6개월 쓰고 버려도 막내작가를 희망하는 예비 인력이 끊임없이 배출되는 공급 과잉 현상의 참사라고 볼 수 있지. 요즘 웹소설, 웹툰 작가도 아카데미 마찬가지야.


한국방송작가협회 작가 권익 더 신경 써야

나는 시절을 잘 만나 한국방송작가협회 교육원 기초반(6개월 과정)에서 EBS 일요 초청 특강 메인작가로 일을 시작했지만, 연수반(6개월 과정) 교육을 병행하면서 공중파 3사에 들어가기 위해 바닥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자료조사원(막내작가) 기회를 선택했었어.


한국방송작가협회 교육원은 방송작가 양성기관으로서 위상이 높았고, 강사진도 유명 프로그램의 현역 방송작가분들이 직접 지도해 주셨지.


까다롭고 경쟁률 높은 승급과정

기초반은 약 40명 내외의 5개 반 이상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연수반은 드라마 반과 비드라마 반으로 나눠지면서 해당 기수의 기초반에서 20명 이내의 2개 반을 선발했어. 기초반에서 전문반 승급은 10대 1 정도의 경쟁률을 뚫어야 했고, 수업은 주 1회였으나 과제가 많아 1주일 내내 글 쓰기 훈련을 했지.


그렇게 단계 별 과정에서 실제 일을 할 수 있는 열정과 실력을 검증하는 승급과정이 까다롭다 보니 연수반에 올라가면 대부분 교육 중에 여의도 3사 방송국에서 일을 시작할 있었어.

한국방송작가협회 교육원 1994년~1995년 수강료 안내문

요즘은 방송사나 대학에 각종 방송아카데미가 즐비하지만, 그 당시 방송작가 양성과정이 유일하다 보니 교육원으로 작가 추천 의뢰가 오는 것이 일반적이었어. 보통은 연수반이나 전문반을 대상으로 작가 추천 의뢰가 오는데, EBS 일요 초청 특강에서 작가협회 교육원으로 작가 추천이 아닌 방청객을 요청했던 거야.


교육원에서는 방청객의 요청이라 기초반에게 방청객 참여를 권유했고, 마침 우리 반에서 참여를 하게 된 거지. 녹화가 끝나고 담당 책임 PD가 나와 해당 프로그램의 작가를 찾고 있는데 지원 의사가 있으면 이력서와 포트폴리오 제출을 요청했어.


방청객에서 EBS 메인작가 기회

기초반에는 실제 글을 써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어. 글을 써보고 싶어 하는 다양한 사람들 중 기본 소양을 검토해 선발된 사람들이라 작가 지망생, 직장인, 대학생, 교사, 주부까지 다양했으니까.


마흔 명이 넘는 사람 중에 글을 써본 경험이나 유사 경력자는 교통방송 리포터 출신과 MBC 드라마 스크립터 경력자 그리고 미술 전문 잡지사 기자 경력이 있었던 나까지 단 3명이었지, 지원서는 7명이 제출했고 운 좋게 내가 최종 선발된 거야.


일을 제대로 배우기 위한 기회

여의도 입성을 꿈 꾸며 비드라마 연수반 교육을 병행했고, 연수반 교육 중 KBS 아침마당 프로그램 자료조사 추천이 들어왔지. 당시 연수반 담임 강사님은 한 꼭지라도 원고를 쓸 수 있는 서브작가가 아닌 자료조사 자리라서 아쉽지만, 인지도 높은 프로그램이고 무엇보다 일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기회라며 권하셨어. 그리고 3개월 안에 서브작가로 승급되지 않으면 그만둬도 좋다고 했지. 애정 어린 조언이었고 은 기회였어.


마약 같은 여의도 방송물의 약발

아침마당이라는 탄탄한 프로그램에서 자료조사원을 한 덕에 3개월 만에 서브작가가 되고, 3년 만에 메인작가로 비교적 빠른 성장을 경험했어. 방송작가는 보통 함께 일한 제작진과 새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움직이게 되는데, 자료조사원의 자리는 좋은 프로그램과 함께 일하는 PD 그룹을 만나는 기회가 된 거야.


방송국 상주작가? 고정 방송에 묶여서 매일 출근하는 작가를 칭함. 태풍이나 홍수로 정규방송이 결방이 되더라도 재난 특별생방송에 차출되었고, 긴급 편성된 12시간 특별 생방송에 투입되면 방송국에서 뜬 눈으로 날을 새며 생방송 원고를 써야 했어. 설 명절이나 추석에는 '귀성길 안전하게'라는 특별 방송에 차출되기도 했지만, 마약 같은 여의도 방송물의 약발이 4년 차 정도까지는 지속된 거 같아.


차장 작가, 부장 작가는 왜 없나?

5년 차가 된 어느 날 문득 PD는 차장이 되고 부장이 되는데 왜 작가는 차장 작가 부장 작가가 없을까? 나는 왜 연차가 없을까? 무노동, 무임금, 무연 차인 방송작가라면 돈이나 더 많이 많이 벌어야겠다고 결심했어.


그 당시 서브작가는 프로그램에 따라 회차당 30~40만 원으로 월 급여가 120~160만 원인데 반해 메인작가는 회차당 80만 원~100만으로 월 320만 원~400만 원의 보수를 받았어.


메인작가와 서브작가의 보수 차이가 큰 편인데 서브작가 시절엔 두 가지 일을 할 수 없었지만, 메인작가가 되면 능력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일을 병행할 수 있었지.


내 글에 값을 매기는 원칙 세우기

나는 메인작가 되면서 방송국 밖으로 눈을 돌렸어. 닷컴이 활성화되던 시절이라 지금처럼 전문적이 웹 기획 인력이 없었기 때문에 방송작가에게 다양한 아르바이트가 들어왔거든. 선배나 동료 중에는 방송국 바깥일을 하고 돈을 떼인 이야기를 듣기도 해서 두 가지 원칙을 세웠어.


첫째, 계약서를 써야 일을 시작한다.
둘째, 내 1주일 인건비는 주간 원고료의 120% 이상을 받는다.


20년 전 콘텐츠 작성 용역 계약서

이 계약서는 당시 온라인 게임 업체로부터 커플들이 함께 풀 수 있는 퀴즈문제 2,000개(창작, 각색, 카피 모두 허용 조건)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에 따른 계약서야. 먼저 업무의 난이도와 일정의 가능 여부 그리고 내가 정한 주당 내 인건비를 충족하면 바로 계약서를 달라고 요청했지.


창작, 각색, 카피가 모두 허용된 퀴즈 만들기는 하루에 200개 정도는 거뜬한 일 아닌가? 4월에 보름 동안 2,000개 5월엔 열흘 동안 2,400개를 만들고 총 500만 원의 보수를 받았어. 이 게임은 대만에 5만 달러의 계약금을 받고 수출되었고 매출액의 20%를 러닝로열티로 받는 조건으로 팔렸어. 우리는 상호 간에 적절하게 이익을 낼 수 있는 계약을 한 거야.

온라인게임 '커플메이커' 대만 수출 뉴스 (출처: 한국경제)

온라인으로 제공되는 다양한 서비스 사이트의 웹 카피라이팅뿐 아니라 게임 콘텐츠, 유료 ARS 서비스 시나리오, 다이어트나 농구 비디오 시나리오, 연예인의 유행어를 패러디한 삐삐 인사말까지 위 두 가지 원칙만 지켜주면 닥치는 대로 일을 했어. 마치 돈 독이라도 오른 것처럼..


코로나의 상처, 전 국민 마케팅 쓰기 알바

요즘 글 쓰는 일이 제법 돈벌이가 되는 것처럼 광고하는걸 종종 보이더라고. 글 쓰는 게 일이 되려면 내 노동의 가치가 정당하게 인정되어야 해. 글 쓰는 일이 곰 눈깔 붙이는 부업 같은 일이 아니라 내 노동력을 보다 가치 있는 비용으로 바꾸는 행위가 될 수 있다면 좋겠어.

출처: 고용노동부 최저임금위원회

1주일 내내 10건의 원고를 쓰면 5만 원?

네이버에서 글쓰기 알바를 쳐보면.. 음.. 글 쓰기 부업의 정체는 무엇일까?

전달받은 원고를 따라 작성하면 되는 쉬운 재택부업 한건당 4,000~6,000원 한건 작성당 소요시간 30분~60분, 홍보 마케팅을 위한 미러링 글 쓰기 아르바이트생을 모집하는 내용이야.

글쓰기 부업 검색 상위 블로그 (출처:네이버)

잘할 수 있거든 시작해봐

글 쓰는 일을 하고 싶은가?

아니면 취미로 글을 쓰고 싶은가?

대한민국에서 글 쓰는 일이 진정한 일이 되기를 바래. 글 쓰기가 진정한 일이 되기를 원한다면 정말 잘 해내고 돈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진 가치를 만들어야니까.


요즘 글 쓰기 나를 위한 힐링타임

나에게로 집중하는 시간, 하루 24시간 중에 잠자는 6시간을 제외하면 18시간이 남아. 직장에서 보내는 8시간을 제외하면 10시간, 그런데 그 10시간 중에 원거리 통근 3시간을 빼야 하고, 추가 업무로 1~2시간이 빠지면 직장 업무와 연관된 시간이 12시간을 넘기더라고. 삶에서 위험신호를 느낄 때, 적절하게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해. 일과 삶의 균형을 잡는 일, 글 쓰는 일은 내 삶의 윤활유로 충분하지.


요즘 주가다 브런치 통계가 더 재밌어$

그래도 주말엔 돈 되는 주식생활을 놓치지 말자.


기/승/전 슬기로운 주식생활$

작가의 이전글 고양이야, 부탁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