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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Jang Oct 21. 2024

윈디 시티 블루스 (3/3)

3.

오전 내내 비가 내리다가 오후 네 시쯤부터는 날이 개이기 시작했다. 이제 고등학교와 교회만 책임지면 되는 건호와 제이는 빗자루와 대걸레를 들고 날아다니다시피 민첩하게 몸을 움직였다. 그렇지만 청소 구역 많이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페이스 조절을 못한 사람은 상당한 피로감을 느끼며 교회로 이동해야만 했다. 교회는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PCA 교단에 속한 그라티아  장로교회였는 데, 화려한 장식 없이 깔끔하고 단순한 외관을 가진 구조였다. 두 사람 정도의 인원이 무리 없이 청소를 끝낼 수 있는, 부담스러운 면적을 가진 장소는 아니었다. 다만 이곳저곳에 다양한 크기의 사무실들과 예배실들이 있었다. 제이가 대예배당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중앙 통로에 깔린 빨간 카펫을 보자 그의 머릿속으로 어떤 장면이 떠올랐다. 그는 아주 어렸을 때 엄마 손을 잡고 교회에 다녔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서강대학교 근처에 위치한 교회였다. 교인들은 세차게 손뼉을 치며 찬송가를 불렀고, 목사는 목에 생선가시가 걸린 것처럼 허스키한 목소리로 설교를 했다. 제이가 나무로 만들어진 윤기가 나는 설교단을 바라보며 건호에게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느냐며 물었다. 건호는 신? 글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라고 대답했다. 엊그제 카페에서만 해도 신은 살아있다!라고 큰소리로 외치던 건호는 48시간 만에 신의 존재여부에 별 관심 없다는 투로 대답했다. 건호는 제이에게 그러면 너는 신이 있다고 믿느냐며 되물었다.

제이는 나는 왠지 있는 것 같아, 논리적으로 설명하긴 힘들지만 그런 느낌이 들어,라고 카펫 바닥을 꼼꼼하게 살피면서 대답했다. 신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말이야, 그 신이라는 분이 분발을 좀 하셔야 할 것 같다. 미쳐 돌아가는 이 잔인한 세상을 봐라. 얼마나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냐. 살아도 사는 게 아닌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으냐는 말이다,라며 건호가 냉소적으로 얘기했다. 제이는 아무런 대답 없이 허리춤에 있던 마른 수건을 뽑아 들고는 돌아다니면서 장의자의 먼지를 닦았다. 여기는 네가 좀 해줘, 지하에 있다는 화장실을 내가 청소할게,라고 건호가 말한 다음 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려갔다. 제이가 진공청소기를 가져와 코드를 벽에 꽂은 후 카펫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타는 냄새와 더불어 요란한 모터 소리가 이십여 분간 실내에 울려 퍼졌다. 제이청소기의 OFF 버튼을 발로 눌렀고 그 소리 잦아들었다. 이렇게 해서 예배당 청소는 깔끔하게 완료되었다. 제이는 흐뭇한 얼굴로 진공청소기가 지나가면서 낸 자국을 바라보았다. 그는 건호가 있는 지하로 내려갔다. 건호는 여자 화장실을 청소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있었다. 제이가 화장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건호는 그가 왔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제이는 건호를 놀라게 할 심산으로 발뒤꿈치를 들고 그의 뒤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그러더니 제이는 손을 뻗어 건호의 뒷목을 덥석 잡았다. 건호가 으악, 하고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뭐야! 깜짝 놀랐잖아!" 그가 고개를 홱 돌리고 제이에게 고함쳤다. 상당한 만족감을 얻은 얼굴로 제이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누군 줄 알았냐? 혹시 예수?" "미친놈. 무서워 죽는 줄 알았네, 앞으로 이런 장난은 제발 치지 마라. 심장마비 걸리겠다.” 건호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12시 자정이 조금 지나 그들은 청소를 완료했다. "배도 고프고 술도 고픈데 소주에 족발 어때?" 건호가 교회 문을 잠그며 물었다. "술은 별로 당기지 않지만 배는 고프네. 일단 장충동 족발집으로 가자. 거기 몇 달 전부터 24시간 영업으로 바뀌었잖아." 제이가 말한 다음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건호는 그의 올리브색 기아 리오를 몰고 제이의 차 뒤를 따라갔다. 글렌뷰에 있는 장충동 족발집에 도착한 두 사람이 차례로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이 부딪히는 소리와 달그락대는 접시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고, 입안에 즉시 침이 고정도로 식욕을 당기는 냄새가  앞에서 실거렸다. 고단한 이민생활에 찌든 제법 많은 영혼들이 혼탁한 동공으로 음식과 술을 먹고 마시고 있었다.

"술을 부르는 분위기란 바로 이런 무드를 말하는 거지." 건호가 중얼거리며 창가 테이블에 엉덩이를 내렸다. 제이는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화장실 사인이 붙은 구석으로 걸어갔다. 곱슬머리에 뿔테안경을 쓴 웨이트리스가 다가와 주문을 받았다. 건호가 그녀에게 소주 한 병과 족발 대자를 주문하며 먹다가 뒈질 만큼 돼지 족발을 많이 달라고 요청했다. 웨이트리스가 피식 웃으며 알았다고 한 후 키친으로 돌아갔다.

"뒈질 만큼 양 많은 돼지 족발 대자 하나요!" 종업원이 주방에 대고 큰소리로 외쳤다. 그 소리를 화장실을 막 나온 제이가 듣게 되었는데, 방금 것은 건호가 주문한 것이겠구나, 하고 그는 순간적으로 생각했다.

종업원이 냉장고에서 소주 한 병과 밑반찬 몇 가지를 테이블로 가져왔다. 제이는 자신은 운전을 해야 하니 소주를 마시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고 건호에게 자신의 집에서 자고 내일 함께 출근하자고 했다. 건호는 생각해 보겠다며 제이가 따르는 술을 받았다. "건배하자." 소주가 아닌 물이 든 잔을 들며 제이가 말했다. 건호가 소주잔을 부딪 후 술을 단숨에 입 속에 털어 넣었다. 아줌마가 족발이 가득히 든 접시를 들고 나왔다. 그 뒤로 웨이트리스가 상추, 마늘, 무절임, 고추, 그리고 반찬이 든 작은 그릇들을 가져왔다. "바로 이거야. 이 정도는 돼야 족발 대자이지!" 건호는 큰소리로 말한 다음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제이는 족발 한 점을 집어 새우젓에 찍었다.

"어떻게 족발을 새우젓에 찍어먹게 됐을까. 누가 제일 먼저 시도했던 걸까?" 제이는 나무젓가락 사이에 낀 족발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딴 게 뭐가 중요하냐? 질문을 하려면 좀 더 수준 있는 철학적인 질문을 던져봐라." 건호는 말한 다음 파김치를 집어 먹었다.

제이는 턱을 긁으며 철학적인 질문을 생각해 보다가 그렇다면 삶의 목적에 대해 말해보라고 건호에게 물었다.

"삶의 목적? 삶 자체 없는 사람한테 그런 질문을 하다니, 이건 마치 환관한테 발기의 목적에 대해 묻는 것과 같은 거라고." 건호의 씁쓸한 미소가 술잔 위로 떨어졌다.  

그의 비유에 킬킬거리다가 제이는 재차 물었다. "삶이 없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살아도 살아있는 것 같지가 않아.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도 모르겠어. 이런 걸 생각하면 우울이 밤손님처럼 찾아온다. 그러다우울마저도 나를 별 볼일 없다고 생각했는지 훌쩍 떠나 버리더라고." 건호가 했다. 제이그 와중에도 너는 유머를 잃지 않는구나,라고 그에게 말했다. 건호는 소주 한 병을 말끔히 비웠고 제이는 사이다 한 캔을 모두 마셨다.   

"늘은 우리 집에서 자자. 요즘 음주단속이 심해져서 몸 사리는 게 좋아. 잘못 걸리면 바로 추방되는 수가 있어." 제이가 건호의 콰해진 얼굴을 보고 충고했다.

"맞는 말이네. 그러면 슬슬 나가자." 건호가 말한 뒤 종업원에게 남은 족발을 싸달라고 요구했다.

종업원이 스티로폼 컨테이너를 가져와 그 안에다 족발과 남은 음식들을 담았다. 제이는 주인아저씨에게

식당 주차장에 있는 건호의 차는 내일 오전 내로 찾아가겠다고 말했다. 주인아저씨는 제이가 건넨 돈을 두 번째로 세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식당을 나온 두 사람이 제이의 차에 올랐다. 제이는 집을 향해 가면서 라디오를 틀었는데, 그가 한 때 즐겨 들었펫숍보이스의 “Liberation" 이 흘러나왔다. 그의 기분은 음악으로 인해 조금은 들뜨게 되었다. 밀워키 로드를 타고 부지런히 달린 제이 그의 아파트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건호가 족발이 든 흰색 비닐봉지를 들고 차에서 내렸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제이는 불을 켠 다음 방바닥에 바로 드러눕는 건호에게 라면이라도 끓여줄까?라고 물었다.

"신박한 생각이다. 속이 느글거려서 뭔가 얼큰한 면종류가 먹고 싶었는데, 네가 내 마음을 읽었구나. 난 가끔 말이다, 네가 학교청소나 하고 있기엔 너무 아까운 인재란 생각이 들어." 건호는 일어나 앉아 눈을 비비며 말했다.  

"그럼 뭘 할까?" 제이는 싱크대에서 냄비에 물을 받으며 물었다.

"너는 정부청사나 법원을 청소해야 돼. 정치나 법조계로 뛰어들란 말이야." 건호가 말한 다음 뒷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 말을 들은 제이는 침을 튀기며 웃었다. 라면이 다 되자 건호는 구석에 있는 라면상자를 가져와 뒤집어놓았다.

"구석에 모아둔 신문지 있지? 그거 한 장 가져다 상자 위에 깔아라." 제이가 냄비를 들며 말했다.  

건호가 시카고 트리뷴지를 라면상자 위로 펼쳐놓았다. 신문 윗단에는 시카고 베어스, 라이벌 그린베이 패커스에 37-35로 역전승, 이라고 큰 활자로 쓰여 있었다. 제이가 냄비를 그 위에 올려놓은 후 냉장고에서 부추김치를 꺼내왔다.  

 "부추김치가 말이야, 담배 피우는 사람한테는 최고라더라." 건호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입가심으로 맥주나 한잔 하자." 제이가 건호에게 하이네켄을 건넸다.  

"이 맥주는 맛이 별로던데..." 건호가 맥주 캔을 받아 들며 중얼거렸다.  

"그냥 주는 대로 마셔라. 이래 봬도 이거 네덜란드산이다. 우리 같은 청소부한텐 과분한 맥주라고." 제이가 집게를 사용해 라면을 그릇에 담았다.

그러자 건호는 히딩크의 나라 네덜란드? 그렇다면 어디 한 번 마셔볼까,라고 반응했다. 두 사람이 맥주를 길게 들이키며 거의 동시에 창밖을 바라보았다. 술에 취한 도시가 마치 지진이 난 것처럼 좌우로 어지럽게 흔들렸다.      


안개비의 입자가 유령처럼 허공을 떠돌아다니는 흐릿한 저녁이었다. 오늘 일 나오기 전에 고사장이 전화를 걸어 특별히 당부까닭으로, 건호와 제이는 고등학교와 농구장 청소를  시간째 세심하고 꼼꼼하게 쓸고 닦있었다. 건호가 밀대를 바닥에 놓고 농구 코트 한쪽에 있는 음료수 자판기로 걸어갔다. 그가 바지 주머니손을 넣었지만 동전도 지폐도 없었다. "제이야, 돈 좀 있으면 줘봐." 건호가 고개 돌리며 말했다.

제이가 그에게 지폐를 건네며 말했다. "나는 콜라로." 건호가 자판기에서 콜라 두 개를 뽑아 하나를 제이에게 건넸다. 제이는 대롱대롱 턱에 매달린 땀방울을 닦은 뒤 콜라를 들이켰다. 건호는 빛의 속도로 콜라 캔을 비웠다. "목말라 죽는 줄 알았네." 구석에 있는 커다란 쓰레기통을 쳐다보며 건호는 제이에게 말했다. "빈 깡통 골인시키기 어때? 오 불 내기."  "좋다, 그러면 네가 먼저 던져라." 제이 그의 도전을 받아들였다.

건호 조심스럽게 각도를 재 두 번의 스로잉 모션을 취하다 깡통을 던졌다. 그가 던진 캔은 오른쪽으로 크게 빗나갔다. 건호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제이의 차례였다. 그는 주저 없이 바로 캔을 던졌다. 깡통이 쓰레기통 위쪽에 맞고 빙그르 한 바퀴 돈 후 통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할렐루야!" 제이가 소리치며 검지로 천장을 가리켰다. 건호투덜거리며 삼 불은 월급 받으면 주겠다고 말했다. 제이는 삼 불 같은 소리 하고 네, 그새 사기를 치려고, 월급날 오 불 내놔라,라고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아직 기억력이 좋구먼, 이라며 건호는 킥킥거리며 웃었다. 그리고 밀대 청소기를 집어 들며 말했다. "이 정도로 청결하게 했으면 여기는 충분한 것 같다. 이제 교회로 이동하자."

"오케이. 그나저나 오늘은 진짜 피곤하네." 들숨과 날숨을 번갈아 쉬며 제이는 눈썹을 덮은 앞머리 손으로 쓸어 넘겼다. 건호가 농구장을 나오며 스위치를 내리자 펠로우쉽 스쿨 전체가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였다. 달 뒷면에서 자라난 달빛 한줄기가 어둠을 뚫고 건물 안으로 떨어졌다. 두 사람이 파란 빛줄기의 인도를 따라 복도를 걸었다. 이대로 걸어서 천국까지 갈 수 있다면... 제이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출입문을 열었다. 교회는 학교에서 두 블록 떨어진 곳에 있었다.

"차 타고 갈래, 아니면 걸어갈래?" 건호가 제이를 뒤따라 나오며 물었다.

"그냥 걷자. 십 분도 안 걸리니까." 제이가 대답했고, 냉랭한 밤공기와 뒤섞인 그의 입김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쭉 직진해서 걸어가던 그들은 두 번째 골목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백여 미터 앞에 위치한 교회 첨탑에 걸린 십자가가 보였다. 제이어릴 적 엄마의 목에 걸려 있던 목걸이 액세서리처럼 보이는 십자가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언제까지 이곳에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죽었다가 다시 태어날 수는 없을까. 나는 정말로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고 싶어. 진짜로 다시 태어나서 다른 존재로 살아가고 싶어. 제이는 생각했다. 그는 걸어가며 계속 사유를 했고 그의 사유는 점점 증폭되어 갔다. 그러다가 문득 제이의 뇌리로 어떠한 장면이 떠올랐다. 이와 동시에 그의 입가로 거짓말처럼 미소가 피어올랐다. 건호는 느닷없이 긍정적으로 변한 그의 분위기가 궁금했다. "뭐야, 뜬금없이 웃어...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냐?" 건호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제이는 어슴푸레한 미소를 머금은 채 턱을 내밀어 첨탑을 가리켰다. 건호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미친놈... 대체 뭘 보라는 거야?"

건호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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