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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Jang Dec 05. 2024

링컨 애비뉴 주유소 (2/4)

2.

오 분전 두 시가 되자 두 번째 시프트인 리사가 도착했다. 리사는 삼십 대 중반에 주근깨가 콧잔등에 잔뜩 뿌려진 백인 여자였다. 앤디가 일할 때 입는 초록색 BP 조끼를 벗고 회색 후드집업을 입었다. "Don't work too hard, Lisa." Andy said, grinning. "I won't. Have a nice day sweetheart!" Lisa said lively.

"You too!" Andy said as he walked out of the station. 거대한 검은 기둥인 시어스 타워가 멀리 보였다. 저런 고층건물들 때문에라도 시카고 하늘이 주저 않는 일은 없을 거야 (앤디의 인테리어 모놀로그). 그는 닛산 센트라를 몰고 당구장으로 향했다. 종성과 만나기로 한 약속시간까지는 아직 한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의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크게 났다. 앤디가 브린마 길에 있는 파파이스에 차를 세웠다.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선 그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는데, 그 이유는 일하는 종업원들 모두가 흑인이었기 때문이다. 매콤한 양념 입자가 스며든 허공 속에서 검은손들이 왔다 갔다 했다. 카운터에 서있던 휘트니 휴스턴을 닮은 흑인 여자가 주문을 받았다.

"Let me have combo three please," 메뉴를 정한 앤디가 말했다.

"What would you like to drink?" 종업원이 모니터 버튼을 누르며 물었다. "Pepsi, please."

음식이 놓인 플라스틱 쟁반을 들고 앤디는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밖을 내다보는데 그야말로 느닷없이 비가 떨어졌다. 보슬보슬 내리던 비는 그가 닭다리 하나와 치킨봉을 다 먹었을 무렵 장대비로 돌변했고 그가 가슴살과 치킨윙을 끝냈을 때 장대비는 어느새 폭우로 성장했다. 성난 비건이 휘두르는 채찍 같은 빗줄기가 식당 지붕을 때렸다.

빗속을 뚫고 앤디는 당구장 앞에 도착했다.

당구장. 바이올렛 네온 간판의 치 자에 불이 꺼져있어서 마치 까 당구장처럼 보였다. 앤디가 당구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니 종성은 벌써 도착해 혼자서 연습 당구를 치고 있었다. 머리에 달고 들어온 빗방울을 앤디가 손으로 털어내며 말했다. "요즘 날씨가 너처럼 정상이 아니다."

종성이 피식 웃으며 큐대로 빠르고 강하게 흰 공을 때렸다. 삐익, 하고 당구를 치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아는 그 소리가 들렸다. "삑사리로구나." 앤디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종성은 담담한 표정으로 초크로 큐대 끝을 문지르며 말했다.

"치다 보면 삑사리도 나고 그런 거지. 고수는 작은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 "고수 같은 소리 하네, 누가 들으면 500은 치는 줄 알겠다. 50 치는 녀석이." 큐대 밑 부분을 바닥에 두드리며 앤디는 말했다. "인천 서구 출신 짠 50을 자극하지 마라." 종성이 킥킥대며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오늘 종착역하고 몇 곡 정도 연습하지?" "착역도 하고 라디오헤드 노래도 몇 개 하고, 최소한 여섯 곡은 하겠지." 앤디가 당구공을 시작점에 놓으며 대답했다. 최근 몇 주 동안 "윈디시티 파리" 카피곡과 그들의 자작곡인 '종착역 없는 기차'를 연습했다. 종착역 없는 기차는 록 발라드였는데 작곡은 경훈이 했고, 가사는 앤디가 붙였다.


난 지금 기차를 탔어요 그렇지만

어디를 가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건 아마 그대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난 지금 기차를 탔어요 그렇지만

누구를 만나러 가는지 모르겠어요

아마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그대여 나를 바라봐 주세요

나는 당신이 필요해요

그대여 나를 바라봐 주세요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이곳에서 우린 꿈을 꿀 수 없어요.

함께 이곳을 떠나요. 아무런 미련 없이.

함께 이곳을 떠나요. 아무런 후회 없이.

우리가 꿈꾸세상이 우리 앞에 펼쳐져 있을 테니

제발 우리 함께 이곳을 떠나요 제발 제발


종성이 백구 밑쪽을 후려쳐 백스핀을 넣었다. 백구가 적구를 맞추고 또 다른 적구를 향해 빠르게 역회전을 했다. 그의 실력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부쩍 향상됐다. "나 원 참, 당구장에 돈 좀 갖다 뿌렸나 본데." 앤디의 짙은 눈썹이 천장으로 치솟았다. 종성이 연달아 다섯 번을 성공시킨 뒤 쓰리쿠션으로 돌입했다. 적구 두 개가 코너에 몰려 있었다. 그가 때린 백구가 벽을 세 번 부딪힌 다음 구석에 있는 공에 붉게 키스했다. 게임 오버.

앤디는 기회다운 기회조차 잡지 못하고 허무하게 패배했다. "인마, 너 그렇게 치는 데 오십이 아니라 백은 놔야 하는 거 아니냐, 나도 백인데!" 앤디는 종성의 당구 점수에 불만을 강하게 표출했다. 그렇게 억울하면 한 게임 더 치자며 종성이 앤디를 도발했다. 앤디는 종성이 백을 놓으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하나마나라고 말했다. 몇 분의 실랑이 끝에 종성이 십을 놓는 것으로 합의했다. 주인아줌마가 구론산 두 병을 당구대 옆 작은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종성 총각, 요즘 들어 당구에 열심인 모습이 참말로 아름다워 보여." 주인아줌마가 흐뭇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감사합니다, 라며 종성이 고개를 숙였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인가 하는 생각이 들자 앤디는 왠지 이번에도 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의 불길한 예감은 이십 분이 안돼 현실로 드러났다.

종료 버튼을 누른 후 종성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화장실에 들어갔다. 앤디는 입술이 잔뜩 나온 채 지갑에서 돈을 꺼냈다. 투덜거리는 그를 보고 주인아줌마가 말했다. "열정의 차이가 곧 실력의 차이일 수 있어요. 열정은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 만큼 까치 당구장 정식멤버가 되면 종성 총각을 이길 수 있다고 봐요."

앤디는 진지하게 생각해 보겠다며 그녀의 제안에 대응했다. 도시를 차게 때리던 비는 이제 그쳤다. 종성은 그의 차를 당구장 주차장에 남겨둔 채(까치 당구장 회원은 주차장도 무료 사용할 수 있었다) 앤디의 차에 올랐다. 종성이 조수석 창문을 열며 카멜을 꺼내 물었다.

"담배가 바뀌었네?" 앤디가 운전석 윈도를 내리며 물었다.

"이것저것 다양하게 피워보고 싶어서.”

종성이 지포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독한 담배 냄새가 앤디의 후각중추를 훅하고 자극했다. 앤디가 CD를 꺼내 자동차 시디플레이어에 넣었다. 라디오헤드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우중에서 잠자던 시카고는 하나 둘 가로등을 켜며 눈을 떴다. 인터스테이트 90을 타고 다운타운을 향해 질주했다. BUDWEISER. 맥주회사의 네온 불빛이 앤디의 눈동자를 붉게 물들였다. 앤디는 오하이오 엑시트를 쏜살같이 빠져나갔다. 그리고 디어본 길에서 그는 좌회전을 했다. 프랑스 삼색 국기와 함께 알리앙스 프랑세즈 시카고가 보였다. 로버트 마는 두 눈을 감은 채 연습곡 중 하나인 라디오헤드의 "No Surprises"의 가사를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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