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사무실 그리고 고민

2025년 5월 23일 위원장 일지 - 동지들의 마음

by 기록하는노동자

※매주 토요일 발행되는 '버티는 중입니다 위원장의 비밀일기' 최근 사건에 대한 일기입니다.


다시 전국을 돌기 시작했다

지난 월요일(5/19)부터 오늘(5/23)까지,
노동조합이 단체협약 체결 이후 처음으로 이동사무실을 운영한 한 주였다.

처음 부당해고를 당하고 전국 공장을 돌았을 땐,
회사 출입이 막혀서 출근길이나 점심시간에 공장 입구에서
해고의 부당함을 알리는 입장문을 나눠주고, 간단한 간식도 전달했었다.

2023년 9월 25일부터 10월 31일까지,
동서울, 수원, 지구레미콘, 남부산업, 송도, 서서울, 서인천,
김해, 나주, K광주, 군산, 세종, 천안, 당진, 인천, 수지, 광주, 안산,
평택, 안성, 부천, 강서, 동두천, 남양주, 춘천까지
총 25개 사업장을 돌았다.


그때 생각했다. 언젠가는 전국에 있는 조합원 동지들을 조금 더 편하게, 자주 만날 수 있어야겠다고.
몸이 고되더라도 분기 한 번, 혹은 반기 한 번이라도
전국을 순회하면서 얼굴을 보고 인사하는 시간을 만들자고 마음먹었다.
그게 바로 ‘이동사무실’의 시작이었다.

지난 월요일(5/19)부터 오늘(5/23)까지

노동조합이 단체협약 체결 후 처음으로 이동사무실을 운영했던 주간이었다.

노동조합이 설립된지 약 1,000일 정도가 지나서야 시작된 제대로 된 노동조합 활동이다.


점심시간 1시간의 한계를 넘어서

그리고 2024년 3월, 여러 방법을 동원한 끝에 점심시간 1시간에 한해서 사업장 출입이 허용됐다.
그렇게 반기에 한 번 이동사무실을 하긴 했지만,
점심시간이라는 한계 때문에 조합원 일부밖에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드디어, 2025년 5월. 공장 입구에서 식당까지 가는 데 1년,
식당에서 사업장 전체를 둘러보는 데 또 1년이 걸려 이제서야 제대로 된 이동사무실이 가능해졌다.

미리 준비해둔 조합원 선물인 우산과 노동조합 홍보용 노트를 챙겨 들고,
월요일엔 강서, 화요일엔 부천, 수요일 인천, 목요일 서인천, 금요일엔 송도공장을 돌았다.

물론 회사는 여전히 ‘시업시간 전’ 출입은 절대 허용할 수 없다고 했다.
이유는 늘 똑같다. 보안과 안전.
짐이 많아 사업장 안에 잠깐 주차만이라도 할 수 있게 해달란 요구도 거절됐다.
내가 예전처럼 “법이 어떻고” 따졌으면 싸움으로 번졌을 테니,
이번엔 그냥 알겠다고 하고 말았다. 그리고 묵묵히 돌았다.

시업시간과 동시에 공장에 들어가 사무실, 시험실, 출하실 등을 돌며

조합원과 비조합원 모두에게 인사를 건넸다.
홍보물도 함께 나눠줬다. 우산은 조합원에게만 드렸다.
자격 정지 상태인 조합원이나 비조합원에게까지 나눠줄 수는 없었다.
혹시라도 치사해 보였을까 걱정되긴 했지만, 조합비로 준비한 선물인 만큼 그 기준은 지킬 수밖에 없었다.


조합원들의 일터는 여전히…

공장을 돌다 보면 정말 일하기 열악한 환경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치워도 분진은 계속 날리고, 비라도 오면 바닥엔 물이 차올라 보트라도 띄울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옷엔 공구리 물이 튀어 얼룩이 지고, 샤워시설이 제대로 갖춰진 곳도 많지 않다.
결국 대충 씻고, 집에 가서 다시 씻어야 한다.

오래된 공장은 더 심하다. 비만 오면 사무실 여기저기에서 물이 샌다.
설비 투자는 이뤄지지만, 근무공간 개선은 늘 후순위다.
심지어 어떤 공장 화장실은 차마 사용하고 싶지 않을 정도다.
나도 영업할 때는 정말 급한 상황 아니면 외부에서 해결하곤 했다.
그 화장실, 2010년 입사 때부터 지금까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복직, 그리고 그 끝은 어디인가

공장을 돌면 동지들이 꼭 묻는다. “위원장, 복직은 언제 돼요?”

그럴 때마다 난 말한다. “무조건 돌아간다. 지금은 행정소송 중이고, 6월 26일에 1심 판결이 나온다”고.

선고가 나면 바로 복직되는 줄 아는 사람도 있고,
법을 좀 아는 사람은 “대법원까지 가야겠네” 하고 말한다.
노동위원회에서 두 번이나 ‘부당해고’라고 판정이 나왔는데,
왜 또다시 행정법원–고등법원–대법원까지 가야 하는 건지 나도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


연대와 정치 사이에서

조합원들의 고충은 참 다양하다. 바라는 것도 많고, 바꿔야 할 점도 많다.
그런데 지금은 조합의 교섭력이 약하다. 건설경기 침체 속에 모두가 움츠려 있다.
한마음으로 뭉쳐야 회사도 움직일 텐데, 지금은 그게 참 어렵다.

그래서 연대의 힘을 빌리고 있다. 화학연맹, 한국노총, 언론, 정치권 등 조합 바깥의 힘을 끌어모으고 있다.

그런 내 활동이 회사에겐 못마땅한 모양이다. “정치하려고 노조 만들었다”는 소문까지 나왔으니.

노동조합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노동조합의 연대활동까지 정치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엔 여전히 고민이 많다.
내가 개인의 정치적 성향을 조합에 강요한 적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
하지만 지금 이 사회는, 특히 대한민국은 너무나도 정치적으로 양극화되어 있다.


나는 지금껏 정치권을 우리 이야기를 사회에 알릴 수 있는 채널,
노조법을 바꿀 수 있는 입법 파트너라 생각해 왔다.

그런데 어제, 그 생각이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정치적 성향은 다르지만 노조를 지지해줬던 한 조합원이 특정 대권후보 지지를 이유로
노조를 지지할 수 없다고 말했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날 이후, 고민이 점점 깊어진다. 생각이 많아지면 몸도 피로해진다. 머릿속이 어질어질했다.


그래도 난 또 길을 찾을 거다. 그 길이 맞는 길인지 틀린 길인지는 모르겠지만,
혼쭐도 나고 되돌아오기도 하겠지만,

결국엔 그 길 끝에서 우리 조합을 위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여 본다.

KakaoTalk_20250526_000118618.jpg 유진기업 노동조합 이동사무실 첫날 오전 8시, 시업시간을 기다리는 부위원장님의 모습


이 기록은 단지 나의 하루가 아니라, 수많은 노동자의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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