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21일 위원장 일지 - 임시교섭의 하루
※매주 목요일 발행되는 '버티는 중입니다 위원장의 비밀일기' 과거 사건에 대한 회상일기입니다.
2023년 3월 21일은 단체교섭과 관련하여 2023년 3월 20일 중앙노동위원회 조정회의를 한 후 22일 조정회의를 앞두고 중앙노동위원회 권고에 따라 임시교섭을 실시한 날입니다.
새벽 알람이 울렸다.
어제는 연차를 내고 세종에 있는 중앙노동위원회를 다녀왔다.
장거리 운전은 언제나 익숙해지지 않는다. 몸이 무거웠다.
오늘은 오전 반차를 내고 서울남부지청에 가기로 했다.
아침부터 쏟아지는 고객들 전화, 물량 요청, 공급 부족 공지들…
반차를 낸 상황이었지만, 현장은 여전히 조용할 틈이 없었다.
동지들에게 미안한 마음은 여전했지만, 나는 조합의 대표로서 할 일을 선택했다.
반차를 내고 조합업무를 본다
약속된 시간에 노무사님과 만나 서울남부지청으로 향했다.
일을 했으면 받아야 할 임금, 그 당연한 권리가 지켜지지 않고 있어 마음이 복잡했다.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긴 어렵지만, 준비해야 할 자료가 부쩍 많아졌다.
회사 측과 대화로 풀고자 노력해왔지만, 분위기와 대응 양상은 점점 선을 넘고 있었다.
서울남부지청을 나와, 회사의 노무 담당자인 DX팀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어제 중앙노동위원회에서 권고한 사항을 회사가 수용할 의사가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금일 17시, 부천에서 임시교섭을 하자”는 답신이 도착했다.
‘혹시나’ 하는 기대가 스쳤다.
하지만 스스로 다짐했다. 기대는 기대일뿐이다.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기까지
오후에는 다시 현장으로 복귀해 고객 응대에 매달렸다.
양해를 구하고, 사과하고, 설명하고… 반복되는 피로에 마음이 점점 무거워졌다.
17시가 되어 퇴근 후 교섭장으로 향했다.
회사 측 교섭위원은 정체로 인해 20~30분 늦는다는 연락을 보냈다.
급하게 연락드렸는데도 흔쾌히 함께해 주신 노무사님과 사무국장님께는 지금도 감사한 마음이다.
결국 17시 30분부터 임시교섭이 시작됐다.
그리고 곧 ‘혹시나’는 ‘역시나’로 바뀌었다.
회사는 단 한마디의 입장 변화도 없었다. 교섭위원들의 태도는 여전히 확고했고,
설명이나 이해가 아닌, 통보에 가까운 말들만 오갔다.
닮은 말투, 불편한 장면
교섭이 이어지는 동안, 이상한 기시감이 들었다.
오랜만에 참석한 한 교섭위원의 말투와 발언 방식이 유독 익숙했다.
회의를 주도하는 태도, 말을 고르는 방식,
심지어 표현의 억양까지도...
처음부터 회사 측 자문을 맡아온 한 전문가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단순한 우연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 장면이 머릿속에 오래 남았다.
혹시 지금 이 분쟁의 시작이, 전문가로부터 비롯된 건 아닐까.
문득 스치는 생각에 마음이 복잡해졌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감정의 흐름일 뿐이다.
순간 교섭의 집중력을 잃었다. 다시 교섭에 집중한다.
지금은 상상을 멈추고, 조합의 내일을 준비할 시간이라는 걸.
믿음이 무너진 자리에 남은 다짐
임시교섭은 입장차만 확인한 채 마무리됐다.
식사 제안도 뒤로하고, 나는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조합홈페이지에 결과보고서를 작성하고 오늘 하루를 돌아봤다.
처음엔 회사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경영을 하는 줄로 알았다.
그러나 점점 드러나는 대응을 보며, 그 믿음은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단체행동권, 상급단체 가입, 다양한 대응 수단들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대화와 상생을 기대했지만,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까.
나는 조합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택을 해야 한다.
우선 내일 있을 조정회의 준비부터, 착실히 하자.
내일은 더 나은 교섭이 아니라, 더 단단한 마음으로 맞이해야 할 싸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오늘처럼 버티면, 내일은 분명 조금은 더 나을 것이다.
이 기록은 단지 나의 하루가 아니라, 수많은 노동자의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