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4일 위원장 일지 - 부당해고 맞다잖아요!
※매주 목요일 발행되는 '버티는 중입니다 위원장의 비밀일기' 과거 사건에 대한 회상일기입니다.
어제 천안공장으로 향하다가 고속도로에서 후방추돌을 당했다.
아침부터 삐걱거리는 몸을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근처 병원에서 침을 맞고 세종공장 이동사무실을 열러 출발했다.
해고자라며 공장에 출입도 막더니, 고용노동부에 항의하고 법적 권리를 주장한 끝에
지난달부터 점심 휴게시간에 식당 안에서만 조합원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식당에서의 짧은 조우
세종공장에서 만난 조합원 동지들은 한결같이 걱정이 앞섰다.
“언제 복직하냐?”, “회사는 왜 그러는 거냐?”
나는 웃으며 “괜찮아요, 회사가 상식적이라면 복직하겠죠”라는 말만 반복했다.
인력 부족 이야기에도, 회사는 ‘인당생산성’이라는 말도 안 되는 잣대만 들이댔다.
현실을 알면서도 인력 충원은 어렵다는 답만 반복하는 회사에 다들 답답함을 표했다.
그 말에 나는 고개만 끄덕이며 고충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따뜻한 손, 굳은 마음
내가 오늘 중앙노동위원회에 간다고 하자,
“꼭 잘 될 거예요”라며 손을 잡아주던 동지들.
그 따뜻한 손길에, 사고로 욱신거리던 몸도, 마음의 고단함도 잠시 사라졌다.
1,000쪽 서류와 등대
오후 3시경, 노무사님들과 만나 마지막 점검을 했다.
이유서와 답변서만 해도 천 페이지.
그걸 꼼꼼히 읽고 조목조목 반박해주신 센트럴노무법인 노무사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동지들이 내 든든한 버팀목이라면, 센트럴노무법인은 방향을 밝혀주는 등대였다.
함께 중앙노동위원회를 찾은 것도 벌써 네 번째다.
연대는 뒤에서 조용히 서 있다
노동위원회에 갈 때마다 긴장된다.
지난해 12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 때는 회사가 사람을 정말 많이 데려왔다.
2년 전 퇴사한 계열사 직원, IT팀장, 홍보팀장까지…
노조 설립 이후 내가 문제라고 주장하는 모든 사람이 줄줄이 등장했다.
그 자리에 나 혼자 서 있었던 건 아니다.
화학연맹 서울본부의 위원장님들이 내 뒤를 든든히 지켜주고 있었다.
서울지방노동위엔 5분이, 대전까지는 의장님과 위원장님 두 분이 함께 와주셨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우리 노동조합을 향한 연대의 마음, 늘 가슴 깊이 새긴다.
초심결정은 부당해고
서울노동위는 내 해고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사규상 일부 징계사실은 인정하더라도, 해고에 이를 만큼 중하지 않다는 결론이었다.
직장 내 괴롭힘도 6건 중 1건만 일부 인정됐고, 그조차 업무상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중앙노동위원회에서도 같은 입장을 이어갔다.
홍보팀 근무 당시, 계열법인 제작물의 담당자였던 나는
후임자가 맡은 뒤에도 검수 마감일을 지원하고 있었고, 욕설이나 비방은 없었다.
그러나 계열사 직원의 불만은 모두 나의 ‘직장 내 괴롭힘’으로 포장되어 있었다.
당신이 한 말을, 내가 돌려준다
1시간여의 심문이 끝날 무렵,
회사 측 변호사는 마지막 발언에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
“자신의 권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만큼, 타인의 권리도 중요하게 생각하십시오.”
그 말,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그 변호사와 그 법무법인이 우리 노사관계를 이 지경으로 만든 주체라고 나는 생각한다.
분쟁이 길어질수록 수임료가 늘어날 거라는 의심도 해본다.
해당 법무법인을 검색해보면, 노사갈등이 깊었던 회사들마다 이름이 보인다.
"당신들이 노동자의 권리도,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하길 바랍니다."
나는 정말 매일 기도하고 있다.
서울 가는 길, 차를 멈추다
심문이 끝나고 저녁을 먹었다.
혼자 서울로 올라가는 길, 운전대를 제대로 잡을 수가 없었다.
당일 저녁에 문자로 결과만 통보되는 노동위원회의 시스템이
오늘만큼 원망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결국 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결과를 기다렸다.
부당해고 맞다잖아요
밤 8시,
[Web발신]
[중노위]중앙2024부해193/부노19 병합 유진기업 재심사건의 판정결과는 “초심유지”입니다.
문자 한 줄.
손이 떨리고, 억울함이 밀려왔다.
나에게 해고를 통보했던 그 인사위원회 구성원들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부당해고 맞다잖아요!”
오늘 하루도 살아냈다
바로 간부들과 결과를 공유했고,
노무사님, 연맹 위원장님, 서울본부 의장님과 위원장님들께 전화를 돌렸다.
흥분이 가시지 않아,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잠시,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오늘 하루, 나는 또 한 번 살아냈다.
이 기록은 단지 나의 하루가 아니라, 수많은 노동자의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