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어버이날, 말하지 못한 해고

2025년 5월 8일 위원장 일지 - 부당해고자의 두 번째 어버이날

by 기록하는노동자
말하지 못한 해고, 두 번째 어버이날

해고된 사실을 양가 부모님께 알리지 못했다.
그렇게 1년 8개월이 흘렀고, 두 번째 어버이날을 맞이했다.

올해는 꽃바구니와 함께 “아버지, 어머니 존경하고 사랑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부당해고자의 어버이날은 더욱 조심스럽다.

괜시리 더 죄송스럽고, 아내에게도 더욱 미안한 시기.
당당하지 못한 스스로에게 주눅이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노동조합의 하루는 계속 쌓여간다.

퇴사하는 조합원의 전화

퇴근 무렵, 오늘까지 근무하고 퇴사한다는 조합원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노동조합의 첫 시작을 함께한 동지였다.

진급 누락에도 “버텨보겠다”던 동지였지만, 결국 실적 압박을 견디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크다.

그리고 다짐한다. 더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기도만 하지 않겠다.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대안을 찾아 나서야 한다.


근로시간면제 4시간을 쓰기도 힘든 현실

오후엔 화학연맹 사무실에서 복지증진 관련 협약 업무를 보고,
노동조합 월례회의 일정을 조율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단체협약을 통해 어렵게 얻어낸 근로시간면제 4시간조차 제대로 사용하기 힘든 상황이다.

건설경기 침체로 실적 압박은 더 심해졌고,
간부들 대부분은 현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 4시간 자리를 비우는 일은 곧바로 동료들에게 부담이 된다.

서로를 배려하다 보니, 결국 아무도 쉽게 근로시간면제를 쓰지 못한다.


회사는 여전히 ‘인당 생산성’이라는 말로
매출을 인원수로 나누며 모든 걸 수치로 판단한다.
하지만 퇴사자는 늘고, 인력은 부족하다.

현장의 고충을 수차례 전달해도 신규 채용은 이뤄지지 않는다.

이 숫자놀음이, 과연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가?


지난 2년 7개월간, 아무런 면제도 없이 매주 화요일 저녁마다 회의해온 간부들의 헌신이 떠오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제야 얻은 4시간조차 동료를 생각해 마음 놓고 쓰지 못하는 현실.
노동조합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배려와 책임 사이에서, 우리는 오늘도 조심스럽게 싸우고 있다.



곧 떠나야 할 연맹 사무실

화학연맹은 내일부터 전국 순회 일정으로 바빠진다.
그동안 나는 주 2~3회 연맹 사무실에 출근하며 많은 도움을 받았다.

부당해고된 나를 위해 연맹사무실에 자리를 선뜻 내어준 황인석 화학연맹 위원장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그리고 언제나 따뜻하게 맞아주신 연맹 사무처 동지들께도 진심 어린 고마움을 전한다.

점심을 함께 먹고, 계절이 바뀔 때면 산책도 함께했던 동지들.
그들의 응원과 배려 덕분에, 힘든 현실 속에서도 웃을 수 있었고, 버틸 수 있었다.


이제 단체협약에 따라 회사가 부천 내에 노동조합 사무실을 제공하게 된다면,

1년 8개월 동안 신세를 졌던 이곳을 떠나 우리의 공간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 날을 기다리며,

한편으론 익숙해진 이 공간과 사람들을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도 함께 느껴진다.

설렘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이 기분.
새로운 출발이 머지않았음을 알리는 신호 같기도 하다.



조합원과 점심, 그리고 다시 생각한 기초

점심엔 조합원과 식사를 함께하고,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단체협약이 어떤 의미인지, 노동조합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설명했다.

조합원마다 이해하는 수준과 관심의 결이 달랐다.
그래서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자료집을 만들고 있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2년 8개월이나 노동조합을 운영했지만, 아직도 부족하다.
급하게 하기보단, 차근차근 기초부터 다시 다져야겠다.


쉬운 글은 어렵다

오전엔 조합원 교육자료를 위해 다시 검색을 시작했다.
‘노동조합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글로 적다 보면 내용은 자꾸만 무거워진다.

짧고 쉬운 문장을 만드는 일이 이토록 어려운 줄 몰랐다.
그냥 쓰는 것과 쉽게 읽히는 글을 쓰는 건 전혀 다른 일이다.

과연 나는 언제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을까?


5월 중순 이후 사업장을 방문할 때 배포할 자료인데
시간은 부족하고 마음만 자꾸 급해진다.

‘쉬운 글’을 쓰기 위해 이토록 치열하게 고민하게 될 줄은 예전엔 상상도 못했다.

KakaoTalk_20250509_145548003.png 부족한 내용이지만 어렵게 완성한 노트형 노동조합 교육자료



다시 지켜야 할 루틴

오늘은 새벽에 평소보다 1시간 늦게 일어났다. 어젯밤, 늦게까지 글을 쓰다 잠든 탓이다.

다시 루틴을 지켜야겠다고 다짐했다.

밤 11시 취침, 오전 5시 40분 기상, 그리고 운동.

작은 규칙이 흔들리면 하루 전체가 흐트러진다.

나를 지키기 위한 습관, 다시 지켜야 할 시간이다.


나는 오늘, 치열했는가

오늘 하루, 나는 정말 치열하게 살았는가?

이 질문을 잠자리에서 스스로에게 다시 던져본다.

그리고 또 하루를 살아갈 열정을 조용히 채워본다.

KakaoTalk_20250508_231911247.jpg 1년 8개월째 사용중인 화학연맹 사무실 전경
이 기록은 단지 나의 하루가 아니라, 수많은 노동자의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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