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의 하루, 해고자의 하루, 나의 하루

2025년 5월 7일 위원장 일지 - 하루가 쌓여, 내가 된다

by 기록하는노동자

5월 3일 토요일부터 6일 대체공휴일까지, 4일간의 긴 연휴가 끝났다.


본사 직원들은 5월 1일 노동절에 이어, 5월 2일 연차 사용을 권장(?)받았지만, 사업장은 쉬지 않고 돌아갔다.

건설경기 침체로 회사는 공식적인 휴무 외에는 대부분 가동을 멈추지 않는다.


나는 해고된 직원이자 유진기업 노동조합의 위원장이다.

해고된 뒤로 휴일에서 업무일로 바뀌는 날이 늘 두렵고 힘겹다.

동지들이 있는 회사로 갈 수 없는 현실은 늘 나를 괴롭힌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겠지만, 우리 노동조합은 설립 955일 만에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화학연맹이 교섭을 위임받은 지 1년 5개월만의 일이다.

교섭의 지난한 여정은 따로 정리해보려 한다. 오늘은, 오늘의 일기를 남긴다.


아침

새벽 5시 40분쯤 기상. 뉴스를 검색하고 이슈를 확인한다.

6일에(어린이날은 피했다) 가족과 함께 에버랜드에서 2만 보를 걸었기에 오늘은 운동을 쉬었다.

(화~금 매일 새벽에 1시간씩 뛰는 것이 내 루틴이자 목표인데, 이상하게 살은 빠지지 않는다. 그냥 ‘건강한 돼지’가 되기로 했다.)

아침부터 정신이 없었다.

부당노동행위로 회사가 고등법원에 항소한 두 사건의 서면을 법무법인 오월에서 연휴 전 전달받았고, 오늘은 그 대응을 위해 통화해야 했다.

또한 5월 15일에는 회사가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취하하라는 소송을 제기한 4차 변론기일을 진행하는 상황이라 변호사와 긴 통화가 이어졌다.

통화를 마치고 잠시 멍해졌다.

전문가의 영역은 언제나 어렵고 벅차다.

이 법정 싸움은 도대체 언제 끝날까... 지치는 마음이 잠시 스쳤다.

그래도 커피 한 잔으로 에너지를 충전하며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오후

단체협약 체결 이후 노동조합 사무실을 인천 계양에서 정리했고, 당분간은 집과 화학연맹 사무실을 오가며 일한다.

오늘은 집에서 연락을 받고 서류 정리를 했다.

점심 이후, 구로구청으로 향했다.

오후 2시에 차인표 작가의 명사특강이 있었다.

해고된 상태에서 시간을 다소 유연하게 쓸 수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한 이점이다.

8시~17시 근무시간을 최대한 지키려 하지만, 이 강연은 4월부터 신청해 기다려온 자리였다.

강연 주제는 “당신에게 하루는 어떤 의미인가요?”

차인표 작가는 말했다.

"하루는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쌓인다. 그 쌓인 하루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는 매일 읽고, 쓰고, 운동했다고 했다.

처음에는 적게 여러 번 하던 푸시업도 나중엔 50개씩 300번 가능해졌다고.

그렇게 쌓아 올린 하루하루가 장편소설을 쓸 수 있는 힘이 되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며 나 역시 지난 2년 8개월간 썼다 지운 글 조각들이 떠올랐다.

어딘가에 나의 아니 우리의 글을 남겨야겠다고 결심했다.

노동조합을 만든 지난 시간은 그 자체로 나를 만든 하루하루였고, 지금 내가 버틸 수 있는 원동력임을 새삼 느꼈다.


저녁

조합원에게 문자가 왔다.

4월 30일 활동보고 문자를 늦게 본 모양이었다.


“위원장님 늦었지만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위원장님과 간부, 대의원 동지들 덕분입니다.
공정팀과 타 부서 간의 임금 격차가 너무 큽니다.
10년 차 기장이 2년 차 계장보다 연봉이 적습니다.
부서 간 형평성 문제, 이번 임금교섭에서 꼭 고려해주셨으면 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위원장님 뒤에 저희가 있습니다.”


이 내용을 간부들과 공유하며,

“모든 조합원이 이런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방법을 찾겠다”고 답했다.

조합원은 현재 270여 명.

한때 403명까지 치솟았던 조합원 수는 회사의 흔들기와 탈퇴 유도, 과도한 업무로 인한 퇴사 등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남은 동지들은 강하게 결속하고 있다.

조합원이 곧 노동조합이고, 노동조합이 곧 조합원이다.

이 당연한 사실을 어떻게 더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골똘히 고민했다.

늦은 밤까지 고민은 계속된다.

그렇게 하루를 또 살아낸다.

오늘을 버텨냈기에, 나는 내일도 하루를 부여받는다.

쌓여가는 하루, 하루.

그것이 나에게 또 다른 해법을 제시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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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록은 단지 나의 하루가 아니라, 수많은 노동자의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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