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0일 위원장 일지 -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노동조합 위원장이 법정에 선다는 건,
노사 간 대화의 끈이 완전히 끊겼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법대로 하자”고.
하지만 나는 2년 넘게 회사를 상대로 싸우며 깨달았다.
‘법대로 하자’는 말이 때로는 가장 잔인할 수 있다는 것을.
법은 있지만, 처벌은 없다
30인 이상 사업장은 노사협의회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속칭 ‘근참법’, 정식 명칭은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이다.
2022년 10월, 노조 설립 초기.
단체교섭이 지지부진하자, 우리는 우회로를 택했다.
과반노조임을 근거로 노사협의회 개최를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회사는 말했다. “과반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
노동조합의 근로자위원 선출 권한 역시 부정했다.
실제로 회사는 과반노조 확인은 조합원 일대일 대면확인만 가능하다고 했다.
노동조합이 제시하는 5~6개의 대안은 일방적으로 무시했다.
결국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넣었고, 돌아온 답변은 이랬다.
“귀사에는 지금까지 노사협의회가 단 한 번도 설치된 적이 없습니다.”
“노사협의회 미설치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어 과태료도 부과할 수 없습니다.”
법을 어겼지만, 아무 일도 없다.
왜냐하면 벌칙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노사협의회가 "운영되고는 있다."
하지만 그건 껍데기뿐이다.
과반노조로 인정받지 못한 우리는 결국 간부가 직접 근로자위원으로 출마해 참여하고 있다.
그렇게라도 목소리를 내야 하기에, 법이 보장하지 않는 길을 우리가 스스로 만들고 있는 셈이다.
법대로 하지 않아도, '법대로'입니다
회사는 항상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법과 원칙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법을 지키지 않아도, 처벌이 없으니 그 또한 ‘법대로’인 셈이기 때문이다.
법으로 이겨도,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2023년, 어렵게 노동위원회로부터 부당노동행위를 인정받았다.
근로감독관은 이를 근거로 회사를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그러나 검찰은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검찰항고를 했지만 기각됐다.
지금은 재정신청이 진행 중이지만, 인용률은 1% 미만이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게다가 회사는 노동위원회의 부당노동행위 판정을 취소해달라며 행정소송까지 제기했다.
2023년 7월에 시작된 그 소송은, 2024년 10월이 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해고도 ‘법대로’ 유지된다
2023년 9월, 나는 회사로부터 부당하게 해고당했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 모두 "부당해고"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회사는 복직을 시키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노동위원회의 법리 해석에 문제가 있다. 행정소송을 제기하겠다.”
그래서 오늘, 나는
오전엔 부당노동행위 취소소송 3차 변론을,
오후엔 부당해고 취소소송 1차 변론을 위해 출석했다.
법의 무력함 앞에서
오전 공판이 끝나고, 서울행정법원 앞 커피숍에 앉아 있다.
곰곰이 생각해본다.
대한민국 헌법은 노동3권과 근로권을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노동위원회의 판정조차 무력하게 만든다.
노동위원회의 복직명령은 2년 동안 최대 4회, 1회 3천만 원 이하의 이행강제금을 내면 버틸 수 있다.
행정소송이 길어져 그 기간이 지나면 어떠한 추가 제재도 없다.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구제명령은 행정소송을 하는동안 이행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노동위원회의 명령은 사실상 강제력이 없다.
또한 법은 행정소송이라는 길을 회사에 열어 놓고 있다.
그 길은 돈과 시간의 싸움이다.
수천억대 매출을 올리는 회사에게
과태료나 이행강제금은 그저 '감가상각'일 뿐이다.
그들은 돈만 내면, 버틸 수 있다.
그 시간 동안 무너지는 건 노동자다.
나는 나름 정신력이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수없이 무너졌고
그리고 지금도 무너지지 않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다.
나도 몰랐던 노동자의 세계
나는 노동자의 삶을 잘 몰랐다.
노동조합에 대해 이기적인 집단으로 생각하며 살아온 시간이 더 길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며 온몸을 불사른 선배 열사의 마음도,
폭력시위로 비춰지던 노동조합의 절박함도,
간부들이 세상을 등졌다는 비보도,
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 모든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되었다.
법대로 해도, 법대로 당한다
회사는 말한다. "법대로 하자."고.
하지만 내가 직접 찾아본 노동 관련 법률에서
법은 있지만, 어겨도 처벌받지 않는 조항만 10개가 넘었다.
근로기준법, 노조법, 근참법,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
고령자고용촉진법, 산업안전보건법, 노동위원회법…
하나같이 허점이 존재하고,
회사는 그 허점을 교묘히 현실에 적용하고 있다.
법을 지키지 않아도 처벌받지 않는 세상에서
회사는 당당하고,
노동자는 점점 지쳐간다.
피가 말라 쓰러지는 건 노동자이고,
버티다 무너지는 건 노동조합이다.
나는 아직도 법을 믿는다.
그 믿음이 지금의 나를 이 자리까지 버티게 만들었다.
하지만 때로는, 그 믿음 때문에 더 고통스럽다.
‘법대로’라는 말이 이토록 잔인할 줄은 몰랐다.
이 기록은 단지 나의 하루가 아니라, 수많은 노동자의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