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토하겠습니다”라는 말이 현장을 바꾸지 못하는 이유

2025년 7월 14일과 8월 11일 - 모두의광장 질문과 답변

by 기록하는노동자

※ 이번 목요일 발행되는 ‘버티는 중입니다 위원장의 비밀일기’는 현 정부의 국정기획위원회에서 '모두의 광장'을 통해 노동관련 제안을 올리고 답변을 받은 후 생각을 적습니다.

※ 순간이 개인의 생각이며, 분명 좋은 세상을 위해 노력하려는 분들의 노고를 폄하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형식적 답변에 너무 속상한 마음을 담았다는 것만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좋은 의견? 그런데 답변은 늘 똑같았다

7월 14일.
나는 국정기획위원회의 ‘모두의 광장’에 다섯 건의 제안을 올렸다.
노동자로, 노동조합 위원장으로, 그리고 부당해고를 당한 사람으로서
현장에서 피눈물로 겪은 문제들을 담았다.

그냥 ‘이거 고쳐주면 좋겠다’ 수준이 아니다.
이건 내가 지난 몇 년 동안 온몸으로 부딪혀서,
정말 제발 고쳐야 한다고 확신한 것들이다.

근로감독관 행정지도 실효성 강화,
부당해고 복직명령 불이행 제재,
신설노조 최소 권리 보장,
부당노동행위 처벌 실효성 강화,
단체·임금교섭 실질화.

다섯 가지 모두 결국 같은 이야기다.
헌법과 법이 보장한다고 써 있는 권리를, 실제로 쓸 수 있게 해 달라.
그 단순하고도 절박한 요구였다.

돌아온 건 ‘검토하겠습니다’ 패턴

8월 5일 1건의 답변과 8월 11일 한 번에 4건의 답변.

기대는 했지만, 솔직히 마음 한구석엔 “또 똑같겠지”라는 냉소도 있었다.
그리고 역시나… 답변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었다.

첫 줄은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그 다음은 ‘현행 제도 설명 → 노사 자율 강조 → 신중한 검토 필요’의 삼단 콤보.

- 이미 법에 규정돼 있다.

- 노사 자율이 우선이다.

- 형사법 체계와 충돌될 우려가 있다.

- 다양한 이해관계자 의견수렴이 필요하다.

그리고 마무리에는 반드시 들어가는 문장,
“소관 분과위에 통보하겠습니다.”

그 순간, 이 답변들이 얼마나 관성적으로 쓰이고 있는지 느껴졌다.
마치 자동응답기에서 튀어나온 문장 같았다.

현장은 이 답변으로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장은 이 답변들로는 단 한 뼘도 바뀌지 않는다.

부당해고 판정을 받아도 복직은커녕,
이행강제금 몇 번 내고 버티면 그만이다.
교섭 요구를 해도 “법과 원칙”만 읊으며 일정을 잡지 않는다.
신설노조는 단협 전까지 아무 권리도 보장받지 못한 채 버티다 지친다.

법이 있어도, 그 법을 지키게 만드는 힘이 없으면
노동자의 권리는 종이에 적힌 문장일 뿐이다.
그리고 그 종이를 들이밀며 웃는 건, 언제나 사용자다.
“그래, 네 권리는 거기 써 있잖아. 하지만 내가 안 해주면 그만이야.”

이렇게 버티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정부가 실질적인 개입을 하지 않고,
기껏해야 몇 번의 이행강제금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그 비용이 노동자를 복직시키는 것보다 싸면,
사용자는 ‘돈 내고 버틴다’는 선택을 한다.
그리고 그 비용을 ‘징벌’이 아니라 ‘경영 판단’으로 처리한다.

새로운 정부의 약속, 그리고 걱정

새로운 정부는 분명 ‘노동존중 사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솔직히 조금은 기대했다.
‘모두의 광장’이라는 이름도 좋았다.
국민이 직접 목소리를 내고, 정책으로 연결시키겠다는 취지라면
이보다 더 좋은 창구가 어디 있을까.

하지만 이번에 겪고 나니,
그곳이 정말 좋은 의견을 모아 정책에 반영하는 곳인지,
아니면 좋은 의견을 모아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주는 곳인지 의문이 들었다.

의례적이고 형식적인 답변이 이렇게 반복되는 걸 보면,
혹시 노동 분야는 새 정부의 우선순위에서 밀린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고개를 든다.
정말로 ‘노동존중 사회’를 만들 생각이 있다면,
이렇게는 안 된다.

실행과 책임의 시간

나는 이번 제안이 단순히 법 몇 조 바꾸자는 이야기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헌법이 보장한 권리를, 국가가 실제로 지켜내자는 요구였다.
노동위원회 판정이 종잇조각이 되지 않도록,
교섭 요구가 시간 끌기의 도구가 되지 않도록,
노조 설립이 권리 박탈의 출발점이 되지 않도록.

“검토하겠습니다”라는 말로는 현장은 변하지 않는다.
이제는 실행과 책임의 시간이 필요하다.
국가가 보장한다고 선언한 권리라면,
그 권리를 국가가 끝까지 지켜내야 한다.

그리고 그 약속을, 더 이상 미루지 말아야 한다.

모두의 광장 의견 하나하나 소중히 여기는 정부가 되길 소망한다.


모두의광장.jpg 모두의 광장에 올린 제안들 소관 분과위에 통보된 내용이 논의는 될까 걱정이다
이 기록은 단지 나의 하루가 아니라, 수많은 노동자의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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