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의 멈춤과 928일의 기록
928일의 여정
2022년 9월 27일, 우리는 첫 단체협약 체결을 위해 단체교섭 요구 공문을 발송했다.
그리고 상급단체인 전국화학노동조합연맹에 위임한 단체협약이 최종 체결된 날짜는 2025년 4월 11일.
날짜로 계산하면 2년 6개월 18일, 총 928일이 걸렸다.
그 사이 단체교섭은 세 번 멈췄다.
우리가 직접 교섭을 하다 멈춘 시기
상급단체 위임 절차를 위해 멈춘 시기
위임교섭 도중 멈춘 시기
각각의 멈춤에는 나름의 사건과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 멈춤, 내부 재정비와 전략 수정
2023년 5월 3일, 12번째 교섭을 마치고 우리는 교섭중단을 선언했다.
한 달간 진행했던 권리수호운동(준법근무·집단연차 사용)의 동력이 약해졌고,
당시 탈퇴한 조합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회사의 압박과 회유가 거셌다.
조합을 재정비할 필요성이 커졌다.
이 시기 우리는 상급단체에 가입했고, 미처 챙기지 못한 조합 운영 전반을 점검했다.
또한 수시근로감독 청원, 중노위 판결에 따른 사후대책 마련,
같은 연맹 소속 레미콘 업종 노동조합과의 연대 논의 등 할 일이 산적했다.
근로시간 면제가 없어 낮에는 업무보고, 밤에는 조합 활동이 이어졌고, 전체적으로 피로감이 쌓였다.
그렇게 우리는 약 2개월 16일간 교섭을 멈췄다.
이후 수정된 단체협약안을 완성했다.
최초 148개 조항에서 44개 조항으로 압축해 꼭 필요한 사항만 남겼다.
경영진 간담회를 제안했으나 거절당했고, 6월 말 회사에 수정안을 보내며 교섭 재개를 요구했다.
7월 19일 재개된 교섭에서 “과거는 잊고 새롭게 이야기해보자”고 했지만,
8월 17일 회사는 여전히 안건을 읽고 거절하는 태도만 반복했다.
9월 7일 교섭을 한 다음 날에 회사는 위원장을 부당해고했다.
그 후 9월 21일에도 위원장은 해고 상태로 교섭에 참석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10월 13일, 결국 교섭은 파행으로 끝났다.
총 17회(실무 4회, 임시 1회, 본교섭 12회)를 끝으로 우리는 직접 교섭을 포기했다.
신생노조의 한계였다.
회사가 합의하지 않으면 진척이 없었고, 형식적으로만 교섭을 이어가도 법적으로는 문제없었다.
두 번째 멈춤, 상급단체 위임
2023년 10월, 임시대의원대회에서 교섭을 상급단체에 위임하기로 의결했다.
11월 1일 위임 절차를 마쳤고, 2024년 1월 18일 다시 교섭이 시작됐다.
첫 번째 멈춤보다 보름 더 긴 3개월 5일의 공백이었다.
하지만 시작부터 삐걱였다.
상급단체 교섭위원들과 함께 교섭장에 들어갔지만, 회사 측은 내가 자리에 앉아 있는 걸 불편해했다.
결국 나는 자리를 비우고 밖으로 나왔다.
이후 회사는 상급단체에도 똑같은 지연 전략을 썼다.
2월 1일, 3월 7일에만 한 번씩 교섭이 열렸고, 진전 없는 상태에서 다시 멈췄다.
그 사이 나는 지노위·중노위에서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다.
세 번째 멈춤, 거리에서의 싸움
교섭이 공회전하는 동안 2024년 4월 22일부터 여의도에서 방송차를 동원한 집회를 시작했다.
4월 3회, 5월 7회, 6월 1회. 총 11번의 집회에서 부당해고 철회와 단체협약 조속 체결을 요구했다.
이후 연맹에서 “집회를 멈추고 교섭을 재개하자”는 연락이 왔다.
시끄럽게 하니 반응이 온 셈이었다.
여기서 꼭 한 가지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길거리에서 시끄럽게 집회를 하는 노동조합 중 상당수는
회사가 협의를 정상적으로 진행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거리로 내몰린 경우다.
잠시 불편하더라도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길 바란다.
그 관심이, 힘겹게 싸우는 노동조합에겐 정말 큰 힘이 된다.
그러나 교섭 재개는 한참 뒤인 8월 30일이었다.
거의 6개월 만의 재개였다.
그 후 2024년 8월, 9월, 11월, 12월, 그리고 2025년 1월~3월까지 월 1회, 총 10차수가 진행됐다.
마침표, 그러나 ‘을사늑약’
2025년 4월 11일, 우리는 첫 단체협약에 서명했다.
하지만 나는 이 협약을 ‘을사늑약’이라 부른다.
(마침 2025년이 을사년이다)
길고 지루했던 싸움 끝에 남은 것은, 우리가 원했던 이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교섭의 멈춤과 재개의 교훈
단체교섭을 멈추는 건 전략적으로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러나 다시 시작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우리는 스스로 멈췄다가 재개해봤고, 위임교섭에서도 멈췄다가 재개해봤다.
고용노동부는 “단체협약은 노사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회사가 합의하지 않고 시간만 끌어도 뾰족한 방법이 없다.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해도 지노위 3개월, 중노위 3개월, 그 뒤는 행정법원… 끝없는 싸움이다.
결국 돈과 인력이 많은 쪽이 유리하다.
제도 보완이 필요한 이유
신생노조가 단체협약 없이 오래 버티면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이 커진다.
그래서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
최소한의 근로시간 면제
체크오프(조합비 급여공제)
노조 사무실 제공
이 세 가지는 노동위원회나 고용노동부가 강제 지정해야 한다.
그래야 노동조합이 생존하고 건강하게 회사 경영진을 견제할 수 있다.
그날이 올 수 있도록, 나는 오늘도 기록하고, 그 기록을 알리기 위해 있는 힘껏 소리친다.
이 글은 기록되지 않으면 사라질 노동조합의 싸움에 대한 기록입니다.공정한 사회를 위한 모든 목소리와 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