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가 막힐 때,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
거리로 나선 이유
노동조합을 시작하고 근 3년간 거리에 나선 적은 크게 두 차례뿐이었다.
2023년 4월 13일 권리수호운동 기간 중 여의도 유진빌딩 앞에서의 1인 시위, 그리고 2024년 4월 22일부터 6월 4일까지 총 11회 진행된 방송시위가 전부였다.
솔직히 말해 나는 집회나 1인 시위를 좋아하지 않는다. 대화와 협의가 우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는 끝내 그 합리적 방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용노동부 역시 노사자율을 강조하지만, 한쪽이 일방적으로 거부하는데 어떻게 자율이 가능하겠는가.
결국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거리에 섰다. 드라마틱하게 상황이 바뀌지는 않더라도, 회사는 노동조합이 거리에서 외치는 그 자체를 부담스러워한다. 그리고 그 외침에 귀 기울여주는 단 한 사람의 시민, 단 한 명의 동지가 우리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
첫 경험, 2023년의 1인 시위
2023년 4월, 권리수호운동 기간에 나는 여의도 유진빌딩 앞에서 9시간 동안 1인 시위를 했다. 피켓에는 “경영진을 바로잡아 달라”는 절박한 문구를 적었다. 한 명의 조력자가 있었는데, 회사는 그가 근처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집시법 위반이라며 나를 신고했다.
그러나 현장에 나온 경찰은 집시법 위반이 아니라고 확인했고 시위는 무사히 마무리됐다. 지나가던 몇몇 시민의 짧은 응원은 큰 위로가 되었지만, 나는 그날 마음속으로 이렇게 다짐했다.
“다시는 거리에 서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방송시위의 시작, 2024년 봄
그러나 2024년 4월 4일,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 판정이 나왔음에도 회사는 묵묵부답이었다. 우리는 세상에 알려야 했다. 결국 연맹의 도움으로 방송차량을 빌려 집회를 준비했다.
연맹은 바로 회장실이 있는 유진빌딩 앞보다, 유진기업 본사가 있는 여의도 파크원 앞에서 먼저 시작할 것을 권했다. 대표이사와 COO가 있는 곳을 겨냥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판단이었다.
4월 22일,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방송차량의 발전기를 켰다. 목이 쉬도록 마이크로 외쳤다.
“유진기업은 즉각 복직을 이행하라!”
“단체협약을 조속히 체결하라!”
유튜브 라이브를 통해 조합원들에게도 현장을 알렸다. 하지만 1시간가량 말하다 보니 목이 금세 아파왔다. 절박함은 목소리를 쉬게 만들었고, 그 목소리가 내 현실을 증명했다.
반복과 확산, 파크원 7차례 방송시위
4월 25일 두 번째 집회에서는 AI로 사전 녹음한 대본을 틀며 음악을 곁들였다. 연대해온 위원장님들이 피켓을 들고 횡단보도에 서서 함께했다. 유튜브 라이브도 이어졌다.
그렇게 총 7차례의 방송시위가 파크원 앞에서 진행됐다. 회사의 반응은 단 하나, 집회 현장을 촬영하는 직원들을 보내는 것이었다. 오히려 직원들의 이동을 통제하고 1층에서 유도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5월 23일, 8번째 집회를 준비하던 날 회사가 중앙노동위 판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순간 나는 방향을 틀어 파크원 건너편, 유진빌딩 앞으로 향했다.
유진빌딩 앞, 다른 풍경
유진빌딩 앞 집회는 파크원과 달랐다. 건물 구조 때문에 동일한 음량에도 소음 측정치가 훨씬 크게 나왔다. 결국 볼륨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회사는 신속히 정문을 잠그고, 경비용역을 동원해 차량과 도구를 통제했다. 경찰은 더 자주 현장에 나왔고 제약사항도 늘어났다. 그러나 우리는 굴하지 않았다.
5월 27일에는 연맹과 다른 노동조합 간부들이 함께했고, 보도자료도 배포했다. 이어 5월 30일, 6월 4일까지 총 4회의 유진빌딩 앞 방송시위를 마쳤다.
그 무렵 연맹은 “교섭을 위해 당분간 방송시위를 멈추자”고 권고했다. 교섭 재개를 위해 우리는 방송시위를 중단했다.
거리에서 배운 것
방송시위를 통해 많은 것을 느꼈다.
노동조합이 거리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
차가운 시선과 따뜻한 응원이 교차하는 현장
소음으로 주변에 사과방송을 수차례 하면서도 줄일 수 없는 현실
“제발 대화 좀 하자”는 간절한 열망
그리고 끝내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회사
그럼에도 조합원들의 응원은 쏟아졌다. 현실적으로 집회에 나오기 힘든 조합원들이 영상과 메시지로 응원해주었고, 연대해준 상급단체와 다른 노동조합 위원장님들의 존재는 큰 힘이 되었다.
효과와 한계, 그리고 앞으로
사후평가를 해보면, 방송시위는 분명 효과가 있었다. 회사는 무관심한 척했지만, 시간이 길어질수록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특히 오너의 집무실 앞에서 벌어지는 집회는 전문경영진에게 치명적 부담이 된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대화와 교섭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행정기관의 진정은 그 다음이다. 거리 집회는 마지막 수단이다.
단체협약이 체결되고 임금교섭이 이어지는 지금도, 나는 교섭과 병행해 행정기관 진정을 준비하고 있다. 만약 회사가 끝내 성실교섭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다시 거리에 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마도 다음은, 날이 선선해질 무렵이 아닐까. 거리 집회는 생각보다 철저한 체력전이기 때문이다.
배운 것을 나누며, 연대를 약속하며
이번 방송시위를 통해 나는 집회가 어떻게 준비되고,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를 뼈저리게 배웠다.
피켓 제작, 집회차량 준비, 경찰과의 협의, 소음 문제 대응, 유튜브 생중계, 대본 사전 녹음까지 이 모든 것이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경험을 쌓으며 하나씩 몸에 밴 노하우가 되었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방송시위는 어떻게 하나요? 집회 준비는 어디서부터 해야 하나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A부터 Z까지 알려줄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알려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현장에 직접 나가 함께 피켓을 들고, 마이크를 잡고, 연대할 것이다.
노동조합은 혼자가 아니어야 버틸 수 있다. 내가 배운 경험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지키는 자산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이번 방송시위에서 얻은 또 하나의 확실한 깨달음이다.
이 글은 기록되지 않으면 사라질 노동조합의 싸움에 대한 기록입니다.공정한 사회를 위한 모든 목소리와 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