쌩뚱맞은 계엄령, 대통령 탄핵 그리고 단체협약

2년 넘게 정체된 교섭, 단 4개월 만에 급물살을 타다

by 기록하는노동자
정체된 교섭, 지쳐가는 간부회의

우리 노동조합은 단체협약 체결 전까지 2년 6개월 동안 매주 화요일 저녁 간부회의를 이어갔다.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인천의 작은 공유오피스에 모여 교섭 현황, 소송 대응, 조합원 결속 방안 등을 논의했다. 2023년 12월 3일 역시 저녁 7시에 모여 회의를 시작했고, 8시 30분이 넘어 회의를 마쳤다. 늘 그렇듯, 희망보다 피로가 더 큰 자리였다.

계엄 선포, 그리고 한겨울의 나비효과

집에 돌아와 씻고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사무국장이 단체방에 올린 기사를 보았다.

“지금 계엄이래요.”

가짜 뉴스인 줄 알았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그날 밤은 뜬눈으로 보냈다.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이 있었지만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 계엄이 불러올 파장이 어디까지일지 알 수 없었다.

탄핵 정국 속에서 급물살 탄 교섭

계엄, 계엄 해제,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지는 전국적 격랑 속에서, 위임교섭도 갑자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12월 말부터 회사와 노조는 서로의 마지노선을 주고받았다.

노조 : 조합 사무실 제공, 근로시간면제 2,500시간, 체크오프, 조합원 범위

회사 : 노조 요구보다 훨씬 낮은 조건

1월에는 부당노동행위 행정법원 판결도 나왔다. 회사가 제기한 사건은 원고패, 노조가 제기한 사건은 부분승. 법적 지형이 바뀌면서 교섭도 한 걸음씩 전진했다.

첨예한 쟁점, 근로시간 면제와 조합원 범위

2월이 끝날 무렵 대부분의 조항은 합의가 되었지만, 몇 가지 핵심은 남았다.

근로시간 면제 : 노조 3,000시간 vs 회사 1,000시간

조합 가입 범위 : 팀장급을 포함하자는 노조와, 배제하자는 회사의 팽팽한 대립

노조는 가입 범위를 지켜내기 위해 사무실 기자재나 협정근무자 등 많은 부분을 양보했지만 회사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탄핵 선고 30분 전의 전화

2025년 4월 4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선고를 앞둔 바로 그날. 선고 30분 전, 연맹에서 전화가 왔다.

“조합원 가입범위는 노조안으로, 나머지는 회사안으로 합의하자는 연락이 왔습니다.”

순간 믿기지 않았다. 현직 대통령의 탄핵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앞둔 시간, 우리 노조의 단체협약도 그렇게 막을 내렸다.

우연인가, 계산된 타협인가

돌이켜보면 지난 4개월은 2년 6개월의 정체를 단숨에 뒤집은 시기였다.
과연 이것이 탄핵 정국의 나비효과였을까?
아니면 상급단체의 꾸준한 압박이 시기와 맞아떨어진 결과였을까?

경영학에서 말하는 “위기관리 효과(Crisis Effect)”라는 개념이 있다.

대외 리스크가 커지면 조직은 내부 갈등을 조속히 정리하는 쪽으로 움직인다.

아마도 YTN 인수라는 이슈와 부담 속에서 회사는 정치적 불확실성을 덜고자 협약을 서둘렀을지도 모른다.

변하지 않은 태도

그럼에도 단체협약 체결 후 회사의 태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위원장 복직명령은 여전히 이행되지 않았고, 노조 간부와 경영진의 상견례 같은 상징적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협약은 체결했지만 진정한 신뢰는 아직 오지 않았다.

봄은 결국 온다

“겨울이 아무리 길어도 봄은 반드시 온다.”
이 유명한 말처럼, 지난 겨울은 우리 사회에도, 우리 노조에도 지독히도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결국 협약이라는 봄은 찾아왔다.

우리는 이제 3년짜리 협약을 기반으로 다시 전열을 재정비해야 한다.
이번 협약이 우연이든 계산이든, 중요한 것은 우리가 끝내 봄을 불러냈다는 사실이다.


KakaoTalk_20250818_163256944.jpg 사내가 아닌 외부 회의실에서 진행된 단체협약 체결식
이 글은 기록되지 않으면 사라질 노동조합의 싸움에 대한 기록입니다.공정한 사회를 위한 모든 목소리와 연대합니다.


keyword
이전 25화“기다리다 지쳤어요, 위원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