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을사년이라
120년 전 불평등 조약, 2025년의 단체협약
1905년 을사늑약은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제로 박탈한 불평등조약이었다.
120년이 지난 을사년, 우리는 마침내 노동조합 최초의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노사 합의의 성과 같지만, 실제로는 권력 불균형 속에서 노동조합이 최소한의 권리만을 인정받고 핵심 요구는 대거 배제된 구조였다. 그래서 나는 이 협약을 ‘을사늑약’에 비견하지 않을 수 없다.
보장이라 쓰고, 허가라 읽다
협약 제6조는 “회사는 합법적인 조합활동을 보장한다”고 시작한다. 하지만 곧바로 “회사의 시설과 전자메일 사용은 사전 승낙을 받아야 한다”는 단서가 붙어 있다. 보장이라 쓰고, 사실상 허가제로 만든 것이다.
제7조는 한술 더 떠서 “조합활동은 근무시간 외에 한다”는 원칙을 못박았다. 노조법이 조합원들의 단체교섭권과 활동을 기본권으로 보장한다고 규정하고 있음에도, 협약 조문은 그 권리를 다시 축소해 버렸다.
법의 상한도 깎아낸 타임오프
근로시간 면제, 이른바 타임오프 제도도 협약 속에서 크게 후퇴했다. 노동부 고시에 따르면 조합원 수 200명 이상이면 최대 4,000시간까지 인정된다. 하지만 우리 협약은 연간 2,000시간으로 절반을 깎았다. 거기에다 사용하려면 최소 48시간 전 통보와 사후 업무일지 보고까지 요구한다. 법이 보장한 제도조차 협약으로 다시 제한하는 모습이었다.
합의 없이는 권리도 없다
사무실도 마찬가지다. 협약은 조합 사무실을 보장한다고 하면서도 회사가 지정한 장소와 제한된 집기만 허용했다. 홍보활동도 회사 승인 없이는 불가능하고, 위반 시 회사가 임의로 철거할 수 있도록 했다.
심지어 임금 문제조차 협약에서는 “별도 논의”로 돌려졌다. 노동조합의 핵심 권리마저 합의 없이는 성립하지 못하는 구조였다.
노조법은 노동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한다. 근로기준법은 “근로조건은 근로자와 사용자가 동등한 지위에서 결정”되어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합의라는 이름으로 권리를 다시 봉쇄하고, 사용자의 통제 아래 묶어두는 것이 우리가 체결한 협약이었다.
신생노조가 마주한 벽
고용노동부에서 발행한 집단적 노사관계 매뉴얼은 단체교섭이 임금, 근로시간, 복지, 해고 등 근로조건 전반을 대상으로 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협약 속에서는 인사권을 “회사의 고유 권리”라고 못박았고, 복지와 임금도 별도 논의로 밀려났다.
결국 신생노조가 주장할 수 있는 여지는 협약이라는 틀 안에서 축소되고, 목소리를 높이면 불온시, 침묵하면 어용화되는 이중의 압박에 놓였다.
을사늑약이라는 느낌
1905년 을사늑약은 한 나라의 자주권을 앗아갔다. 2025년 우리의 단체협약은 노동조합의 자율성을 앗아갔다.
나는 이 협약을 단순한 문서로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우리 시대 노동조합이 처한 불평등의 축소판이다.
법이 보장한 권리조차 ‘합의’ 없이는 무력화되는 구조, 그 앞에서 신규노조는 늘 납작 엎드려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이 협약을 단체협약이라 쓰고, ‘을사늑약’이라 읽는다.
이 글은 기록되지 않으면 사라질 노동조합의 싸움에 대한 기록입니다.공정한 사회를 위한 모든 목소리와 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