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25일 ~ 8월 31일 주간기록
하루하루가 팽팽하게 당겨진 활줄 같은 한 주였다.
연대단체들과의 회의, 임금교섭, 월말 보고까지
모든 날이 긴장과 준비 그리고 분노로 가득 찼다.
숨 돌릴 틈은 없었지만, 싸워야 할 이유는 오히려 더 선명해졌다.
8월 25일 - 대답 없는 회사에는 공문과 언론제보를...
조합사무실에 출근하자마자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퇴근할 때까지 자리를 거의 뜨지 않았다.
지난 7월 23일, 조합원 총투표 결과를 담은
“유진기업 현 경영행태에 대한 노동조합의 입장과 제안”
공문을 발송했지만 33일이 지나도록 회사는 대답이 없었다.
그 침묵은 나를, 우리를, 노동자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사고는 언제나 사전에 신호를 보낸다.”
“노동조합의 문제 제기도 예비징후 중 하나다.”
문장 하나하나가 내 속에서 쏟아져 나왔다.
더 이상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공문을 새로 작성했다.
노동조합은 무시와 멸시의 대상이 아니다.
회사가 우리를 철저히 무시한다면 우리는 그 사실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
우리의 제안은 더 이상 제안이 아니었다. 요구였다.
처음부터 대화를 시도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회사는 대화라는 좋은 수단을 버리고
‘무응답’이라는 최악의 대응으로 우리를 모욕했다.
타이핑하는 손끝이 분노로 부들거렸다.
분노를 겨우 이성으로 다스리며 다시 한 번 “노사공동 안전·위기극복 TF” 구성을 요구했다.
공문을 모아 언론에 제보했다. 버튼을 누르는 순간 심장이 두근거렸다.
무서움과 후련함이 동시에 몰려왔다.
8월 26일 - 지연되는 임금교섭 준비 그리고 동지들...
오전 9시 51분. 회사에서 공문이 왔다.
“노동조합이 요구한 자료는 26일까지 못 보내고 27일까지 보내겠다.”
교섭 이틀 전인데 이게 무슨 소리인가. 짜증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지만, 다시 마음을 가라앉혔다.
최근 5년간 회사 공시를 펼쳐놓고 하나씩 들여다봤다.
모레 있을 교섭을 위해 다시 차분히 준비했다.
점심시간에 2022년 9월 3일 설립총회부터 함께한 수석부위원장을 잠시 만났다.
“2기부터는 평범한 조합원으로 돌아가 힘을 보태겠다.”
그 말에 3년간의 기억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미안함과 고마움이 동시에 목을 막았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고생 많았다. 그래도 단결은 놓지 말고 계속 함께 가자.”
그가 씩 웃었다. 그 웃음 덕분에 마음이 조금 놓였다.
저녁에는 소액주주연대 대표와 주주 몇 명을 만났다.
최근 액트(소수주주 플랫폼)에서 자발적으로 대표가 선출되어 연대가 본격적으로 꾸려지고 있다.
“경영진을 건강하게 견제해 회사 가치를 높이는 건 노조나 주주나 같은 목표다.”
그 말에 깊이 동의했다. 또 하나의 연대동지가 생겼다는 사실이 든든했다.
저녁도 거르고 회의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밤 9시가 넘었다.
몸이 이상하게 무거웠다.
스마트워치를 보니 심박수가 주간 평균 120을 넘어 있었다.
화와 긴장으로 몸이 이상 신호를 보낸다.
8월 27일 - 고쳐써야할 몸 그리고 밤 10시 31분
지난 2주간 잠을 자도 피곤했다.
어깨와 목 근육은 늘 뻣뻣했고, 두통은 기본값처럼 달고 살았다.
오늘은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병원 문이 열리기도 전에 앉아 기다렸다.
진료 결과, 교감신경이 과도하게 흥분해 있고
심박수가 계속 높아 혈압까지 끌어올린다고 했다.
“스트레스를 줄이고 운동을 다시 시작하세요.”
말은 쉬웠지만, 내 몸은 이미 고쳐 써야 하는 상태였다.
약을 먹고 나니 신기하게도 통증이 가셨다.
그런데도 머릿속은 온통 교섭 생각뿐이었다.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그리고 사무실에 앉아서도 계속 메일함을 들여다봤다.
내일이 교섭인데 아직도 자료는 오지 않았다.
대신 회사 공시자료를 뒤지며 스스로 준비를 이어갔다.
그 과정에서 2024년, 2025년에 등기임원 셋에게
총 50억 가까운 RSU를 지급하기로 한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어이가 없었다.
“회사가 어렵다”며 복리후생비, 수선비까지 줄여 놓고 임원들은 주식을 챙기고 있었다.
희생은 늘 노동자의 몫이었다.
컨디션 유지 차원에서 10시 30분에 누웠다. 그런데 딱 1분 후, 10시 31분.
메일이 왔다.
안도감보다 분노가 먼저 올라왔다. “이게 진정성 있는 교섭 태도라고?”
다시 컴퓨터를 켜고 자료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약 덕분에 잠잠했던 심박수가 다시 쿵쾅거렸다.
8월 28일 - 공회전하는 임금교섭, 그리고 전진하는 연대
아침 일찍 부천공장으로 향했다. 오늘은 임금교섭 날.
부위원장이 업무로 불참해, 나 혼자 교섭위원으로 앉았다. 괜히 어깨가 무거웠다.
회의실 공기는 차분했지만 묘하게 팽팽했다.
회사 설명을 들으며 가능한 한 부드러운 분위기를 유지하려 애썼다.
자료 설명을 들었지만, 회사는 여전히 같은 말만 반복했다.
“임금은 연봉제라 개별협상 사항이다.”
“지금 상황은 동결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아직 결정된 바는 없다.”
이 말, 상견례부터 네 번째다.
결국 우리도 연맹에서 제시한 6.6%+@ 인상안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말했다.
“명확한 입장을 내놔야 우리도 수정할 수 있다. 다음 교섭 때는 확실한 입장을 달라.”
회사 측이 다시 연봉제를 들먹이자, 나는 맞받았다.
“여기는 임금단체교섭의 장이다. 연봉제가 정당하게 자리잡았는지 행정기관 판단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9월 2일까지 제안이 오면 9월 3일 예정된 진정을 철회할 수 있다고 분명히 했다.
그러자 회사 교섭위원은 “임금교섭하면서 진정을 넣는 경우가 어딨냐”고 했다.
나는 차분히 답했다.
“2차 교섭 때 이미 예고했다. 시간을 충분히 줬고,
연락할 기회도 줬다. 이제는 우리가 스케줄대로 움직일 뿐이다.”
교섭위원은 “그렇게 말하는 건 억측”이라고 했지만 내 입장은 단호했다.
교섭이 끝나니 이미 점심시간이 지나 있었다.
배도 고프고 기운도 빠졌지만, 곧바로 서울지청으로 향했다.
오늘은 한국노총과 고용노동부가 함께하는
장기투쟁사업장 노정협의회 첫 회의 날이었다.
아슬아슬하게 회의장에 도착하니 페르노리카코리아, 골든블루, 공공노조 동지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한국노총 조직본부장과 노동부 노사협력정책관이 회의 취지를 발언하고
각 사업장의 사례가 하나씩 공유됐다.
프랑스 국적 기업인 페르노리카코리아는 노조탄압의 정석 같은 사례를 보여주고 있었고
골든블루 역시 비슷한 탄압을 겪고 있었다.
나도 이야기했다.
“우리는 신생노조가 당할 수 있는 모든 탄압을 몸으로 겪어왔다.
복직명령은 아직도 미이행이고, 올해 1월 7일에는 해고가 무효가 될 것을 대비해 2차 해고까지 했다.”
회의장에 순간 정적이 흘렀다. 모두가 놀랐다. 회의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기로 했다.
앞으로 주기적으로 모여 연대하고 도울 방법을 함께 찾기로 약속하며 마무리됐다.
몸은 지쳤지만, 곧바로 조합원 상갓집으로 향했다.
어쩔 수 없는 때가 아니면 반드시 직접 조문하겠다는 약속, 오늘도 지켰다.
위로의 말을 전하고 집에 돌아오니 또 9시가 넘었다. 긴 하루였다.
8월 29일 – 조합원에게 보내는 편지
노동조합은 매달 마지막 근무일에 조합원들에게 월말 활동보고를 보낸다.
이번 달에도 보도자료와 임금교섭의 주요 쟁점을 카드뉴스 형식으로 정리했다.
가장 크게 넣은 내용은 두 개였다.
“등기임원의 RSU 지급 사실”
“노조가 있어야 회사가 자료를 내놓는다.”
이 두 문장을 쓰면서 화가 치밀었다가 완성된 이미지를 보고는 묘하게 뿌듯했다.
우리가 이렇게 한 달을 버텨냈다는 증거였으니까.
이번 달도 그렇게 버티고, 또 한 걸음 전진했다.
8월 30일~31일 - 주말에는 특별근로감독 청원을...
주말 내내 특별근로감독 청원 문건을 다듬었다.
증빙자료를 하나하나 찾아 붙였다.
잠깐 멈추고 생각했다.
“이걸 해도 노동부가 안 받아주면 어떡하지?”
불안했지만,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끝까지 해봐야 한다. 끝까지 해봐야 안다.
이 기록은 노동존중사회를 위한 노동자의 기록이며, 모든 연대를 환영합니다.